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에서 발표(?)한 창작곡 쥐타령입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서글프네요.

 단 한사람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국회의원 등등 단 하나의 정당이 싹쓸이 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통령마저 같은 당 출신으로 채워 사실상
'합법적 독재'를 허용한건 누구일까요?

그래도 아직은 늦지않았습니다
. 소 잃고라도 외양간은 고쳐야하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래는 서프에 들렀다가 은 글이 있어서 퍼온 것입니다. 쥐타령 들으시면서 읽어보시길...

한나라당의 근원은 친일 -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보입니다
(82cook / 부산맘 / 2008-7-21)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여기에 스쯔끼라는 악질 고등계 형사가 나오는데요, 이 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죽입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불량선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누명을 씌우기도 합니다. 정말 보면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질 정도로 증오스러운 놈입니다. 주인공인 하림 역시 스즈끼에게 가족들을 잃은 희생자 중 한 명이었지요. 스즈끼는 하림 역시 엮어 넣으려고 계속 괴롭힙니다. 그러던 중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하림은 징병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미군 특수부대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합니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림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림은 어느 날 경찰서에 들렀다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경찰서에서 여전히 부하들을 호령하고 있는 스즈끼를 발견한 겁니다. 눈이 돌아간 하림은 뛰어가 스즈끼의 멱살을 잡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지릅니다.

"스즈끼!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해방이 되었어! 스즈끼!"

멱살을 잡힌 스즈끼는 부하들을 시켜 하림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하림은 무력하게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비명을 지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즈끼는 침을 뱉듯 말합니다. "저런, 빨갱이 새끼."

"여명의 눈동자"에서 이 장면은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친일파는 해방이 되어도 처벌받지 않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빨갱이로 몰려 두들겨 맞습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세상이 바뀌지 않은 겁니다. 문제는 이게 그냥 드라마의 극적 구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한국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미 군정을 뒤에 업은 이승만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친일파를 모두 흡수합니다. 세상이 뒤집히고 처벌이 될까 두려워 덜덜 떨던 조선총독부의 관료들, 경찰들은 살기 위해 이승만에게 가서 붙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의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빨갱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빨갱이가 쳐들어온다.', '빨갱이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 '우리가 빨갱이로부터 너희를 지켜주겠다.' 

그렇게 친일파는 식민지 시대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건국의 공로자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승만 독재 시대에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그러나 다시 한번 위기를 맞습니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박정희에 의해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친일파들에게 다시 살길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제 박정희의 공화당에 투신합니다. 따지고 보면 박정희 자신이 일제시대 친일파입니다. 일본 육사 졸업하며 천황한테 혈서 쓰고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으로 공인받은 자이니까요. 그리고 박정희의 독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박정희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자기가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국회? 그까짓 거 필요 없습니다. 해산시켜 버립니다. 밤마다 비서실장 시켜 여대생들 바꿔가며 밤 문화를 즐기다가 1979년 10월 26일, 그날도 여대생 옆에 끼고 술 마시다 총에 맞아 죽습니다.

친일파에게 다시 위기가 왔습니다. 아, 이놈의 위기는 잊을 만하면 옵니다. 그러나 또 구원투수가 등장합니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장악한 겁니다. 친일파들은 이제 기꺼이 전두환의 품에 안깁니다. 1980년 5월 18월 광주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총질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리고 지들끼리 모여 지들끼리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박정희 때 공화당 인사들은 이제 전두환의 민정당을 구성합니다.

1987년 6월. 또 위기가 옵니다. 전 국민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겁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통령을 니들끼리 뽑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직접 뽑겠다고 주장합니다. 노태우에게 대통령직을 선물하려던 전두환은 어쩔 수 없이 이에 굴복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역사적 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친일파들은 긴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정말 기적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왔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싸우다 후보단일화를 못 해 표를 갈라 먹은 겁니다. 결국, 노태우가 35.9%의 득표율로 턱걸이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친일파는 또 살아남았습니다. 아, 미칠 노릇입니다.

그리고 죽어도 대통령 한번 해먹겠다고 결심한 김영삼은 마침내 노태우에게 항복합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3당 합당을 하여 민자당을 만듭니다. 유일한 민주화 세력이 된 김대중은 고립됩니다.

그리고 그다음 대선에서 민주화 운동의 경력을 팔아넘기고, 양심을 팔아넘기며 친일파, 군사독재 세력과 손을 잡은 김영삼은 마침내 꿈에 그리던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당 이름은 신한국당이라고 바꿉니다. 그리고 나라를 하나하나 말아먹다가 1997년 IMF 사태를 일으킵니다. 나라가 부도가 났습니다. 수많은 회사들이 망해 넘어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주병을 들고 한강에 뛰어내리고 목을 맸습니다. 신한국당은 슬쩍 한나라당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고작 당 이름을 살짝 바꾼 것만으로 나라를 부도 상태로 몰아넣은 그들은 대선에서 약 40%의 득표율을 기록합니다.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티끌만 한 차이로 마침내 김대중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냅니다.

친일파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패닉에 빠진 그들은 그러나 5년만 참자고 다짐합니다. 5년 동안 열심히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욕합니다. 스즈끼가 하림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듯, 이들이 살아남는 길은 무조건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겁니다. 그러나 5년 뒤 선거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노무현에게 또 패합니다. 미칠 것 같습니다. 다시 5년 동안 빨갱이라고 몰아붙입니다. 경제가 망했다고 외쳐댑니다. 서민 경제가 파탄이라고 외쳐댑니다. 마치 IMF를 김대중이 일으킨 것 같은 착각마저 일어날 지경입니다.

어쨌든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친일파 명부를 만들고 진상을 조사하는 작업이 진행됩니다. 친일파들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정치적 탄압이라고 마구 훼방을 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뉴라이트가 결성됩니다. 그냥 상대방을 빨갱이로 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감추려 들지 않습니다. 아예 맞불을 놓습니다. 식민지 시대가 좋은 시대였다고 우기기 시작합니다. 친일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죠. 통계 자료를 가져와 식민지시대가 이렇게 경제 발전이 된 시기였다고 주장합니다. 근대화 시대였다고 주장합니다. 자신들을 친일파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자신들을 군사독재 세력이라고 부르지 말고 근대화 세력이라고 불러 달랍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친일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독재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됐지! '그리고 이명박을 밀어줍니다. '범죄자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지', '사기꾼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돼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이게 먹힙니다.

마침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고, 뉴라이트는 새로운 정부의 각료로 곳곳에 포진되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역사 교과서가 좌 편향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 시대, 독재 시대를 근대화 시대로 바꾸겠노라고 수정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친일파-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들이 권력을 놓친 시기는 딱 지난 10년간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릅니다.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는 줄로 압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이 나라에 지금 정의가 살아 있다고 보십니까?


※ 출처 - http: //www.82cook.com/zb41/zboard.php?id=free2&page=1&sn1=&divpage =40&sn=on&ss=off&sc=off&keyword=부산맘&select_arrange= headnum&desc=asc&no=226499





 라스핀은 지난 총선 당일 "제2의 을사조약에 국민 스스로 동의한 날, 2008년 4월 9일 수요일"이란 포스팅을 통해

 묻지마 투표를 한 시민들에 실망을 표현하고 앞으로 '거리로 뛰어나갈 일이 걱정된다'한 적이 있습니다.

 골백번 양보(과연 양보할수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해서, 뉴라이트의 말도 안되는 역사교과서는 사회 의견 표출의 다양성이라고 되뇌이며 참아도....

 독도의 영유권을 표기한다는 일본 수상의 말에 '지금은 곤란하다'라고 대답하는 대통령....같지 않은 대통령이지만, 요미우리신문의 '오보'라고 믿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전환하여 을사조약 이후 나라를 되찾기 위해 우리의 조상들이 노력했던 그 역사를 지워버리겠다는 꼼수를 쓰는 정부와 그 일당을 보고있자노니 머리속 무언가가 툭 끊어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전 분노합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참아주세요'와 '뿌리를 잊읍시다'를 동격시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광복절에서 건국일로 용어하나 바뀌는데 별스럽게 반응한다 하신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제 말씀을 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라스핀이 생각하기에 '광복'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용어 하나가 아닙니다. 그 용어에는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가 깃들여져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유관순 열사로 대변되는 3.1절... 이 이후 반도 곳곳에 임시정부 수립의 노력이 있었고, 그 결실로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기점으로 9월 15일에 이르러 각지에 출범한 임시정부를 통합하여 통합임시정부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이 통합임시정부를 근간으로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펼치게 되지요. 그리고 1945년 해방 후 이땅 민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그 '광복'이라는 글자에 함유되어 있는 것입니다.

 '건국'이라 칭한다면 그 '1945년 이전에는 나라가 없었다'라는 논리가 성립되고, 그 나라가 없는 땅을 일본이 잠시 통치해서 근대화(뉴라이트의 논리)를 이루는 혜택을 베풀고 아주 착하게도(?) 돌려줬다라는 논리까지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망각이라는 지극히 인간스러운 특성을 고려해서라도 절대 용어를 저런식으로 함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합니다.



"현재의 촛불은 MB와 시민과의 싸움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정리하지 못하여 이미 사회의 거대한 기득권이 되어버린 친일파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싸움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는 꺾일 수도, 꺾이어도 안된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는 영영 우리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없게된다."

 누군가(아마도 찌라시 폐간 운동 중)가 이렇게 말하던데 라스핀은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들려 드리고 싶네요.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에겐 그 역사가 언제고 되풀이된다'


+ 아래는 현재 이슈청원에서 청개구리ok님의 청원으로 시작된 서명운동입니다. 서명할것이 좀 많지만 (__) 이것만은 꼬옥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모든 국민에게 <속보,속보> 광복절이 사라집니다. 반대 서명바랍니다

서명하러 가기 클릭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56434



+ 요 아래는 청개구리ok님이 청원을 하며 올리신 글입니다.

 한반도 남쪽에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이 슬그머니 건국절로 바뀌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건국 60년 기념사업단을, 5월에는 민관기구인 기념사업회를 꾸리는 등 건국절 전환을 기정사실화하려 했고, 친정부 언론이 이를 뒷받침하더니, 이번엔 재계도 여기에 가담했다. 어제 전경련은 청소년 수천 명이 참가하는 건국 60년 청소년 대장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적 합의가 요청되는 사안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행태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 정부는 한 번도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역사학계의 의견을 듣거나 학술토론회 한차례 열지도 않았다. 건국절은 법에도 없는 이름이다. 오로지 뉴라이트 계열의 소수 학자들이나 친정부 단체, 친정부 언론의 주장에 따라 추진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학자나 단체는 일제 하의 독립운동을 평가절하하고, 일제의 병탄이 한반도에 근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역사적, 법적으로도 근거가 궁색하다. 헌법 전문엔 대한민국이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수구세력은 물론 뉴라이트 계열이 국부로 떠받드는 이승만 대통령조차 정부 수립 당시 공식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표명한 바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국가가 처음으로 수립됐다는 것을 근거로 삼지만, 임정도 민주주의와 공화제를 국체로 삼았고, 입법·사법·행정 3부를 구성했으며, 독립전쟁을 위한 광복군도 운영했다. 국가 조직과 이념을 기준으로 삼아 건국절 운운할 순 없다.
게다가 건국절로 할 경우 역사의 왜곡은 불가피하다. 임정과 독립운동의 역사가 무시되거나 배제된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김구 선생 등 대다수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활동도 무시된다. 대신 임정에 의해 탄핵당했고, 4·19 혁명으로 쫓겨났던 이승만이 건국 대통령으로 추대된다. 독립운동과 4·19 혁명을 우롱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짓이다.
 국가 운영은 회사 운영과 다르다. 대통령이라고 멋대로 결정하고 밀어붙여선 안 된다. 지켜야 할 민주적 원칙이 있고, 받들어야 할 사람이 있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국민을 무시하다가 이승만은 쫓겨났다. 제발 국민 의견부터 듣기 바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온 나라의 국민들은 나라 걱정에 잠을 못잡니다.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이나 지금의 우리 정부가 저지르는 짖거리나 다를것이 무엇이 있는가? 정신이 온 전한 사람이라면 모든것을 꺼꾸로 만 가는 이 정부를 절대로 지지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냥 미쳐가는 이 나라를 바라보고만 있지 않을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망치려고 작정을 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이렇게 무지 막지 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단말인가? 이명박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 그자리에 앉아있으니 이젠 대한민국을 망하게 할 일들만이 머릿속에 가득차고 계십니까? 그래서 차례 차례 실천으로 옮겨가시는 일중에 한가지입니까? 대통령이기전에 먼저 인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똑 바로 바라보십시요. 대한민국의 국민은 당신의 종업원도 아니며 당신이 지배를 해야하는 대상도 아니며,지배를 당하면서 가만히 있을 국민도 아니였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가 말하여 줍니다. 이점을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분명히 밝혀둡니다. 우린 그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정신세계와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한 민족성을 지녔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린 당신의 민족성과는 다른 민족입니다.우린 삼일정신을 계승한 민족이며,어면히 존재하는 고조선의 역사를 계승한 민족입니다.
일제치하 36년의 고통과 지금의 100일을 갖넘긴 이명박 정부가 우리에게 주는 고통이 다를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숨통이 막혀 죽을것 같습니다.
우리에겐 힘이 없습니다. 당신 대통령으로 뽑아 준 주인이면서도,그저 당신이 휘드르는 곤봉에,방패에,돌맹이에,군화발에,물대포에,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지고 눈이 찢어지고,갈비뼈에 금이가지만,우린 그 공권력에 대항 할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터넷 앞에서 그저 반대 서명만을 합니다.<떨리고 무섭습니다.정말 당신이 무섭습니다.>
이명박-다시 환생한 일본천왕
청와대-다시 환생한 조선총독부
경찰-다시 환생한 일본 순사
촛불집회-다시 일어나는 삼일정신을 계승한 민중의 봉기
이명박 퇴진-다시 찾은 광복절

간곡히 간절히 바랍니다.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심도있게 취재 및 방송을 부탁드립니다
.
너무나 많은 분들이 왔다 가셔서 지금 패닉상태입니다. ㅡㅡ;;;;

댓글에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어 몇가지 첨부를 합니다.

1. 편향된 글이라는 의견에 대해: 이 글을 읽으실때 아래 링크의 글도 함께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시면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포스팅한 다른 글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31~1일 12시간의 의료봉사 일기 및 환자의 사진촬영에 대한 부탁의 말씀


2. '닭장차'라는 용어 : 현 정부와 꼭대기 쥐색에 대한 비꼼의 표현이라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전의경의 집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표현으로 글을 읽지도 않고 재단하려는 시도는 삼가해 주세요. 글을 꼼꼼하게 읽고 그에 달린 댓글의 의견 나눔을 보고 나서 댓글을 다는 것이 블로거의 기본 에티켓이 아닐까요?

3. 의료봉사팀 진입을 막은 상인에 대한 언급: 그 아래 단락에 나름 최선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였는데 몇 분만이 눈여겨보시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 위에 그 무엇도 없다'라는 일종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 시각으로 보았던 그 자리에서의 일을 서술한 것이고, 그 뒤의 이야기를 보시면 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읽어내실 수 있리라 생각합니다.

4. 시위의 강도보다 규모가 중요하다라고 언급한 부분: '시위의 강도=폭력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찌라시 광고주 압박 및 폐간 운동처럼 극도로 평화적이면서도 고효율의 방법처럼, 규모를 확대하는 데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단순히 한 한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도 벅차기에,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과 촛불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포스팅에 언급한 것입니다.

부디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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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1시 반즈음 고야셈한테 전화가 옵니다. 잠 부족으로 피곤을 느껴 4시 15분 차로 상경하기로 결정합니다. FM군은 우리의 일꺼리를 몰아서 주었기에 상경 불가ㅋㅋ  역시 상경하는 버스에서는 잠을 자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8시쯤 도착한 시청의 의료봉사팀 베이스가 천막으로 변모해 있어서 낯선 느낌입니다.

 천막 안에 가득한 의료물품들....과 역시 처음 보는 얼굴들, 이젠 그러려니 하고 맙니다. ^^

 개중에 반가운 사람들 여럿 보입니다. 아는 님들에게 하나씩 인사를 건네며 상황을 물어봅니다. 벌써 2팀이 나갔다고 했고 도착하는 족족 팀을 짜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통성명도 생략한채 분주한 모습입니다.

 물품을 챙기면서 꾀부리러왔다는 나의 발언과는 아랑곳 않고 전경쪽으로 넘어가라고 합니다. 이목을 꽉 틀어막고 소통은 곧 개무시라는 행태를 보이는 통에 시민들이 화가 좀 났다고 합니다. 비가 간간이 오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았습니다. 시청광장부터 청계광장쪽으로 길다랗게 늘어선 촛불.... 왠지 든든하면서도 서글퍼집니다.

 겉으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국민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가격하는 행태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 생각해 봅니다. 인터넷 사이드카를 시도하는 모습, 낙하산 강제 투여를 통해 언론장악을 시도하는 모습, 촛불이 좀 사그라든 기미가 보이자 마자 소인본색을 드러내며 관변단체를 끌어들여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모습, 딴날당 국캐의원들의 장열한 헛소리 대행진, 의료법인 영리화와 민영보험 활성화를 진행시키는 모습, 물 사유화를 촉진시키는 법을 통과시키려는 행태 등등 열받을만하지요 ㅡ,.ㅡ

 여하튼 라스핀이  요즘 피곤이 쌓인터라 그냥 뒷편에서 간단한 진료만 하기를 원했는데, 의사 수가 부족하다하여 결국 하선생님팀에 합류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이름모를 간호사분, 도선생님, 하선생님, 정선생님, 김선생님과 라스핀, 이렇게 6인의 닭장차 뒷편의 의료봉사를 시작합니다.

 명박산성옆 패밀리마트 샛길로 들어가려 했는데 길이 모두 막혀있다고 새문안교회 옆으로 가보라고 합니다. 지휘자분의 얼굴이 낯에 익어 살펴보니 전에 간식을 나눠드렸던 그 소대인것 같습니다.

 새문안교회쪽은 버스를 배치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지휘자로 보이는 분에게 사정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 '저기 시위대로나 가지 뭐하러 여기로 들어가려고 하냐!'며 짜증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 안쪽(닭장차 뒷편)에서 장사하는 사람인데 시위대때문에 장사 안되서 짜증난다'는 요지의 말을 합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나기도 해서 '사람(부상자 등)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하냐'고 따지는 나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합디다. '나 한의사고 전경들 다치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 저쪽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하니, 계속 '시위대쪽으로나 가서 해라. 여기 들어오지 말고..'라는 따위의 말을 합니다. 라스핀은 또...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요지의 말을 하지만 이 사람한테는 하루 매상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역시 옆의 팀원들이 나를 말리고, 옆에서 무전으로 의료봉사팀의 진입여부를 묻던 경찰이 그 남자를 한쪽으로 데려가 가던 길을 가도록 합니다. 잠시 후 의료봉사팀에게 길을 안내할 전의경 2명을 붙여서 진입이 허가됩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곰곰히 생각을 해봅니다.

 그 지역의 상인들이 뭉쳐서 지역구 의원들을 통해 저지선을 뒤쪽 광화문쪽으로 물러달라고 압력을 행사하면 간단할 일일텐데.....라고....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가 누구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누가 물러나지 않는이상 장사고 뭐고 없을 거라고...

 (지역구의원들은 표심에 아주 민감합니다. 상인들이 집단 행동을 한다면 벌벌 떨겠죠. 선거기간이 되었을때 '아 그때말야 장사좀 해보게 경찰한테 말해서 저지선을 뒤로 물러달라고 요청했더니 묵살한 사람아닌가'라는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싫을테니 말이죠. 하기사 이런 내용을 충분히 알고 행했다면 딴날당 국캐의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리는 없었겠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를 안내하던 분대장(솜털이 보송보송 ㅋㅋ)이 기침을 합니다. 주섬주섬 뒤져서 찾은 해열진통제 2알을 건네고 앞쪽을 바라보니 '전경들의 부모 모임'에서 물을 끓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동상의 좌측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을 무렵, 배치 담당관인듯한 경관이 누구냐고 물어옵니다. 의료봉사팀이라고 하니 '소속'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소속같은 건 없고 그냥 모인 사람들이다라고 말을 해주니 별말 않고 우리 앞쪽에 있던 아가씨 2명에게로 다가갑니다.

 이 날, 우리는 '소속이 어디냐'는 물음을 수도 없이 듣게 됩니다. 왠만하면 인터넷 좀 보시지....ㅡ,.ㅡ

 얼마후 갑자기 방송의 내용이 바뀝니다. '모래주머니를 쌓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내용에서 '공사장에서 모래를 퍼가는 행위는 절도다'는 내용으로 바뀌면서ㅋㅋ 건너편쪽의 깃발이 점점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팀을 둘로 나눠서 동상을 기점으로 좌우로 나눕니다. 라스핀과 정,김선생은 교보빌딩쪽으로 이동합니다.

 간간이 날라오는 물병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서있기를 몇 시간.....

 모래를 다 쌓았는지 앞쪽 버스(겹으로 배치되어있음) 위로 깃발을 든 시민들이 보입니다.

 특정인물을 지칭하며 강한 어조로 경고방송을 하는 여경의 목소리는 점점 짜증이 더해가는 듯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여경분이 허리가 아프다고 상관되는 분이 파스를 받아갔습니다. 하루종일 트럭의 좁은 좌석에서 방송을 하니 그럴 수 밖에..... (차 밖으로 나와서 하라고 말하려다가 말았습니다 -O-)

 이건 라스핀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 경고방송으로 사람들이 더 자극받는 듯 합니다. 강한 어조(경찰은 지켜보고 있다, 추후 책임을 반드시 지우겠다, XXX씨 선동하지 마라 등등)로 방송을 할때마다 어김없이 무언가가 날라오기 때문입니다.

 깃대로 닭장차 위의 가림막을 치자 그걸 빼앗으려다가 손가락이 상당히 깊게 베인 전경하나가 왔습니다. 뼈가 살짝 보였으나 끝을 움직이는 걸 보니 신경에는 이상이 없는 듯합니다. 환자를 안심시키고 119구급차로 안내해서 이송했습니다. 환자는 '놀라지 않았다.'고 계속 말했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는....

 한참 후 버스한대가 시민들에 의해서 끌려나가자, 전의경들이 분주해집니다. 와이어로 각 버스를 몇 겹으로 묶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렉카를 뒤쪽에 대고 아예 고정시켜버렸습니다.

 끊임없이 소화기를 뿌렸고, 맞바람에 분말을 뒤집어쓴 전경들이 식염수 세척을 받기위해 찾아오기도 합니다.

 새벽 3~4시가 되었을까... 시민들쪽으로 끌려갔던 전의경 2~3의 상태를 봐달라며 어느 경관 분이 찾아옵니다. 원래 자리에 없었던지 '어딨어? 이쪽으로 오란말이야!'라고 다그치는 무전이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결국 두세번 왕복후 찾은 환자 3명 중, 1명은 동공반사가 정상에 비해 느렸고, 1명은 어플리이테스트에 양성을 보여 후송조치합니다. 시민들에게 순식간에 끌려갈때 맞아서라고 하는데 자세한 경위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순식간이라서 어찌되었는지 몰라요'라고 말하는 입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동상 뒷편에서 진료를 보고 있으니 저쪽에서 휴식을 취하던 전의경들이 속속 찾아와 치료를 받고 갑니다. 그런데..... 나와 김셈의 손길보다는 정선생, 도선생, 간호사셈의 손길을 원하는 듯 그쪽으로 길다랗게 줄서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ㅋㅋ

 현장에서는 치료를 거부하던 아가들이 휴식때는 지휘자의 허락을 받아 스스럼없이 찾아오는 모습에 최선을 다해 처치를 해줍니다. 심지어는 소중한 초코파이도 건네주더군요^^ 간혹 간부들도 왔다가기도 하구요.

 한바퀴 돌고 나니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비가 조금씩 거세지자 '이제 곧 끝나겠네'라고 생각했지만 왠걸.... 시위대는 도무지 해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이 터올 무렵, 날라온 물병(?)에 콧잔등이 살짝 찢어진 전경하나를 치료하고 있었을때 하선생이 저를 찾았습니다.

 연행될때 간단한 처치를 받은 여자분이 있었는데 변호사(민변)앞에서 말이 바뀌었다고 저를 보자고 합니다.

 가보니 변호사분이 신분을 확인합니다. 일단 경찰분(송파구??)과 변호사분께 제 입장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의료인으로서 환자가 원하면 진료에 임해야하는 것이 의무이고, 환자는 처치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건 의료법상에 명시되어 있다는 것, 여기서 저 여환자를 응급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내 권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변호사분이 'EMT전문의(눈에 소화기분말이 들어가서  따갑다고 계속 호소하면서 숨쉬기 힘들다고 말함)가 아니잖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아차싶었는지 '환자분이 병원에서 진료받기를 원한다'는 내용을 다시 강조합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를 살피면서 간호사셈에게 확인을 했을때, '눈을 식염수로 세척하였고, 비강을 세척할때 본인이 거부했으며, 가래를 밷어내도록 지도했으나 그 또한 본인이 거부했다'는 진술이 이어지자...... 변호사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휴.... 환자는 진료받을 권리도 있지만 거부할 권리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랬겠죠.

 라스핀이 돌아보며 '경찰분과 변호사분들 잘 들으셨죠? 여기 간호사선생님은 매뉴얼대로 처치를 잘 하셨으나, 본인이 싫다고 했으니 제가 굳이 말씀 안드려도 아실껍니다'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본인의 실수를 눈치챈 아가씨..... (__)

 그러자 이 아가씨..... 발목이 아프다고 합니다. 흠.... 라스핀도 이때즈음엔 좀 짜증이 나 있었습니다. 자신이 치료를 거부해놓고 간호사셈과 그 옆 봉사자분들이 제대로된 처치를 안했다는 식으로 몰았기때문이죠. 그러나, 직업정신을 끈덕지게 발휘, 제 감정상태가 말투에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촉진을 해봅니다. 복사뼈 안쪽으로 발목이 접질려서 살짝 함입되있더군요. 하선생과 간호사셈에게 발을 고정시키도록 하고, 어긋난 발목을 맞췄습니다. '탁'소리가 나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발목을 가리키며 인대가 살짝 늘어났을테니 2~3주 요양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시작하는 티칭......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짜증'이었습니다. 4주 진단을 반절로 줄여줬으니 최소한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XX로 시작하는 짜증이라니.. 흠.

 순간 스플린트를 대주고 연행해 가라고 말할뻔했지요. ㅡ,.ㅡ 그래도, 심한 부종이 동반될테니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경찰과 변호사에게 말하고 '제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양자간에 잘 결정하세요'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솔직히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하선생에게 들은 바로는 결국 경찰의 양보로 병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팀원 하나가  '남들 다하는 닭장차 투어 한번 해본다는 생각도 할 법한데 말이죠.'라는 말에 다들 피식 웃고 맙니다.

 빗줄기는 계속 굵어지고, 대치 상태는 계속 되었습니다.

 시위가 소강상태가 될때쯤 어김없이 자극적인 말투로 경고방송을 내보내는 경찰.... 보다못했는지 버스위로 올라온 시민 한분이

 '저 경고방송하지 말라고 그래요. 끝날만하면 방송해서 사람들이 열받아 집에 가지를 안잖아요. 아니면, 방송하는 사람 바꾸기라도 해요.'

라며 전의경을 향해 하소연합니다. 라스핀과 팀원들, 일부 전의경도 순간 고개를 끄덕입니다.ㅡ0ㅡ

 헌법제1조가 나올때즘엔 전의경도 따라 부르다가 예리한 정선생한테 포착된 조그만 사건도 있었습니다ㅋㅋ

 빗줄기가 극성을 부릴때 2개의 팀이 번갈아 번을 섰는데, 휴식을 취하러 갔다가 '전의경부모들의 모임'분들에게 커피도 한잔 얻어 마셨습니다.

 '시청쪽으로 이동해서 오늘을 마무리짓자'는 시위대측의 방송이 있고 나서 시위대가 흩어지는 모습이 버스틈새로 보였습니다.

 오늘을 보내며 정선생과 김선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말을 합시다.'

 '오늘 시민들이 버스를 부수고, 물병을 던지는 등의 행위가 있었죠'

 '거기에 전의경의 근거리 소화기 분사가 있었고요. 간혹 날라오는 물병을 다시 집어 던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여기(대치 현장)에 있으면 잊기 쉬운 것이 있어요.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상상도 못할 정신적인 폭력을 강제하는 사람이 있어요. 모두 거기서 비롯된 것이죠.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나와야 해요. 그 폭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여기까지 말했을때, 정선생...

'맞아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같아요. 시위의 강도가 아니라 시위의 규모가 더 중요한데 말예요'

라고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합니다.

 몇 분뒤에 '자, 우리도 이제 돌아갑시다'라는 말을 꺼내어 베이스로 향합니다. 향하는 도중 밤새도록 목청을 돋궈 방송을 하였던 피곤한 얼굴의 여경에게도 눈인사를 건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연신 건네는 막둥이 같은 전의경들을 지나칩니다. '너희들이나 저 시위대나 우리나 이게 뭔 고생이다냐. 이게 다 한 넘때문이다.'라고 되새김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촛불집회가 공부하는 장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호를 외치고 각종 퍼포먼스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현대사를  남녀노소 구분없이 알기 쉽게 가르치고 배우며,

그동안 무심했던 정치에 대하여 토의토론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일제치하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스스로 일깨우고,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등.......

아름다운 시민의식을 길러낼수 있는 그런 멋진 행사가 담긴, 촛불시위를 기대해봅니다.

촛불 하나하나가 집으로 돌아가서 더 큰 촛불이 각 가정에 이웃에 켜지고 켜진다면, 물병을 던지지 않아도 버스를 부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테니까요.


시민들이 더욱더 지혜로와져, 오는 28일, 촛불의 거대한 파도를 기원해봅니다. ^^


+ 아래는 J Kim님이 만든 동영상입니다. 촛불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좀 길지만 꼭 보시길...


6월 5일 ::: 72시간 촛불집회, 2박 3일 의료봉사를 기획하다!

 전날의 일을 마치고 여기저기 연락을 합니다. 의료봉사단에 참여할 내 주위의 사람에게 언제 올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일단 insedona님의 글에 등장하는 라스핀을 포함한 3인의 한의사는 같은 날 상경하기로 하고 서울의 모병원에 있는 R1 동기와 경기도에 있는 공보의 동기, 광주의 99학번 선배, 지금 4학년 여후배가 각각 6일 7일 저녁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insedona님은 토요일이 당직이라며 일요일에 온다고 합니다.


6월 6일 ::: 의료봉사에 참여한 라스핀과 그 일당들, 프락치로 몰리다!

 보건소에서 반강제적으로 지원(?)받은 물품을 챙기고, 점심 후 학교앞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탔습니다. 역시 버스에서는 잠만 잤구요.

 6시반즈음 도착한 응가기둥옆에는 역시 낯선 얼굴들이 조를 짜고 물품을 챙기는 등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새 의료봉사단의 인원이 엄청 늘었습니다만, 항상 고생하시는 팀장님 이하 열렬 봉사단원들은 여전합니다. 근육통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을 보며 라스핀의 마음을 다잡아 줍니다.

 31~1일에 참여 경력이 있는 4~5명이 한 조를 이루어 안국동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번 72시간 촛불집회에는 경찰들이 아주 작정을 했는지 곳곳에 닭장차로 벽을 세웠더군요. 겨우 한사람이 지나다닐 공간만을 남긴채 청와대 방면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닭장차 주차를 해놓았습니다. 예술적인 주차 솜씨에 모두들 혀를 내두르며 안국역으로 이동합니다. 중간 중간 전경들이 서있는 골목길을 통해 진입을 시도해 보지만 너무 주차를 잘해서 경찰들도 통행이 불가해 보입니다. ㅡ,.ㅡ 결국 빙돌아서 도착한 현장에는 아고라 깃발아래 수천명으로 보이는 인원이 구호를 외치며 이동하는 중입니다. 이동 중에 시민들이 시위대로 속속 합류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시위대 중간 중간에는 유모차들이 보입니다. 라스핀의 조는 이 깃발을 따라 삼성생명 빌딩(?) 교보문고를 지나 다시 광화문역으로 돌아옵니다.
 
 광화문역으로 돌아와 가지각색의 깃발아래 모여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구호와 노래, 몸짓을 구경하며 잠시 쉴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예비군 해병대에서 잘뛰는 베테랑급(?) 의료지원팀을 한 팀 지원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며, 팀을 꾸려달라고 합니다. 라스핀과 혼자서 2~3명분량의 보급을 담당하는 드랍쉽 박선생, 상황을 적절히 판단하여 빠른 대처로 진료부분의 부담을 덜어주는 스팀팩 정선생을 데리고 이동합니다. 때마침, 응급구조사('정'가지만 정선생과 헷갈려 '하'선생으로 불리우는) 하선생이 나온다 하고, 재활의학과의 진선생이 도착하여 어렵게 합류했습니다. 어찌보면 굵직굵직한 경험을 한 봉사자들로 드림팀(?)이 꾸며진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도중에 모언론사의 기자 하나가 해병대와 마찰이 생겼습니다. 급기야는 그 언론사기자의 서포터라는 인간이 짜증나는 말투로 '저런 구급상자나 물품은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의료봉사팀도 프락치 아니냐'는 말을 합니다. 하....

 역시 '욱'하고 마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반창고로 가린 가운의 이름표를 보여주고 신분을 확인시키고 사과하라고 종용하니 사람 짜능나게 하는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하는 일 없이 왔다 갔다하는 것으로 보이는 해병대전역자들이 의심스러워 그랬다'고 하고 슬그머니 없어집니다.  그러다가 현장으로 뛰어가니 우리를 가리켜 큰소리로 다른 시민들이 잘 듣도록 '이 사람들 프락치예요'라며 우리를 손가락질하며 따라다닙니다. 라스핀은 이때쯤 열이 받을대로 받아있었습니다. 저걸 콱! 하면서요 ㅡㅡ+

 또 이동한 곳은  흥국???  빌딩 사거리였는데, 의료팀을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급하게 뛰어가봅니다. 도착한 현장에는 이미 거기서 자리를 잡고 있는 의료팀이 있어 옆 공간으로 빠지니 해병대분들이 말도 안하고 가는 통에 한참을 찾았다며 뒤따라 올라왔습니다. 해병대는 3개조로 나뉘어 계속 교대되며 투입되는 형태였는데 그 중 한 분대가 따라온 것이죠.

 문제는 이때였습니다. 그 밥맛(기자 서포터라면서 되도않는 질문들을묻다가 불리해지면 나 시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어서 의료팀이 그렇게 부름)이 어느 아저씨와 은밀히 대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옆으로 살그머니 가서 그 대화를 들어보려고 시도를 하니 이 아저씨가 다짜고짜 라스핀의 신분을 묻습니다. 의료봉사단이고 한의사라 했더니 어떻게 증명하냡니다. 그러니 그 밥맛이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시민들 이 사람들 프락치예요'라고 큰소리칩니다.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한 둘 모여들고 어느새 우리를 에워싼 시민들.

'아까 당신 내 신분 확인했지 않느냐, 왜 또 그러냐'고 그 밥맛에게 말하니 어물쩍거리다가 또 '이 사람들 프락치예요'라고 소리칩니다. 라스핀은 화가 끝까지 나버렸죠. '당신 뭐냐'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입니다. 이제껏 기자 서포터라고 같잖은 신분을 내세워 프락치로 몰아쳐 소리치더니 그 물음엔 '나 시민이다'라고 합디다. 그 말투와 비열한 웃음... 악몽입니다. 아직도 짜증나는군요. 하...

 진선생이 옆에서 그 아저씨와 티격태격하고 결국 신분증(대학원학생증)을 보여줬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확인하는 척하다니 무작정 '(수첩에) 적겠다'며 신분증을 꽉 쥐고 돌려주지 않습니다. 적는다는 모션을 취할때 라스핀이 신분증 돌려달라며 신분증을 잡아당기면서 그럼 당신들 신분을 밝히라며 성질을 냈습니다. 병원이나 학교에서 당할 불이익이 걱정되어 밝히지 않는 신분을 노출했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열이 받았죠.

 마침 민중의 소리 기자분이 오셔서 그 언론사 편집장님 되신다고 확인해주고, 진선생의 KBS기자 친구를 통해서 신분확인을 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마취의선생님도 우리의 신분을 보증하면서 말을 해보지만 막무가내였었죠. 결국 어찌저찌해서 오해를 풀고 명함을 주고 받으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의료단의 신분이 밝혀져서 돌아다니면 우린 다시 여기 의료봉사단에 못 나온다고.....(의료계 현실을 좀 아시는 분은 이해를 할 듯..)

 아! 이런, 이번엔 마취의 선생님 성함을 물어본다는 것이.... 아주 반갑게 악수만하고 말았군요. 음, 왜 이름을 물어보고픈 생각이 안들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 ㅡ,.ㅡ

 어쨌든 그 '라스핀이 프락치로 몰린 사건'은 마무리 된 듯 보였지만, 오늘 미디어스에서 이런 기사가 떴더군요.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7


가재는 제편인가요? 그 기자들이 우리를 프락치로 몬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더군요. 오로지 기자편에서만 언급을 했더군요. 최소한 의료봉사팀에게 미안하다고는 해야하지 않나요?

 이 사건이 라스핀과 동료들이 이번 촛불에 회의감을 가진 시초였습니다.

 예비역이나 해병대의는 차를 끌어내려 시도하고 부수는 행위를 하는 등의 폭력적인 행위를 막고 심각한 부상자 발생시 흥분한 군중사이로 길을 만들어 의료팀이 접근하는데 길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충돌이 심하여 급한 환자가 발생한만한 곳이 생기면 해병대분과 함께 그곳으로 전력질주하여 초동대처를 하는 것이죠.

 그 덕에 새문안교회 골목에서의 늑골 골절 남환 발생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고, 탈진 남환도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해병대분대가 아니었으면 공간확보조차도 어려웠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그 늑골골절 남환은 정말 위험했었거든요 ㅡ,.ㅡ

새벽까지 해병대 분대와 같이 행동하면서 수많은 환자를 빠르게 초동대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만, 현장 이곳 저곳을 뛰어다닌 나머지 정박 두 선생과 라스핀은 탈진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너무 심하게 오버클럭킹을 한 후유증인셈이죠.

 첫날새벽까지 수상한 점이 있었는데, 시위대 일부가 그동안 보아온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의료봉사팀 중에서도 항상 라스핀은 최전방에 있기때문에 전방에 서는 사람들이 눈에 익어서 간혹 눈짓으로 인사하고는 했지만, 이 날엔 낯선 이들이 많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새문안교회에서 또 환자가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때즈음엔 다른 팀들이 투입되었기도 했고, 일부 폭력적인 사람들의 비협조에 실망해서 시위대 중간중간을 돌아다니며 진료만 했습니다.

 의료봉사팀이 연행되었다는 헛소문도 돌더군요. ㅡ,.ㅡ 환자 치료를 위해 공간을 확보하러 전경쪽으로 넘어간 팀이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길을 잘 비켜주지 않았기도 했고, 경골 골절 환자라 비집고 갈 수도 없어 넘어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환자를 119에 실어보내고 대치 중에 탈진과 발작을 일으키거나 다친 전경들을 돌보기위해 아예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간혹, 새로 합류한 봉사단원 중에 '왜 전경을 치료하냐'고 따지는 분이 있다는데..... 그런 말이 들려올때마다, 나서서 전경들에게 다치지말라고 따뜻한 말과 탈진 방지용 간식을 건네는 우리 팀원들과 비교해봅니다. 라스핀이 일부 단원만 싸고돈다는 불평불만이 있지만 그냥 봉사가 아닌 '의료봉사'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기에 가뿐히 무시할 뿐입니다.

(지나가는 얘기이지만 자신이 '의료인'이라는 신분을 드러낸 상태에 어떠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게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기도 하지요. 즉, 의료인에게 '의료'라고 명패를 건 이상 환자의 신분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진료에 임하는 것은 의무란 얘기입니다.)

 새벽에 경찰의 모범적인 해산(진작에 그렇게 좀 하지... 쳇)을 통해서 흩어질때까지, 지칠대로 지친 라스핀은 저녁 6시까지 죽은 듯이 잠들었습니다.


6월 7일 ::: 이제까지 못보아왔던 이상한 시위대

 모텔에서 수면을 취하고 나온 응가기둥 옆에는 역시 새로운 얼굴이 보입니다. 전날 선생님들이 뻗어버린 탓인지 의사 수가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환자가 많이 발생한 경찰 측으로 응급구조사(초창기 멤버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신)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팀이 파견되고 나니, 5개 팀으로 나눴는데 한 팀당 10~14명이 되는 엽기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역시, 라스핀은 가장 많이 움직일 곳에 투입....되었지만 팀원이 많아져서 그런지 둔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7~8명으로 하선생님팀과 라스핀팀으로 나눠서 활동했습니다.

 서울지역 대학생 연합의 깃발을 따라 독립문을 지나 사직터널 앞쪽에까지 그리고 그 뒷동네의 가파른 경사길까지 뛰어다니며 팀원들을 재촉한다고 뒤돌아보다가 삐끗 ㅡ,.ㅡ 그리고 내려올때 또 다른 발을 삐끗 ㅡ,.ㅡ 부상을 입었습니다. 본진(응가기둥 옆 베이스)에 들러 화장실에 갈때가지 참느라 진땀뺐었죠.

 닭장차가 전날과 마찬가지로 가는 족족 길목(주택가 길목까지)에 예술적인 주차를 해놨기 때문에 다시 광화문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충돌이 없었습니다. 그냥 평화스럽게 구호 외치고, 몸짓하고 축제 분위기(?)였죠. 간혹 닭장차에 올라간 사람이 나오면 '내려와'라고 구호를 외쳐서 말그대로 평화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새벽(아마 2~3시쯤)이 되어서 갑자기 이순신동상 앞으로 목장갑과 파이프를 든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닭장차를 부수고, 물건을 던지고.... 그에 대응해서 소화기를 분사하는 전경들.... 분위기가 삽시간에 이상하게 변했습니다.

 해병대가 질서정리를 위해 투입이 될만도 한데 어제의 프락치로 몰린 사건으로 인해 의견이 분분한지 뒤로 빠져있었습니다.

 전날, 골목에서 사람들 일부가 닭장차를 끌어낼때 진압이 예상된다면서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닭장차를 부수고 끌어내는 바람에 전경들이 자극된 상태고 이 상태에서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며 '해병대가 연행되는 한이 있더래도 시민을 보호하자'는 말이 전달되는 모습이었죠.  나중에 해산되기 전에 또 프락치로 몰렸다고 하면서 해병대는 앞으로 집회에서 빠진다는 얘기를 정선생에게 전달했다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닭장차위에서 떨어진 사람(골반골절 의증)을 실어올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환자가 있다 뒤로 물러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로 빠졌지만, 일부 수십명의 사람들은 그와는 아랑곳 않고 계속 닭장차 위의 전경들을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덩치 좋은 남자분이 환자를 업을 수 있어서 간신히 빠져 나와 무사히 처치를 하고 insedona님에게 인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위대가 과격해 졌을 당시, 소화기 분말이 자욱해졌을 무렵 우리 팀도 바뻐졌습니다. 마스크와 식염수를 들고 전방으로 갔을때 물건을 던지는 포즈를 취하는 아저씨(40대로 보임)를 발견하여 제지했습니다. 제지했더니 손에 아무것도 없다면서 왜 그러냐고 빈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저씨가 던지는 포즈를 취할때마다 어디선가 플래쉬가 터진다는 것이었죠.

  이 사건이 이번 시위대에 대하여 이상한 느낌을 갖게한 단초가 되었습니다.

 한번의 과격한 시위가 있고, 그 환자가 발생한 후 몇 분뒤 시위대가 갑자기 온순해 졌지요. 온순해진 시위대는 차츰 이성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말 온순해졌습니다. ㅡ,.ㅡ

 새벽 4~5시즈음 또 일부 사람들이 과격해 졌고 닭장차를 하나 부숴서 끌어냈습니다. 그 사람들 근처에는 강하게 항의하면서 말리는 시민들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떤 건장한 사람들이 나와 그 항의하는 사람을 윽박지르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만난 의료팀 중, 초기 멤버들도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닭장차 하나를 끌어낸 것으로도 모자라, 전경이 올라가 있는 버스에 줄을 매고 잡아당긴 사건이었습니다.

 이때는 시민들이 보다못해 줄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통에 다행히 몇 번의 시도로 끝났습니다.

 밀집된 시위대를 뚫고 지나다니면서 그 느낌은 일종의 확신으로 굳혀졌습니다.

동이 터올 무렵에는 정말 평화스러웠습니다. 해산을 시도하는 경찰들에게 욕을 하며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옆의 시민들이 뜯어말리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구요.

 욕설을 내밷으며 막무가내로 시비거는 여자들을 말리는 모습도 여러군데에서 목격되었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지킬과 하이드?를 보는 것 처럼요. 우리 팀원들도 그 광경을 보며 새벽의 그 두 차례 파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시위대 해산을 하러 뛰다가 인대파열 의증 전경을 처치하려했는데 본인의 완강한 거부로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집 막둥이(육군 수색대 출신)보다도 한참 어린 나이일텐데....

 어쨌든 1차 해산이 끝난 후 응가기둥옆으로 모였을때즈음 다시 도로 점거를 시도한 시위대가 있었습니다.

라스핀은  전경쪽으로 교대투입되었던 FM군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에 지방으로 다시 내려오기로 결심한터라 그쪽에는 하선생님을 중심으로 의료팀이 파견되었지요.

공중화장실에서 머리에 가득 묻은 소화기 분말을 씻어내고 짐을 챙긴후 의료봉사단 분들에게 전부 인사를 하느라 좀 지체되었습니다.

역시 피곤 가득한 얼굴들..... 마음 속에는

'존경은 존경받을만한 행위를 했을때야 받는 것이다'라는 말이 의료봉사단원들의 얼굴위로 겹쳐보입니다.

 FM군과 99선배, 4학년 후배와 시청역으로 이동 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의 '저런 분(의료봉사단원)들에게야말로 의료인 면허를 줘야한다'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시청역으로 이동하면서 급하게 파견된 의료봉사단원에게 인사를 나누며 시민들과 어울려 도보에 앉아있는 전경들을 봅니다.

정박 두 선생을 보고 내려가려고 찾아보았는데 박선생만 볼 수 있었습니다. 정선생과는 라스핀이 발목붕대를 교체하러 길가에 앉아있는 사이에 길이 엇갈렸나 봅니다.

커피를 나눠서 마시고 간식을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과 전경... 정말 평화로왔습니다.

이쯤되니 확신이 생기더군요. 그 이상한 시위대에 대해서 말이죠.


72시간, 후기를 마치며 :::: 이상한 시위대에 대하여

31일~1일을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렇게 물대포를 맞았어도 전경에게 직접적인 욕설이나 폭력을 행한 예가 없었고 그 뒤로도 그 분위기는 꾸준히 유지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때는 저렇게 특정시간대만 대치(6~7일)한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몸싸움(31~1일)이 벌어졌었다는 점, 닭장차를 부수고 올라타는 사람들이 전과는 다르게 30~40대(처자식을 가진 사람이???)였고 낯선 사람들이었다는 점 등에서 이번 7일~8일의 시위는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이상한 점은, 한쪽에서는 하지 말라고 구호를 외치고 한쪽에서는 자극적으로 선동하고.... 전날 예비역들을 프락치로 몰아 예비역들이 빠져있어 질서유지가 안되는 상황이니 더욱더 이상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 폭력에 환호를 보내는 군중들은 보았을때는....... 라스핀조차도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인세도나님도 문자를 통해 '실종된 시민의식에 회의가 든다'고 표현을 했을 정도니 다른 의료팀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폭력'을 장장 30여일 동안이나 유지했던 그렇게나 현명했던 시민들이 일부 음해세력에 의해 선동당하였다 하더라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선동하는 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서 폭력을 행사하려 시도하면 '던지지마' '때리지마' '올라가지마' '부수지마'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했던 그 현명하고 자랑스러운 국민을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제 촛불집회는 인내력과 동원력(?, 참여인 숫자)에 달려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그 아름다운 시민들의 자정능력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선동당했다 하더라도 그 선동을 가뿐히 개무시하고 더 뛰어난 시민의식이 발할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겠네요.

촛불이 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닐까요?

 그리고 만약..... 만약...... 그 자정능력이 발하지 않는다면 라스핀은 앞으로 의료봉사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이제 노안이 되셨는지 안경을 이마 위로 올려야 글씨를 읽는 어머니,

그런 어머님께서 일주일 내내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십니다.


경한다고 의사를 내비쳤을때 어머님의 문자는...

'쇠고기 데모하는 곳에 가지 마라, 아들'

이런 내용입니다.

아마도, 당신의 큰아들 블로그를 몰래 다녀가셨나봅니다.


번째 다녀왔을때 전화는...

'너 쇠고기반대 데모같은거에 가지 마라'

'어머니, 어머니 아들 직업이 한의사입니다. 아픈 사람 도와주는게 내 직업이예요'

알았다고 전화를 끊으시는 어머님의 목소리는 걱정 반, 자랑스러움 반인 듯 하셨습니다.


번째 다녀왔을때 전화는....

'우리 아들, 정말 가지마라, 응?'

'구호도 안외치고 싸우지도 않아요. 그냥 의료봉사예요. 우리같은 의료인 잡아가면 정말 난리나는 거 쟤네들도 잘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설득해보지만, 막무가내로 '아무튼, 어쨌든 가지마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십니다.

 두번째 갔을때가 31~1일이었으니 걱정하실만도 하지요. 백골을 대신할 '흑골'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니까요.

 한달에 한 번 전화할까 말까한 시집간 여동생한테 뜬금없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별일 없냐면서요. 어머님의 압력이 행사되었겠죠.
 
 보건소에서 물품을 지원받고, 가운을 챙기면서 상경 준비를 하다가 문득 노무현 전대통령의 연설이 생각나서 인터넷을 뒤적였습니다.

 어느분이 31~1일 있었던 장면을 넣어 재편집한 동영상을 찾았습니다.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 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 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고 패가망신했습니다.

600년 동안 한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권력에 줄을 서서 손바닥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저질러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했어요. 눈 감고 귀를 막고, 비굴한 삶을 사는 사람만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살 수 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저희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었던 저희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 80년대 시위하다 감옥 간 우리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 이제 비로소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너는 뒤로 빠져라'가 아닌 '가분수가 되지 마라'는 교훈을 내 미래의 아이에게 주고싶을 따름입니다.

 모두들 그런 마음으로 거리로 거리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라스핀도 저 역사의 한귀퉁이에 지켜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합니다.

6월 6일부터 8일까지, 구급상자를 들고 부리나케 뛰어다니며 그 시공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오늘 어머님께서 보내신 문자를 잠자리에 들기 전에서야 읽어보고 심란한 마음에 포스팅해봅니다. 오늘 짝퉁들이 나와서 시청광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내일이 좀 걱정되었거든요. 그래도 가야겠죠? ^^

+ 라스핀은 '성장후 분배'정책을 폈다는 점에서 노무현대통령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역사관과 정치관을 존경합니다. 물론 그 '분배'에 발작을 일으킨 조중동문개이버는 저주의 대상입니다.
첫번째 이야기 ::: 참가후기 두번째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온몸의 구석구석이 아우성을 치는군요. 운동부족을 실감합니다. (__)

블로거뉴스를 편집하시는 분의 덕택(?)으로 너무 과도한 칭찬을 받아 결국 다시 상경하기로 결심,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어찌저찌 명단이 확정되고, 5월 31일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전주에서 insedona님을 모시고 왔는데 점심식사 후 지갑을 놓고오신 것을 발견, 다시 전주로 향했습니다^^;;;

insedona님의 지갑을 찾고 전주터미널에서 출발했지요. 라스핀,FM김군,고야셈 3명의 한의사, 내과의 insedona님, 그렇게 4명의 상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총 12시간이 넘는 아비규환의 대장정이 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고 다들 상경하기위해 미리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었는지 눈을 부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번 상경때 남부터미널에서 먹은 우동 한그릇이 전부여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도착하자마자 저녁식사부터 했습니다. 역시! 이때까지만해도 사실 별걱정을 안했었지요. 뭐 거리시위를 한다 하더래도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한 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했으며 경찰 또한 연행을 할 망정 여론을 의식해 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계광장 응가기둥(일명 소라기둥이라고 하더군요) 옆에 도착했을때는 의료봉사단 중 마지막 1팀이 시청광장으로 이동하려는 찰나였습니다. 그새 얼굴이 낯선 분들로 다 바뀌었나봅니다. 그러나, 역시 통성명도 없이 무작정 의료구호물품을 들고 움직였습니다 ㅡ0ㅡ

시청광장 무대 오른편에서는 곳곳으로 파견되고 남은, 3팀이 있었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insedona님은 곧바로 1팀과 파견, 10여분 후 FM김군과 고야셈은 같이 다른 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남은 물품을 팀장님의 승용차에 가져다 두려 다시 응가기둥쪽으로 갔을 무렵, 시위대가 출발하니 빨리 오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헉헉거리며 뛰어가보니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더군요. 정말 많았습니다. 항간에는 10만이라고도 하고 5만이라고도 했습니다.

물품을 마저 챙기고 급하게 선두를 따라갔습니다. 마구 내달리는 통에 우리도 같이 뛰었죠. 결국 우리조의 팀장님은 연로(^^*)하신 것때문인지 뒤쳐졌습니다. 사직터널(그렇게 들었습니다.시골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_-)을 기습적으로 내달려 어느 내수동 아파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였습니다. 대열의 앞쪽은 이미 빠져나갔고 의료팀은 진압(?)하는 전경들에게 쫓겨 넘어져 다친 여고생 하나를 치료하느라 머물렀습니다.

왼쪽 어깨부터 손등까지의 찰과상과 옆구리의 열상(진피층이 약간 손상됨)을 입은 이 여학생에게 간단한 처치 후 집에 가라고 하니 안가겠다고 버팁니다. 휴.... 결국 '너 나중에 수영복 안입을꺼야? 이거 이렇게 보여도 흉터 남으니까 집으로 가서 제대로 된 처치를 받아야해. 어여 집에 가'라고 설득하여 보냈습니다. 팀원 하나와 같이 택시에 태워서 보낼때 마음이 참으로 착찹하더군요. 망할 쥐색 하나때문에 저 어린애가...

그 학생뿐만 아니라, 어느 매체의 무릅까진 기자, 몸싸움을 하는 도중 얼굴을 가격당해서 안경이 깨지는 통에 눈가가 길다랗게 찢어진 아저씨 등등, 단 한번의 대치 상황에 대여섯명의 부상자가 생기자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 청년 하나가 흉부를 군화로 가격당해 쓰러져서 의료봉사팀이 인수받았습니다. 그때즈음 합류한 마취의(여자선생님인데 이름을 ㅡㅡ;;;;)선생님이 진찰을 하시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119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10여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 구급대.... 전화로 독촉을 하니 내수동 풍림 스페이스 앞 사거리로 오는 길이 모두 봉쇄되었다 합니다. 경찰이 막았다고 어떻게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마취의 선생님은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저는 팀원에게 자꾸 다시 간다는 환자를 진정시키도록 부탁을 하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고라 게시판에 경찰이 119의 앰뷸런스를 막아 못들어오고 있다고 항의전화라도 해달라고 글을 올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밤 늦은 시각이라 여기저기 전화를 해야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 건물 경비아저씨가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를 위해 환자를 옮겨달라는 말을 했는데, 결국 견디지 못한 화를 내버렸습니다. '차가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고 막 따지는 나에게 엄청 성질을 내시더군요.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니 주위의 사람이 몰려들었고, 자초지종을 들은 한 아주머니가 여기 주민이라면서 자신의 차로 옮겨 주겠다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차를 가지러 아파트 쪽으로 간 사이에 119구급대원이 걸어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오셔서 '안오겠다는게 아니라 이쪽 저쪽 다 막아서 못들어 온것이니 양해를 해달라. 그래서 이렇게라도 걸어서 왔다.'라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시더군요.

 조금뒤에 아고라에 글이 올라갔는지, 아니면 보다못한 주위의 시민들의 항의 덕인지는 몰라도 구급차가 올수 있다고 했습니다. 팀원 한명이 남아서 병원에 구급차에 동승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그때 차를 몰고 나오신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동할 청와대 방면은 모두 경찰들의 통제로 진입이 불가하였죠. 결국 차에서 내려 중앙청사쪽으로 걸어가기로 하고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119구급대원이 걸어서 온것을 보고 자신들도 미안했는지 통과시켜주더군요.

 부상자가 계속 발생한다는 전화가 와서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효자동 사거리(중앙정부청사 사거리)였고 이미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 중이었습니다. 전방으로 전방으로 나가서 대치선 바로 뒤쪽, MBC와 KBS카메라 후방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경찰의 해산권고 방송과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구호, 몸싸움이 지속되었습니다. 주로 이명박은 내려와라(혹은 물러가라) 등의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였습니다. 구호를 들으면서 이미 쇠고기재협상의 문제를 넘어서 정권퇴진운동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지요.

간간이 몸싸움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큰 사태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예비역들이 방패와 하이버를 빼앗아 뒤로 전달하고 가끔 전경을 연행(?)하여 뒤로 보내며 '비폭력' 또는 '때리지마'라는 구호를 외치고 또 시민들은 곱게 그들을 보내주고... 폭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더랬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이라고는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아마 시사토론(?)이 끝난 시각으로 추정되는데,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을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이때부터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대포에 맞아 일시적으로 쇼크를 일으킨 사람부터,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 오랜 시간의 몸싸움으로 인해 탈진한 예비역들....

 계속되는 물대포와 진입시도로 부상자가 정신없이 발생했고, 한두시간이 지난 후에는 저체온증에 시달려 사시나무 떨듯 떠는 환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마른 옷과 담요,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는 의료봉사팀의 요청에 근처 주민의 물품들이 속속 도착하였고, 우비와 우산도 계속 공급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대여섯명을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앰뷸런스에 실어보내고, 조금 있다가 또 발생하여 금새 동나고는 했습니다.

 청운동(?)에서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고 손이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쪽에 있던 한 팀이 급파되었습니다. 말투 자체가 차분한 insedona님의 이쪽 상황을 묻는 전화 속 목소리가 어쩐지 다급하게 들렸습니다. 상황을 주고 받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이건 전쟁이예요, 전쟁.'

 라스핀도 물대포를 맞고 난뒤 탈진의 기미가 보이고 의료팀의 얼굴에도 피곤이 눈에 띄게 떠올라 후방으로 빠져 휴식을 취했지요. 진중권교수님이 철푸덕 앉아있는 저를 잠깐 인터뷰하고 갔습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과는 달리 말은 담담하게 나왔습니다. 이때즈음엔  라스핀은 끓어오는 분노를 참느라 마스크안의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그걸 억제하느라 '중립, 중립, 중립'이라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반갑지 않은 짧은 인터뷰 후, 인터뷰를 허용하게 놔둔 김선생에게 가벼운 타박을 준 뒤, 주위를 둘러봅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신문지 등으로 불을 피우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모닥불 수준의 불(어디선가 구해온 탈만한 물건과 피켓, 쓰레기 등)이 곳곳에서 피워집니다.

 물대포에 맞은 사람들이 나와서 옷을 말리고나서 물대포와 대항하러 다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한쪽에서는 쓰레기봉투로 쓰이는 검은 비닐봉투 큰 것으로 자신의 상체만 가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시민들이 보입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주부와 딸, 이제는 은퇴를 앞두고 있을만한 젊잖게 생긴 아저씨, 할아버지.....

 앰뷸런스가 올때마다 길을 앞장서서 열어주고 뭐 도울일 없냐고 찾아오시는 분들, 근처 편의점에서 자비를 들여 사온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나누어주는 분들.....

 옆의 연선생('연'가가 아니지만 그렇게 부른다 했습니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해봅니다.

 '이거 80년대도 그랬겠죠? 매캐한 냄새만 있으면...'

 '그렇네요'라고 덜덜 떨면서 라스핀의 물음에 대답하는 연선생에게 모닥불 근처로 가라고 말해봅니다.

 그리고 라스핀의 머리 한구석에는 중학생시절 초여름의 이리(지금의 전북 익산) 시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얀 하이버를 쓴 전경을 피해 참을 수 없는 기침을 해대며 골목으로 내달리고 내 왼쪽으로 슉슉 지나가며 하얀 족적을 남기는 최루탄의 꼬랑지....

 '아.. 그때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잠시 딴생각을 할 무렵, 힘이 넘치는 정,박 두 선생의 채근에 마른 옷과 담요를 들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바로 직전, 한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실려서 나옵니다. 역시 저체온증.... 급박해서 상의를 찢고 하의를 탈의 시키고 갈아입히고 담요로 둘둘 말아서 모닥불옆으로 앰뷸런스를 요청했습니다. 팀원 한명이 또 남고....

우리는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에게 옷을 갈아입는데 얼마 안걸리니 갈아입고 다시 오라고 말하며 심한 사람을 우선하여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버티겠다며 조금 더 심한 사람이나 여자, 노약자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옷은 금새 동이 났습니다. 벌벌떠는 사람들을 한번 보고, 내 빈손을 한번 봅니다. 눈가가 나도 모르게 뜨끈해집니다.

 그무렵 시위대 뒤쪽 정부중앙청사쪽에서 진압하러 전경이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를 포함한 2팀이 그쪽으로 급하게 이동했습니다.

 라스핀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동그란 방패 진압봉, 진압복.... 헬맷 색깔만 틀리지 백골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백골단의 등장에 정신없이 촬영하기에 바쁘고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촛불을 다시 밝혔습니다. 저런 사람들에게 물대포라니... 다시 눈시울이 뜨끈해집니다.

 사거리로 조금씩 후퇴할 즈음에 경복궁 뒤로 해가 떠오르는게 보였습니다.

 해가 비추는 곳은 야속하게도 줄곧 보아왔던 살수차의 두배 정도되는 크기의 검정색 살수차였습니다. 아침 햇빛을 등지고 천천히 물러나는 수많은 시민들..... 그 큰길을 가득메웠습니다. 라스핀이 있던 곳의 대치 부분에서는 시민들이 어린 전경들에게 '물러날테니 천천히 해라. 여기 모두 너네 형,동생,누나,아버지,어머니,할머니,할아버지같은 분들이야. 천천히 하자'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괴물같은 살수차가 물대포를 쏘아대자 사람들이 픽픽 날라갔습니다. 청장년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깨자마자 소식을 듣고 나온 시민들이 인도에서 아우성입니다. 그냥 놔두었어도 물러났을텐데....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 광경을 본 어느 여자분이 쇼크를 일으켰습니다. 주위분들의 도움으로 진정시키고 오목하게 파여진 진형으로 다가갑니다.

 물대포에 맞아 고막파열이 의심되는 환자가 실려나왔습니다. 마취의 선생님이 진찰을 하고 라스핀은 그 주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한 남자가 '왜 못 (사진) 찍게해. 올려야지'라고 화를 냅니다. 순간 열이 받아 그 남자를 노려보고는 '그냥 찍어서 올린다고요? 이사람의 신원이 낱낱이 밝혀질텐데요? 그렇게 알리고 싶으면 당신이 저기 가서 서세요. 여기 인도에 서서 입으로만 나불대지 말고'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당신이 뭔데 그딴식으로 말하냐'는 내용의 말을 합니다. '나? 의료봉사 중인 한의사다. 당신말이야. 무임승차면 무임승차객답게 있던지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와!'라고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때 옆의 팀원들이 나를 뜯어말겼고 그때문에 고개를 돌린 사이 딴 남자분이 끼어들어 참으라고 말합니다. 'X달린 XX가'라는 내용의 욕을 더 해주려고 찾아보니 금새 사라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렇게 벌벌떨며 자꾸 실려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랬나보다고 생각합니다.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