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방에서 TV를 없앤지 약 10여년이 되어갑니다.
대신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게 됩니다.
물론 MB 등장이후 인터넷마저 믿음이 떨어져, 판단이 필요할 경우에는 영문사이트를 개발소발 번역해서 대충 뜻을 읽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글은 국내사이트에서 검색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음미할만 하기에 블로그에 옮겨 놓습니다.
어릴적, 독일에 계시던 어머님의 친구(현 모의과대 교수)분이 '차붐'이야기를 지나가는 말로 전해준 뒤로 '공놀이'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재미라고는 못느끼던 제가 '보는 것만이라도'하게 되었지요. 물론, 여전히 공가지고 하는 운동은 다 싫어합니다. 단지, 인터넷으로 ESPN의 빅매치 녹화본을 가끔 보는 정도지요.
어쨌든... 아시안게임이 있기 몇년 전(아시안게임이 제가 중딩때니깐 아마도 제가 국딩때)이었을겝니다. 어느 방송에서 '차붐'에 대해 시리즈(?) 비슷하게 했었고 꼬박꼬박 챙겨보았었지요. 병약했던 저로써는 활기차게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던 차붐이 그렇게나 좋아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선택한 운동은 공놀이와 전혀 상관없는 작대기운동ㅡㅡ;이었지요. 한 몇달을 그러다가 어느 순간 뚝 '차붐'에 대한 정보가 끊기더군요.
그러고나서 10여년 후 한때 '공놀이를 보게 만들었던' 차붐이 다시 등장했었는데 아쉽게도 98년이었지요. IMF여파로 모두가 고통을 감내할 무렵, 차붐의 행보는 굉장한 이슈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IMF의 정신적 돌파구로 차붐에게 의지했고 그 바램이 실현될 듯 했던 것이죠. 그러다가 축구강국들과 부딪혀 좌절되자 그 비난의 화살은 차붐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인터넷이 이렇게 활성화되었다면, 그리고 오랫동안 관용TV와 관보가 외부 정보의 습득을 막거나 왜곡하지 않았으면 판도는 달라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일간지에는 '감독이 종교를 강요한다'는 식의 소설도 있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김도훈'선수는 없었을텐데... 아무튼, 축협은 정치적인 이유로 차붐을 비난했고, 민중들은 IMF의 현실(월드컵기간동안만큼은 잊을 수 있었는데)로 돌아가야한다는 인식으로 차붐을 물어뜯었지요. 개인적으로 차붐에게 있던 좋은 감정때문에 속상해 하던 때였기도 합니다. 그래도 대인배였던 차붐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유소년축구팀을 창설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지대해졌고 그동안 발달했던 인터넷망은 저 깊은 속에 잠겨있던 정보들을 하나씩 뱉어내기 시작하였으며 이제 사람들은 이를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98년 IMF때의 꿈이 2002년 실현되었고 그로인해 젊은이들이 깨어나 그 열정이 촛불까지 이어졌다면 과한 비약일까요?
안타깝지만 그동안의 빠른 깨어남이 일부 집단에 의해 저해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기도 합니다만....
각설하고, 현시대에서 TV보다 좋은, 그리고 정확한 정보는 '능동적으로 정보의 바다를 헤매어 자신이 취합'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고 지금의 월드컵 열기에 편승하여 그와 관련된 레코드와 타인의 정보를 소개합니다. 요것을 받아들여 판단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헤엄이 필요하겠지만요...
---------------------- 여기서부터 퍼온 글입니다 -----------------------
98년 월드컵은 차범근 책임이 아닙니다 - 다음 '진실만을'님 글
http://sports.media.daum.net/ncenter/debate/worldsoccer/#read^bbsId=F004&articleId=97470&tracker=off
차붐을 국내에서 찬양한다고?
차붐 동영상
http://cafe.daum.net/PSATYSG/Lyyq/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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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였죠
제가 살던 곳이 '스타드 드 프랑스' 즉 월드컵 주 경기장 근처였거든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탓에 경기장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텔레비젼으로 때마침 중계되던 한국 경기를 지켜보구 있었어요
하석주가 퇴장 당했던 멕시코 전 바로 그 경기였었죠
현지 캐스터와 해설자가 경기 직전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을 때부터 한국 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더군요
그럼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구 있었냐구요?
연신 차범근에 관한 얘기만 주구장창 늘어놓구 있더군요
캐스터와 해설자가 주거니 받거니 해가면서 uefa컵 대회 당시의 차범근이 썼던 전설에 관한 얘기만을 끊임없이 해대구 있었어요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시작된 뒤에두 경기 중계를 아예 접어버리구 계속해서 한국팀 감독인 차범근에 관한 얘기만을 계속 해대더군요
거의 전설에 대한 숭배의 감정을 계속해서 토로하는 데에 입을 놀리면서 경기 자체를 중계하는 일은 아예 뒷전으로 미뤄놓더군요
하석주가 골을 넣으니깐 잠시 동안 경기 상황에 관한 코멘트를 하더니만
이윽고는 또 다시 차붐 얘기만을 계속했어요
제가 좀 짜증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저 자식들은 경기 중계를 엉망으로 하는구만 싶더라니까요
곧바로 하석주가 퇴장을 당했죠
그러자 다시 경기 내용을 중계하는 데로 되돌아가더니만
이 자식들이 또 다시 차붐 얘기만을 늘어놓더라니까요
결국 멕시코 전이 끝날 때까지
얘네들은 골이 나는 장면만을 제외하구선 계속해서 끝까지 차붐 얘기만을 쏟아냈어요
그날 중계는 그렇게 끝났어요
네델란드 전에선 그나마 그 정도가 좀 덜 하더군요
그리구 한국팀 감독교체
프랑스 현지에선 대단한 쇼크였죠
비록 네델란드에 참패를 하긴 했었지만
그들이 숭배하는 전설적인 인물에 대한 한국 축협의 태도에 그들은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는 모양이었어요
이임생의 투혼과 함께
마지막 벨기에전은 유상철의 동점골로 경기가 끝이 났었죠
그 세번째 경기에선 한국팀의 감독 교체 얘기 즉 차붐이 당한 수모에 관한 얘기만 90분 내내 해대면서 한국팀 중계를 끝내구 말더군요
결국 98년 월드컵 당시 프랑스 현지 중계진은 한국팀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었구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붐 얘기로 시작해서 차붐 얘기로 중계를 끝맺구 말았었죠
어쨌거나
정작 국내에선 그 위상보다 굉장히 홀대를 받는 차범근이
유럽에서만큼은 축구계에서 압도적으로 전설적인 인물로 숭배되는 차붐이었단 걸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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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글이 아니라 신이나 영웅을 찬양하는 독일 전통시 ‘찬가(Hymne) 형식’을 빌려 1979년 ‘차범근 찬가(Hymne auf Bum Kun Cha)를 썼다. 가히 차범근을 신격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간동아’는 최근 어렵사리 독일 현지에서 헨샤이트의 ‘차범근 찬가’를 입수했다---
에크하르트 헨샤이크(번역 : 김원익 독문학 박사)
차범근 찬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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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라, 어머니 자연이여, 당신의 피조물의 모습은,
원대한 뜻을 품게 하였으니,
소년을 꿈꾸고, 생각하고, 또한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젊은이의 빠르고, 혼이 깃든, 경쾌한
발을 지닌. 그가 민첩하게, 쏜살같이,
윙윙대며, 멈칫하다, 이내 질주하니,
축포를 쏘고 축제를 벌이며, 프랑크푸르트인들의
뜨거운 가슴에 환희의 불씨를 지폈노라.
차범근! 동방에서 온 친구! 당신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노라. 귀화도 당신에겐 쓰라린
운명이 아니노라! 고향을 당신은 찾았으니,
제2의 고향을.
축구 신의 은총은 놀라워라.
아무도 몰랐노라, 언제 그리고 어디서
그가 푸스카스와 펠레와 겜페스 후임으로
선택받은 자를 새로 보내줄지.
하지만 신은 학수고대& #65279;하는 자신의 백성을 잊지 않고,
인도와 갠지스 강을 건너 아주 먼 나라로
탐색의 눈초리를 번뜩였노라.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남자들의 기상과 고상한 기운이
꽃피우고 있으니.
용맹스런 코리아여! 당신은 우리에게 차를 보내주었노라!
나의 연주여, 더 멋지게 울려 퍼져다오!
오래전부터 나는 당신을 사랑하노니,
석 달 전, 벌써 석 달 전부터 당신의 청춘의 빛이
노쇠한 아인트라흐트에 비추고 있나니.
우리는, 사랑하는 이여,
슈투트가르트와의 시합에서 당신을 처음 보았노라.
심장은 무엔가 홀린 듯, 아니 마법에 걸린 듯.
아! 그때 당신이 나무꾼 같은 푀르스터와
수토끼 같은 마르틴을 제치는 모습이란,
그들조차도 당신을 칭찬해마지 않았으니.
당신이 빗장수비를 뚫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이란, 마침내,
마침내, 하프타임이 끝나자마자, 당신은 공중
높이 몸을 솟구쳐 보르헤르스의 센터링을
이마로, 영리한 이마로 받더니
골문 맨 오른쪽 구석에 넣었노라.
그 순간 심장에 경련이 일어난 듯, 아름다운 경련,
기쁨과 환호성으로 하나 되는.
(중략)
바람에 코너킥 신호 깃발이 나부끼노라. 1급
위급상황. 차붐이 달려오고, 절묘한 센터링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이어지노라! 차붐은 이미
페널티킥 가까이에 서서, 후방을 지원하다가,
패스를 이어받노라. 이내 그는 미드필드에 숲길을 내고,
그의 빠른 발은 수문을 여노라. 현재는 사라진
과거의 영광을 모아서, 그라보브스키와
파프의 기술과 통일하고, 크레센도 연상시키고,
스츠타니스도 생각나게 하며. 공을 홀린 듯하니,
무뚝뚝한 골키퍼 토니조차도 감동하여,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당신의 볼에 키스했노라.
‘룬트샤우’지엔 이렇게 실렸노라….
HSV 침몰! 당신조차 술 취한 듯 정신이
얼얼했도다(3 : 2)!
아, 나는 당신이 구사하는 개인기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노라. 붐, 환희의 합창에 흠뻑 취해
큰 목소리로 함께 노래하고 싶노라, 축구를 꿈꾸는
어머니의 아들이여. 나도 기도하고 싶노라.
시합 전, 그리고 ‘룬트샤우’ 지에 실린 것처럼,
시합 중에도 ‘언제나 깊이 기도에 잠겨 있는’
당신처럼 기도하고 싶고,
내 일생 당신을 찬양하고 싶노라.
그리고 잘만 된다면, 끝내 기다리리라,
황홀한 순간에 무한히 아름다운 이가 퇴장하기를….
다만, 붐, 당신은, ‘파츠’에 실린 뉴스를 따르자면,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독일인들에게
설교하며 하나님에게 귀의하려 하나니,
붐,아마 그럴 필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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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은 98년 실패한게 아닙니다)
98년 일단 본선진출한 것 만으로도 대성공한겁니다..
당시 본선진출했을 때 차범근 완전 영웅대접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본선은 그냥 진출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전엔 아시아팀 티켓이 2장 이었습니다..98년에 3.5장, 06년에 4.5장으로 늘어났죠...
86년 30년만에 본선진출하고 1무 2패
90년 본선진출은 했으나 3패 (스페인, 우루과이.벨기에. )
94년 도하의 기적, 아시아축구인들이 일본보다 못 하는 한국이 나갔다며 아쉬워했죠.
(홍명보는 자서전에서 94년이 최강전력, 98년이 최악전력이라고 했습니다)
98년 이란에게 6:2로 완패하고 본선진출 못 할것 같자,
차범근에게 간절히 부탁해서 감독 맡겨 파죽지세로 승리하면서 본선진출
(본선진출 확정 이후 일본과의 시합만 패배)
즉, 당시 한국전력이 본선 나갈 전력이 아니었습니다, 차범근이기에 가능했던거죠..
전력은 별루였음에도 (예선)성적은 역대 월드컵 최고였습니다...
이걸 무시하면 안 되죠...
역대 본선진출해서 우리가 할 만했던 상대는
86년 불가리아, 90년 우루과이 94년 볼리비아정도 뿐이 없습니다...
02년 폴란드하고
따라서 94년 스페인 비긴게 엄청 잘 한거죠...(한 명 퇴장당한 덕에 종료직전 기적적으로 동점골 넣고..)
98년 네덜란드, 벨기에, 멕시코....다 우리보다 두수 위입니다...당시 멕시코 피파랭킹이 4위인가?
즉, 멕시코 네덜란드 져도 질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황선홍도 없는 마당에....
벨기에도 우리보다 강팀이죠...
항간에 차범근이 빠지니 비겼다고 했는데, 선수들은 차범근감독의 명예회복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 하자면
86년 불가리아와 94년 스페인, 98년 벨기에 비긴것은 엄청 잘 한 겁니다..
멕시코전 하석주퇴장전까지 우세한 경기 펼친 것 엄청 잘 한겁니다.
98년 3패로 지고 와도 감독에게 책임 물을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고 감히 한국에서 누가 차범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김연아가 아사다마오에 패했다고 질책할 수 있는겁니까?
더군다나 차범근은 도중에 대표팀을 맡아서 선수도 맘데로 못 뽑고, 훈련도 맘데로 못 하고, 평가전도 맘데로 못 하고 /본인 하고 싶은데로 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축협에서 패배의 책임을 차범근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대회도중 경질을 해 버린겁니다
"왜 하석주 골 이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 했냐? " 는 등등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차범근을 비난했습니다.
"왜 최용수를 기용 안 했느냐?" 고도 했는데 멕시코전 한국팀 평점 4.6점이었는데
김도훈 혼자 6점대(6.2점)이었습니다..그리고 최용수가 벨기에전에서 골 넣었나요?
정작 깨진 이유는 중국과의 평가전 황선홍 부상때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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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이 98년에 실패한 이유--히딩크와 차범근의 공통점
(1) 차범근이 체력훈련하는데, 차범근이 잘난척 하려고 지 유럽에서 배운것만 가르친다고 축협에서 언론동원해서 중단시켰다...전술훈련 하라고......헌데 히딩크도 체력훈련만 시켰지?
만약 체력훈련하고 갔다면 네덜란드 5:0까지 안 발렸을 것이다. (후반 막판에 세 골 먹었던 것으로 기억, 히딩크 왈 : 한국팀 체력이 너무 약했다.) 황선홍 갔으면 한 골 넣고 2:1정도로나 졌을 것이다.
(2) 그리고 두바이대회는 k리그 우승팀이 가는대회인데...보통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런데 그해 k리그 우승팀이 두바이대회 갔다오면 다음 k리에서 꼴지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다. 이유가 체력관리에 허점이 생기기때문에 리그팀들조차도 가길 꺼려하고 있었고 더욱이 대표팀감독인 차범근감독도 싫다고 했지만 k리그우승팀이 가려고 하지 않게 되자 평가전 같은것을 잡기 힘들었던 생색내기 바빴던 축협을 국대팀을 이용해 최대의 광고효과를 보려 했는지 감독의 거절을 무시하고 결국보냈다.
암튼 차범근감독이 거절했지만 축협의 강행으로 갔다왔다. 바로 두바이대회 휴유증이 네델란드전의 결과라고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차범근은 축구가 뭔지도 모르는 축협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존재가 아니다... 독일에서 차범근 경질소식 듣고 놀라서 귀화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베켄바우어는 바이에르 뮌헨 감독시켜줄테니 독일로 오라고 했다.....헌데 차범근은 유소년축구 등 국내에 할 일이 있다며 거절..도대체 이런 나라를 위해 애국을 했다는 말인가? 누구를 위한 애국인가? 어찌 세계가 알아주는 영웅을 조국이 버린다는 말인가? )
(3) 차범근이 중국과의 평가전 안 한다는데 이기고 기세 올라 가라고 축협이 억지주선
(도대체 중국 이겨서 무슨 기세가 올라간다는건지? 중국 이기면 멕시코 네덜란드 이긴데? )
히딩크 역시 약팀과의 평가전은 의미 없다면서 강팀만 골라서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시합에서 황선홍이 부상당했다는거. 황선홍은 98년이 전성기였다는거..
(4)하석주 어이 없는 퇴장...당시 백태클 퇴장규정이 처음 적용된 대회였다. 과도기의 혼란의 희생양이었다. 이어 벌어진 아르헨-일본전에서 하석주퇴장기준 적용하면 6명퇴장당했을 거라는 말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보다 두 수위 멕시코를 하석주퇴장전까지는 6:4 정도로 앞서고 있었다는거.... (당시 멕시코 피파랭킹이 4위였나? )
(5) 이 대목에서 천하의 쌍것 신문선의 행태를 보자.
차범근이 멕시코전에서 최용수 대신 불교신자 김도훈을 선발로 내세운다는 말을 들은 신문선이 "졌구나" 했단다..
헌데 당시 한국팀 평점이 4.6점이었는데, 김도훈 혼자 6점대(6.2점)였다.
김도훈을 기용한 이유는 수비가담능력때문.....
(최용수는 황선홍과 투톱으로 나설때만 능력이 발휘되기에, 황선홍 빠지자 최용수도 빼 버림..)
히딩크 역시 이동국을 수비가담능력미비로 발탁 안 했다.
결론적으로 체력과 수비가담이 차범근과 히딩크의 공통요구사항이었고, 둘이 뭘 안다는 말이다. 약팀과의 평가전도 그렇고....
입만 살은 떠벌이 속빈강정 주제파악 못 하는 신문선 따위는 알 수 없고....
02년 히딩크 의심론 일때, 국내감독들이 히딩크 못 믿겠다며 방방뜰때, 레슬링 할 것도 아닌데 무슨 체력훈련이냐? 전술훈련이나 하라며 (특히 박종환) 방방 뜰때, 차범근은 그냥 믿어 보자고 했다..명장은 명장을 알아봤던 것이다
도대체 차범근은 이런 나라를 위해 왜 애국을 했나? 그냥 독일에 눌러앉았으면 영웅대접받고 살 수 있었을텐데..월드컵 조추첨하는데 송혜교가 왜 나오냐? 이천수 같았으면 벌써 다른 나라로 귀화했을 것.......
PS: 신문선이 천하쌍것인 이유 : 여기서 쌍것이란 말은 못 배워서 막 되먹고 무식하다는 의미
그의 무례한 망언을 보자
(1) 차범근 황선홍 등 여러한국선수들이 세계축구의 벽을 뛰어넘지 못 했다
(차범근이 니 아래냐?)
(2) 이태리전 전반 끝나고.
정환이가 이 X끼가, 페널티킥 그거 이기라고 주는건데 , 팍 패 버렸어야 하는데 이 새X 이거...
(안정환이 니 쫄따구정도로뿐이 안 보이지? 그리고 페널티킥을 이기라고 주냐? 넌 차 본적이나 있냐?)
막말 동영상 :
http://tab.search.daum.net/dsa/search?w=vclip&q=%BD%C5%B9%AE%BC%B1&page=2&lpp=8
위로 가셔서 제일 위에 링크된 화면 클릭하고 , 6분 뒤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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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월드컵에서의 차붐 일화)
차붐이 골 넣으면 전광판에 한글로 <차범근> 석자가 새겨졌다는 것 다 아시는 일..
(1) 아드보 일행이 숙소근처의 경기장에 선수들을 이끌고 예정없이 방문하여 연습을 하겠다고 했는데, 경기장경비가 문을 안 열어주더란다
헌데, 마침 차범근도 같이 갔는데, 경비가 차범근을 보자마자, 그냥 문을 열어주더랍니다..
(2)차범근이 다른 나라 경기 보러 경기장을 찾았는데, 차범근이 관중석에 들어오자 장내아나운서가
"지금 경기장에 차붐이 오셨습니다."
(차붐동영상)
http://www.mncast.com/player/new_fullPlayer.asp?movieID=10004455620061022194932&lp=-1&chkNu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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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www.hoochoo.com의 김유석님 글
'차범근은 과연 세계적 선수인가? 아닌가?'
믿기지 않겠지만 차붐은 한국이 낳은, 또 아시아가 가졌던 유일한 세계 일류의 축구선수였다. 오래된 일이라 잘 모르는 네티즌들이 많으리라 본다. 근거를 제시하자면
1. 차붐은 79년 분데스리가에 진출한다. 당시 분데스리가는 세계최고의 리그였다. 프리미어리그는 출범전이었고 프리메라리가와 세리에 A는 아직 분데스리가의 명성을 따라잡지 못 하던 시절이었다.
2. 차붐은 소속팀을 바꾸어가며 두 차례나 독일에 UEFA cup을 안겼다. 당시 챔스리그는 아직 명성이 높지 못 하던 시기였고(이름도 유러피안 컵이었다) 오히려 토너먼트제이던 UEFA cup의 권위가 높던 시절이었다. 단순히 UEFA cup을 안은 것이 아니라 두 번 모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프랑크푸르트 시절 얻은 UEFA cup은 결승전에서 차붐의 결승골 어시스트에 의해 얻어졌고, 레버쿠젠 시절 얻은 UEFA cup은 차붐은 세번째 골에 의해 얻어졌다. 경기 종료후 독일 전차군단의 핵심멤버였던 마테우스는 "난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붐은 현존 최고의 선수다'란 말을 남기기도 했고, 독일 대표팀 감독을 나중에 역임하기도 했던 레버쿠젠팀의 감독 에릭 리벡은 한참동안 차붐을 껴안고 포옹을 풀지 않기도 했다.
3.그의 독일에서의 선수시절 배번은 11번이었다. 이 번호는 그가 국대시절부터 착용하던 번호였다. 레버쿠젠으로 이적할 때 팀은 차붐에게 11번을 주기 위해 다른 선수의 배번을 바꾸기까지 했다. 차붐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자신이 원하는 배번을 달았던 유일한 아시아 선수였다.
4. 그는 분데스리가 선수시절 총 308경기에 출장 98골을 넣었다. 물론 이 수치는 순수한 리그경기의 골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만약 UEFA CUP의 골과 FA CUP의 골을 포함한다면 총 골 수는 100을 넘어간다. 그리고 이 숫자에는 단 한개의 패널티킥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5. 차붐의 실력은 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시스트와 다른 선수를 커버해주는 면에서도 발군이었다. 그는 팀에서 명실공히 가장 중심부에 선 선수였던 것이다. 옛 분데스리가 동료는 이런 차붐을 두고 " 그는 골을 많이 넣기도 했지만 골 숫자 이상의 엄청난 가치를 지닌 다이아몬드 같은 선수였다. 골 숫자는 그가 보여줬던 엄청난 실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한다."
6. 그가 은퇴를 결정했을 때 37이라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 감독은 엄청나게 만류했다. 심지어 분데스리가 및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의 다른 팀에서도 은퇴하려는 그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번복하지 않았다.
7. 그는 A 매치에 100경기 이상 출장한 최초의 한국선수였다. 그리고 그는 그 경기들에서 50골 이상의 골을 넣었다.
8. 분데스리가 팀과의 계약 때문에 그는 86 월드컵에 유일하게 출장한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의 상대팀들은 오직 차붐에게 3명의 수비수를 전담마크시키는 전술을 쓴다. 덕분에 공간이 생겨 다른 한국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9. 프랑크푸르트에 첫 UEFA CUP을 안긴 직후 차붐은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귀화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한국축구에 대한 강한 소명의식이 있던 차붐은 이를 거절한다. 독일 감독은 "만약 차붐이 귀화한다면 대표팀의 공격력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라고 탄식했다.
10. 86년 차범근은 분데스리가 MVP로 선정된다. 또 나중에 차범근은 독일 축구협회가 선정한 80년대 분데스리가 10걸에도 선정된다.
여기까지가 그의 선수로서의 이력이다. 뭐 할 말은 더 많지만 여기까지 하기로 하자. 난 그의 감독으로서의 이력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사실 감독으로서의 그의 능력은 여전히 검증 중이고 그는 여전히 명장이 되기 위해 실전 수업중이라고 본다. 내 생각엔 한국처럼 인맥과 지연을 중시하는 사회에선 외국감독이 감독을 하는 게 맞다. 아직 한국감독이 감독을 하기엔 한국축구는 축구 외에 신경쓸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차붐은 분명히 능력있는 사람이고 언젠가 우리는 그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감독이든, 축협 기술위원이든.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첨부하자면
1. 그의 선수시절 스승은 저 유명한 토탈싸커의 창시자 네덜란드의 리누스 미셸이었다.
2. 그는 독일에서 A급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한 유일한 한국인이다.
3. 선수 은퇴직후 프랑크푸르트는 그에게 코치직을 제시한다. 말이 코치직이었을 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에게 감독이 되기를 바라는 제안이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요직을 맡고 있던 샬리 쾨르벨은 "차붐이 프랑크푸르트에 코치로 와서 감독이 될 것이다"라고 신문에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축구를 일으키려는 큰 소망을 가지고 있던 차붐은 이 제안을 거절한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측 인사들과 차붐의 아내였던 오은미 씨는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4. 98년의 결과는 차붐의 책임이 아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98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그가 거든 6승 1무 1패의 빼어난 실력으로 인해 월드컵 직전까지 그는 국민의 영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조중연을 비롯한 축협인사들은 차범근의 영웅되는 모습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리고 본선진출이 확정된 후 차붐은 감독이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팀을 운영할 수 없도록 축협의 견제를 받는다. 놀라운 사실은 축협의 고위 인사들이 우리팀의 선전보다도 차범근 죽이기에 더 힘을 & #50043;다는 사실이다.
히딩크가 훌륭한 참모진들을 꾸릴 수 있었던 반면(비디오 분석관에 비서까지), 차붐은 거의 모든 일은 자기 손으로 직접 챙겨야 했다.
(괄호안은 현역)
AAA 펠레 마라도나
AA 보비찰튼 조지베스트 베켄바우어 요한크루이프. 플라티니, 지단
(호나우도 호나우딩요 추가 예정)
A 차범근 에우제비오
BBB 뮐러, 마테우스, 루메니게, 지코, 베르캄프, 클린스만 (앙리, 피구)
BB 홍명보, 파울로 로시, 로베르트 바조 (또디)
B (발락, 모리엔테스 > 클로제 박지성)
(펌)
이모부와 필자, 그리고 이모..
(식사중에 물어봤습니다. -_- 이모집에 찾아갔음..)
필자 : 독일에 계실때 차붐 어땟어요?
이모부 : 왜?
필자 : 아..게시판에서 차붐 재평가 머 그런 이야기가 있어서요.
이모부 : 음.. 차붐..대단했지.
필자 : 그 당시 분데스리가는 어떤 리그였어요?
이모부 : 음..세계 최고의 리그 중에 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
필자 : 그럼 이모부는 차붐이 레전드 급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모부 : 아니..그건 아니고..
필자 : 독일에서는 대단한 영웅으로 인식되잖아요
이모부 : 그러니까 그건 독일에서 이야기고..
필자 : 차붐 경기 보러 가셨어요?
이모부 : 당연하지.. 차붐 경기 있는 곳은 왠만하면 다 찾아다니고 그랬지
필자 : 골넣으면 한글로 차범근 이름 나오고 그랬다던데..
이모부 : 그래 맞지.. 그 당시에 그 이름보면 울컥하고 그랬었는데..
필자 : 그런가요? 그런데 차붐이 레전드급 아닌데 어떻게 그정도까지 해줬죠?
이모부 : 음 그러니까 아시아인이 그 당시엔 리그에 없었는데
왠 황색인종이 와서 잘하거든..
그러니까 그게 더 부각되어서 잘한다. 머 그런 이야기가 나온거고
스포라이트도 받은거고 그런거지.
필자 : 그렇군요.. 그럼 현재 세계적인 프로축구 선수 중에 비교하면 누구정도겠어요?
이모부 : 머..내가 축구 경기 많이 보지만.. 글쎄..
내가 아는 이름이 별로 없으니까 딱 누구라고 말을 못하겠네.
필자 : 그럼 피구나 지단을 비교하자면요?
이모부 : 에이~ 그건 아니지..
필자 : 그럼 그 보다 한레벨 아래?
이모부 : 한 레벨 아래라기 보다 조금 부족한 정도?
필자 : 그럼 박지성이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이모 : 에이..그건 이모가 생각해도 아니네
이모부 : 그렇지 , 박지성이랑은 비교가 안되지..
필자 : 그래도 박지성 잘해주고 있잖아요
이모부 : 그렇긴한데. 그래도 안돼..차붐한테는.
필자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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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포츠 잡지 중에「주간 사커 다이제스트」라는 축구전문 잡지가 있습니다.이 잡지에 [Great Player 열전] 이라고 하는 코너가 있더군요.
이 코너는 역대 세계 축구계를 주름 잡았던 옛스타들의 전성시절을 회상하는 코너인데 제 6회 째[Great Player 열전]에 우리 차범근 감독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지난 5월 중순인가 말 경에 나온 잡지에 소개되어 있었어요.)
차범근이 UEFA컵 우승(88년 레버쿠젠 우승 때)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는 사진과 함께 차범근에 대해 평한 글이 실려져 있더라구요.
[Great Player 열전]을 소개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독일의 유명 축구 평론가인 귄저 네쩌입니다.( 귄저 네쩌에 관해서는 밑 부분에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그 잡지에 실린 귄저 네쩌의 [Great Player 열전] - 차범근 편 - 을 제가 서투르지만 번역 해 봤습니다. 귄저 네쩌가 기고한 이 글은 안도 마사즈미(安藤正純)라는 분이 일본어로 번역해 놓은 것인데 그것을 제가 다시 우리 말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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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귄저 네쩌의[Great Player 열전]
- 차범근 편-
세계 각지에서 차범근을 만날 때마다 그 시절에 왜 차범근과 인연이 없었을까? 하고 자책하곤 한다.
그 시절이라고 하면 내가 함부르크SV의 매니져를 하고 있었을 때이다. 새로운 스트라이커를 영입해 전력을 강화하려고 했을 시기는 함부르크가 분데스리가 챔피언 타이틀을 지키고, 유럽컵 아테네 시합에서 유벤투스를 꺾고 난 바로 뒤였다.
스트라이커 후보로 거론 된 인물은 프랑크푸르트의 차범근과 장래성이 있는 젊은 독일선수 두 명이었다. 박력있고 운동량 풍부한 샤트 슈나이더와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운데, 측면 어느쪽에서 든 훌륭한 패스와 센타링을 구사할 수 있는 볼프람 푸트케가 바로 이 두 젊은 독일선수들이었다.
나는 차범근을 택하고 싶었다. 차범근은 당시 분데스리가 공격수 중에서 어느 누구보다 강하고 우수한 선수였다. 그 때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강의 리그였다.
그러나 마음 한 부분에서 또 다른 꼬득임이 있었다.'너는 이미 유럽 챔피언 팀 매니져로서 반년이란 세월을 보냈잖아! 팀에는 국제 경험 풍부한 선수가 남아돌 정도로 많이 있고..... 그러니 젊은 선수 둘을 택해라. 베테랑 선수들이 그 젊은 녀석들을 멋지게 키워 줄 것이다.'
그 후에, 그것이 큰 실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대 축구에 적응할 수 없었던 두 젊은 선수에 의해서 그토록 강했던 팀이 비참하게 망가져 버리고만 것이다. 함부르크는 이 후 우승은 물론, 우승 다툼 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 홀스트 후루베쉬와 랄스 바스돌프등의 공격진에 차범근을 끌어드려 페릭스 마가트와 만프레도 칼츠의 패스와 센타링을 받아 주었다면 함부르크는 3번째 리그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츠펠트와 에휀 베르크 콤비로 성공을 이룬 바이에른 뮌헨과 같은 황금기를 우리도 당시에 구가할 수 있었다고 지금도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나는 매니져로서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다. 오로지 '장래성' 하나만 보고 차범근과 같은'안전패(安全牌)'를 버렸던 것이다.
차범근은 신뢰할 수 있는 선수의 표본이다. 차범근은 케빈 키건과 함께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모범적인 외국인 선수였다. 컨디션의 기복이 거의 없었고, 지방의 친선 시합과 같은 게임에서 조차 전력을 다해 플레이했다. 당시 아시아 출신 선수가 그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의 제 1선에서 활약 한다고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차범근은 유럽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시아인이었다. 차범근 정도라면 세계의 어느 클럽, 어느 공격진에 들어 가더라도 주전 멤버로 활약했을 것이다. 차범근은 골을 확실하게 터뜨렸을 뿐아니라 동료들에게 송곳과 같은 어시스트를 제공했다.스트라이커로서 차범근은 흠잡을 때가 전혀 없었다.
현재까지 아시아에서 차범근 정도의 플레이어는 배출되지 않고 있다.사실, 당시에 일본에는 가마모토 구시니게라는 훌륭한 센타포오드가 있었다. 데트마르 크라머가 놀랐을 정도로 재능있는 선수였다.그러나 그 당시 일본을 떠나 전혀 다른 문화권의 나라에서 프로 축구선수로 활약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현재 나카다 히데토시가 유럽에서 어느 정도의 레벨까지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나카다가 10년간 유럽 무대에서 대활약한 차범근과 같은 수준의 실적을 올릴 수 있을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여서 말하면, 차범근은 세계 축구 전문가들로부터 [20세기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차범근은 플레이 면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동료들과 팬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인인 차범근은 후에 브라질에서 독일로 건너 온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전파한 기독교 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기독교 선교사로서도 활동한 차범근에게 영향을 받은 선수들, 브라질의 죠르지뇨, 파울로 세르지오, 또한 레버쿠젠 팀동료였던 제 호베르토 루치오라고 하는 선수등은 스타디움 안에서도 늘 신앙의 모범을 보였다.
1980년의 일이었다. 레버쿠젠의 DF 유르겐 겔스돌프는 그 해 UEFA컵 챔피언에 오른 프랑크푸르트의 스트라이커 차범근에게 경기 도중, 등 뒤에서 심한 태클을 가해 큰 부상을 입혔다. 겔스돌프의 파울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테레비를 통해 그 장면을 목격한 독일 축구팬들도 경악했다.
차범근 주치의는「제 2 요추 골횡 돌기부 골절」이라고 진단 내렸다. 차범근이 병원에서 선수 생활의 사활을 걸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을 때 프랑크푸르트는 매스컴을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의 문서를 발표했다.「차범근은 [증오가 아닌 용서] 라고 하는 기독교적 신념에 입각해 겔스돌프에 대한 형사 고발을 거부합니다.」라고.
이후 3 년 뒤, 차범근은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 첫날 차범근은 겔스돌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 날 부터 둘은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무렵 있었던 인터뷰를 나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도를 넘어선 강한 태클과 지져분한 플레이로 덤벼드는 상대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대처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차범근은 이렇게 답했다.「그러한 상대에게는 '이것은 룰 위반이고 파울이다. 또한 품격없는 행위다' 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무시합니다.」라고.
품격있는 차범근에게 있어서는 '보복 행위' 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범근 처럼 스피드가 있으면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서 그 민첩함을 살려 페널티킥을 자주 얻어낼 수 있지 않았겠느냐? 라는 질문에 언제나 웃으면서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나는 그런 행동은 안합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자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라고.
차범근이 레버쿠젠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독일의 어느 기자가 작별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메시지의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수라장(修羅場)을 맨발로 뛴 10년. 그 수라장(修羅場)이라고 하는 곳은 바로 분데스리가의 페널티 에이리어 안이었다.」
- 이상 - ( 귄저 네쩌 글은 여기까지 입니다.)
문장이 조금 딱딱하고 어색한 것은 제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이고 아울러 완전히 직역을 했기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 부분에 관해서는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 잡지에 [Great Player 열전]을 싣고 있는 독일의 귄저 네쩌의 프로필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지요.
귄저 네쩌(GUNTER NETZER): 1944년생. 9월 14일생.
선수시절 포지션: 미드필더
소속팀: 보르시아 MG(63년 ~ 73년) - 레알 마드리드(73 ~ 76) - 스위스 그라스
호퍼(76 ~ 77년)
월드컵 출전: 74년 뮌헨 월드컵.
제가 귄저 네쩌의 활약상을 전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자세히 평할 수는 없고 그져 제가 알고 있는 부분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귄저 네쩌는 현재 독일에서 축구 평론가겸 해설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입니다. 일찌기 귄저 네쩌는 독일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 미드필더였다고 하더군요.(전성기는 60년 대 말 ~ 70년 대 중반)
역대 독일 선수 중 가장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던 미드필더가 귄저 네쩌였다고 합니다.
72년 독일이 유럽컵을 차지할 때 베켄바우어와 세련된 콤비 플레이를 펼친 걸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귄저 네쩌는 정작 월드컵에서는 큰 활약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같은 세대인 볼프강 오베라트라고 하는 미드필더에게 대표팀 주전 자리를 빼았겼다고 합니다.
창조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귄저 네쩌에 반해서 오베라트는 키는 작지만 엄청난 기동력을 바탕으로 투쟁심이 대단했던 선수였다고 합니다.
72년 유럽컵에서 독일이 우승할 때 귄저 네쩌가 워낙 발군의 기량을 발휘 했었기 때문에 74년 뮌헨 월드컵에서도 대활약이 기대 됐었는데 결국 월드컵에서는 오베라트에게 밀리고 말았답니다.
볼프강 오베라트 프로필도 조금만 소개 해 드리고 넘어갈께요.
볼프강 오베라트(WOLFGANG OVERATH): 1943년생. 9월 29일 생
포지션: 미드필더.
소속팀: FC쾰른(1963년 ~ 1977년)
월드컵 출전: 66년, 70년, 74년 월드컵.
(유럽 축구를 공부하고 계시는 후추인 여러분들은 귄저 네쩌와 오베라트를 반드시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는 70년 대 초, 분데스리가의 명문 보르시아 MG가 한국에 내한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귄저 네쩌도 왔답니다.
그 당시 보르시아 MG와 한국 대표팀이 평가전을 가졌는데 그 때 귄저 네쩌가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시킨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신 확실한 것이 아니고 어디선가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말씀을 드릴 수가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 김영걸 님께서 자세히 알고 계실것 같은데요?
( 귄저 네쩌와 오베라트의 프로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일본어로 된 유럽축구 전문서적에서 발췌한 것이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제가 조금 알고 있는 것을 말씀 드린 것입니다.)
참고: 위의 [Great Player 열전] 내용 중에 '차범근은 유럽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시아인이었다' 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차범근 이전에 일본의 오쿠데라가 차범근 보다 2년 먼저(77년)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습니다.
그런데 귄저 네쩌는 차범근을 '유럽에서 활약한 최초의 아시아인' 이라고 표현했더라구요. 이것은 제가 볼 때 귄저 네쩌가 오쿠데라를 몰라서, 아니면 글 쓰는 도중에 잠시 착각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워낙 차범근의 위상이 대단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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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독분비관에 올라온 수많은 글 중에서 차범근 감독에 관한 글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 역시도 차범근 감독에 관한 글을 몇차례 올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 마다 우리 후추 가족 여러분들께서 많은 호응을 해 주셨었지요.
그런데 걔 중에는 이런 글도 몇 개 읽은 기억이 납니다.
* 차범근은 과연 세계적 선수인가? 아닌가?
*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러는데 차범근은 솔직히 별것 아니라고 하던데?
* 차범근이 소속해 있던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은 당시 약팀이었기에 차범근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 차범근은 플라티니 또는 지코 수준의 선수가 아니기에 세계적 선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 차범근은 개인기가 없다?
* 차범근은 국내 매스컴을 통해 과대 포장 된 선수라고 누가 그러던데?
대략 이런 식의 질문성에 가까운 글들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제가 이러한 질문이 있을 때마다 곧바로 답변을 해 드릴까 하다가 그냥 넘어 갔었습니다.
기왕이면 날 한번 잡아 여기에 대한 답변 내지는 반박을 제대로(?) 한번 해 드리려고요.(솔직히 자격은 없지만......^&^)
그 날이 바로 오늘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이 부분에 관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글을 풀어 나가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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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범근은 과연 세계적 선수인가? 아닌가?
이 질문에 관해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과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가 아닌 차범근의 모국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말입니다.
쉽게 이야기 해서, 차범근을 좋아하는 사람들 측에서는 '두 말할 필요없이 차범근은 세계적 선수다!' 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고, 반면에 차범근만 봐도 구역질이 난다는 사람들 측에서 봤을 때는 '차범근이 우수한 선수이긴 하지만 결코 세계적 선수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극적인 현실인지는 몰라도 차범근의 '축구 실력' 은 한국 축구인들 보다 유럽 축구인들에게 더 확실하게 인정 받고 있는 게 사실인 듯 합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차범근의 축구 실력과 유럽에서의 활약상을 국내 전문가들이 잘 몰라서가 아니라, 함부로 머리를 수그리지 않는 차범근이 꼴같지 않으니까 아이야 인정을 안하려 드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일부 축구계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팬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선수를 가지고「세계적 선수」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한 마디로, 세계적인 선수란 세계적인 축구 시장(아무래도 유럽 무대라고 봐야겠지요.) 에서 그 플레이가 완벽하게 통하면 그것은 곧「세계적 선수」라고 불리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전혀 깊이 생각 할 필요 없이요.
차범근은 독일에서 1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맹활약하며 유럽 전문가들로 부터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라고 인정을 받은 인물입니다. 또한 누구나가 다 알고 있듯이 결과까지 냈구요. 그렇다면 차범근은 세계적인 선수임에 틀림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범근에 대해 그 쪽 전문가들이 '세계적 스트라이커' 혹은 '최고의 스트라이커' 라고 극찬한 것은 축구 후진국의 선수가 축구 강국인 독일에 와서 10년 간 열심히 뛰었으니까 예의상 가볍게 립 서비스를 한 것에 불과 할까요?
유럽 축구 시장이 무슨 인권 단체 입니까? 축구 후진국 선수한테 그렇게 친절을 베풀게! 그리고 프로 세계가 그렇게도 인정있고 푸근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입니까? 더군다나 유럽 무대가?
위의 쿤트네처 글에서 일본의 가마모토 구니시게 (釜本邦茂) 얘기가 나왔는데 일본에서는 가마모토를 세계적 선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가마모토는 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할 때 일본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였으며 아울러 대회 득점왕(6 게임에서 7 득점)까지 차지한 인물입니다. 일본에서는 가마모토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축구계에서는 가마모토를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 혹은 '역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로 부르는데는 주저하고 있습니다.
가마모토가 멕시코 올림픽에서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유능한 스트라이커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한국에 차범근이라는 '거목' 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 아시아 최고의 선수', '역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는 일본의 가마모토 구니시게가 아닌 한국의 차범근이라는 걸 일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추인 여러분!
자존심 강한 일본 놈들이 왜 가마모토 보다 차범근을 한 수 위로 평가하는 줄 아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차범근은 유럽 무대에서 확실한 검증을 받은 선수이기 때문입니다.비록 가마모토가 올림픽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그것 하나 가지고는 차범근한테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일본 축구 전문가들이 그렇게 얘길하고 있고, 또한 일본 축구 전문 서적이나 잡지 에서도 이와같이 평가하고 있는 것을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차범근을 '아시아의 호랑이(アジアの虎)'라고 표현하고 있거든요.
(참고: 일본의 가마모토 구니시게에 대해서는 제가 예전에 독분비관에 '차범근은 스트라이커가 아니라구?'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을 때 조금 다룬 적이 있으니 참고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차범근이 세계적 선수냐? 아니냐? 라는 얘기만 나오면 정말 피가 꺼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물론 일부이겠지만) 무슨 놈의 피해 의식이 있길래 차범근의 실력과 명성을 믿으려 하지 않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입니까? 차범근이 세계적 선수라는 게 두려운 것입니까? 아니면 차범근이 한국 축구 선수였던게 쪽팔린 겁니까?
유럽의 '검증 된' 축구 전문가들에게 무려 10년 동안 검증을 받은 축구 선수가 우리의 차범근입니다. 더 이상에 어떤 검증이 또 필요하단 말입니까?
차범근이 세계적 선수냐? 아니냐? 는 더 이상 딴지를 걸 필요가 없습니다.
차범근은 '세계적 선수' 임이 분명할 뿐아니라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큰 자부심을 갖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 차범근이 소속해 있던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은 당시 분데스리가의 약팀이었기에 차범근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예전에 독분비관에 올려진 차범근에 대한 비판(?)의 글 중 이와 같은 내용도 올려져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예리한 지적이긴 하지만 솔직히 어딘가 모르게 조금 야비한 감이 듭니다.)
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사실 아인트라하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엘 레버쿠젠은 차범근이 활약할 당시에 강팀은 아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1963년 분데스리가가 창설될 때 함부르크SV, FC쾰른, 카이져스 라우테른과 함께 같이 출발했던 명문 팀이었지만, 차범근이 입단 했을 때는 중, 상위권에 속하는 팀이었지, 막강한 전력의 팀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약한 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당시 분데스리가 최강팀은 바이에른 뮌헨과 함부르크SV 였지요.
대신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명한 선수가 꽤 많이 소속 되어 있었어요.
74년 뮌헨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그라보스키와 휄첸바인. 그리고 독일대표 경험이 있는 니켈, 노이베르거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당시 세계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한 명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전기 철조망' 브르노 페차이도 프랑크푸르트 소속이었지요. 백넘버 5번이었던 페차이는 프랑크푸르트의 간판 선수였습니다.(페차이는 지금 故人입니다.)
페차이는 현 포르투갈 대표 중앙 수비수인 훼르난도 코우토와 아주 비슷한 이미지의 수비수였습니다. 플레이 스타일이나 헤어 스타일 모두요. 페차이 머리가 조금 더 곱슬거리긴 합니다만......
그리고 돈 많은 구단으로 알려져 있는 바이엘 레버쿠젠은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하위권에 속하는 팀이었는데, 차범근을 영입하면서 부터 중위권으로 도약을 했습니다. 당시 레버쿠젠은 독일 대표가 한 명도 없었을 뿐아니라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선수가 차범근 이전에 단 한명도 없었을 겁니다. 차범근이 아마 레버쿠젠 구단 사상 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한 선수였을 꺼에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어떤 운동 선수든지 반드시 명문팀 혹은 강팀에서 뛰어야만 세계적 선수로 인정 받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선수가 약한 팀에 소속 되어 있다고 해서 그 선수를 평가절하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지요.
여기서 저의 견해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예를 깔끔하게 하나 들어 드리겠습니다.
'하얀 펠레' 로 불리운 브라질의 축구 영웅 지코(현 일본 대표팀 감독)는 이태리에서 활약 할 당시 소속팀이 우디네제였었습니다. 우디네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SERIE-A 리그 중,하위권을 맴도는 팀이쟎아요.
아르헨티나의 카브리엘 바티스투타 역시 AS로마로 이적하기 전까지 SERIE-A 리그중, 하위권인 피오렌티나에서 뛰었지 않습니까. 포르투갈의 루이 코스타(현 AC밀란)와 함께요. 더군다나 피오렌티나는 바티스투타가 있을 때 2부 리그로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또한 94년 미국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브라질의 둥가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 할 당시 소속팀이 어디였었습니까? 바로 독일 슈투트가르트였습니다. 90년 대 중반 경의 분데스리가 라면 차범근이 활약할 당시와 비교했을 때 보다는 솔직히 레벨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은 후추인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지코와 바티스투타, 둥가는 명문 팀(강팀)에서 뛰질 않았기 때문에 '세계적 선수' 라고 보기 어려운 걸까요?
차범근이 당시 강팀에서 뛰질 않았기 때문에 그의 실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논리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유치한 억지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약팀의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강팀들과 맞서 그렇게나 많은 득점을 올렸다는 것에 더 많은 갈채와 박수를 보내야 마땅한 것이 아닌지요? 차범근이 쌓아올린 그 기록과 그 명성은 다 강팀들과 싸워서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인 것입니다.
'차범근은 어떠한 리그, 어떠한 팀에 가더라도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스트라이커다.'라고 쿤트네처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당시의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고의 리그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쿤트네처가 술 쳐먹고, 그냥 헛소리 한 것일까요?
차범근 감독 명예의 전당 인터뷰에도 나오지만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를 나올 때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차범근을 영입하려고 했다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태리 AC밀란과 나폴리에서도 당시 차범근에게 입단 제의를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인터 밀란이 아니라 AC밀란이라서 안 갔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신앙의 문제도 있고 이런 저런 사정이 있어서 이태리로 안가고 독일에 남은 것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레버쿠젠이 제시한 조건이 가장 좋았었겠지요.
위의 쿤트네처 바람대로 당시에 만일 차범근이 레버쿠젠으로 이적하지 않고 강팀인 함부르크SV로 이적을 했었다면 차범근은 레버쿠젠에서 보다는 훨씬 더 볼을 수월하게 찰 수 있었을 겁니다.
쿤트네처가 위의 글에서 거론한 후루베쉬나 마가트, 그리고 칼츠는 당시 독일 대표팀의 주전 멤버들이었는데 차범근이 이들과 함께 함부르크SV 에서 호흡을 맞추었다면 아마도 분데스리가 통산 120골 정도는 족히 떠뜨리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98골도 대단한 것이지만요.
당시의 함부르크 전력은 독일에서 뿐아니라 유럽에서 손 꼽히는 강팀이었어요.
후루베쉬, 칼츠, 마가트 이 외에도 좋은 선수들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케빈 키건도 함부르크SV 에 몸담았던 적이 있었지요.)
이야기 나온 김에 홀스트 후루베쉬, 페릭스 마가트, 그리고 만프레도 칼츠에 대해서 말씀 드릴께요. (예전에 제가 후루베쉬에 대해서는 조금 다룬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후루베쉬는 신장이 190cm 가까이 되는 장신 선수였습니다. 백넘버는 9번이었는데 대단히 뛰어난 헤딩 능력을 구사했던 공포의 센터포오드입니다. 별명이 '헤딩괴물' 이었어요. 별다른 테크닉은 없었지만 스케일이 큰 축구를 했던 선수입니다.
82년 스페인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은 프랑스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5 대 4 로 이긴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와의 승부차기 당시 독일 대표팀의 마지막 킥커가 후루베쉬였습니다. 차범근이 그 시절에 함부르크SV로 갔었다면 후루베쉬와 투톱을 이루었을 겁니다.
후루베쉬는 지난 유로 2000 에서 독일 대표팀의 코치로써 리벡 감독을 보좌하더군요.(참고: 후루베쉬는 원래 '루베쉬' 라고 발음해야 맞는 것이라고 전에 김영걸 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가트 역시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의 왼 쪽 윙으로 뛴 선수입니다.
백넘버 10번의 마가트는 스피드와 페인팅이 아주 좋은 선수였습니다. 생김새가 브라질의 블랑코(94년 월드컵 우승 멤버)와 흡사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차범근 감독이 푸스발레러(분데스리가 팀을 지도할 수 있는 코치 자격증)코스를 밟을 때 마가트도 함께 수업을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칼츠는 70년 대 중반 ~ 80년 대 초까지 세계 최고의 오른 쪽 풀백으로 명성을 날렸던 유명한 수비수입니다. 백넘버는 대표팀에서는 20번을 달았고, 함부르크에서는 2번이었어요. 184cm의 장신에 바가지 머리를 휘날리며 오른 쪽 측면 공격을 아주 많이 했던 선수입니다. '오바래핑의 원조' 가 만프레도 칼츠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제가 만프레도 칼츠의 직필 싸인을 가지고 있답니다. 물론 직접 받은 것이지요. ^*^ 브르노 페차이 싸인도 있구요. 제가 이 두 선수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82년 스페인 월드컵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후추의 젊은 분들(특히 유럽 축구를 공부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당시 독일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들을 제가 기억나는 대로 소개 해 드리지요.(괄호 안은 소속팀입니다.)
GK
슈마커(FC 쾰른)
DF
칼츠(함부르크SV), 브리겔(카이져스 라우테른), B 푀르스터, KH 푀르스트(슈투트 가르트), 스텔리게
(참고: 주전 스위퍼였던 스텔리게의 소속팀을 제가 지금까지 모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B 푀르스터, KH 푀르스트는 쌍동이 형제입니다. B푀르스터가 형이지요.)
MF
리트바르스키(FC 쾰른), 브라이트너(바이에른 뮌헨), 드레 뮐러(드레 뮐러 소속팀도 모르겠네요.)
FW
루메니게(바이에른 뮌헨), 피셔(샬케 04), 한스 뮐러(슈투트가르트), 후루베쉬, 마가트(함부르크 SV)등 대략 이 정도 입니다.
(이들 선수들 이름 보시면 김영걸 님께서 가장 기뻐 하실 것 같군요.^0^)
괜히 이야기가 독일 선수들 쪽으로 빠진 듯 한데, 다시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차범근이 소속 해 있던 프랑크푸르트와 레버
쿠젠이 강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차범근의 실력에 의문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입니다.
* 차범근이 플라티니와 지코 수준이 아닌데 어떻게 세계적 선수라는 것인가?
이와 비슷한 글도 독분비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정말 너무 하다는 생각 밖에는 안들더군요.(이 글 역시도 '누가.....그러던데?' 식의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 시절(70년 대 말 ~ 80년 중반)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선수 중에서 플라티니, 지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선수들이 과연 몇이나 됐는지 한 번 저에게 말씀을 좀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폴란드의 보니에크. 독일의 브라이트너, 아르헨티나의 마리오 캠페스, 발다노.
브라질의 소크라테스, 팔카오. 프랑스의 티가나, 질레스, 이태리의 시레아, 브르노 콘티, 파울로 롯시등의 수퍼스타들도 플라티니와 지코의 실력과 명성 앞에서는 초라해 보일 정도입니다.(유일하게 독일의 칼하인츠 루메니게만이 이 두 선수와 같은 레벨의 선수로 평가 받았습니다.)
이들 세대를 잇는 우루과이의 프란시스 콜리, 독일의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네덜란드의 루드 굴리트, 프랑크 라이카르트, 이태리의 프랑코 바레시,벨기에의 엔조 시포, 루마니아의 하지, 프랑스의 에릭 칸토나, 쟝 피에르 파팽, 덴마크의 라우드롭 형제, 잉글랜드의 게스코인, 유고의 스토이코비치, 그리고 지금의 베컴, 히바우도, 베론, 토티등도 플라티니, 지코한테는 안됩니다.
피구나 지단도 이 두 선수를 능가한다고 자신있게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천하의 로베르토 바지오도 이 두 선수한테는 솔직히 역부족입니다. 바지오가 어릴 적 부터 가장 존경하고 또 본 받고 싶어 했던 축구선수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지코예요. 지코!!
바지오가 지코의 플레이를 흉내 내면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바지오 얘기로는 지코에 대한 존경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하더군요. 지코 처럼 볼을 차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됐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지코를 전혀 좋아하질 않습니다. 옛날부터 이상하게 정이 안가더만요.)
그리고, 바지오가 90년인가 피오렌티나에서 유벤투스로 이적 하자마자 10번을 달았다는 것은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계시리라 보는데 그 이전까지 유벤투스 10번은 플라티니였습니다. 그 당시 바지오가 게임 중에 조금이라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플라티니를 못 잊어 하는 유벤투스 팬들이 '바지오는 10번이 아니라 9.5번 선수다!' 라고 비아냥 거렸을 정도였어요. 플라티니가 그런 선수였습니다.
플라티니와 지코는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로 추앙받고 있는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죠지 베스트, 보비 챨튼등과 거의 같은 급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대 이 두 선수를 능가 할 수 있는 인물을 자신있게 뽑아 보라고 한다면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이외에는 없습니다.
(저의 경우엔 마라도나를 축구 선수로 보질 않습니다. '神'으로 보고 있지요.)
이러한 전설적인 인물들과 차범근을 꼭 비교해서 폄하해야 속이 후련한 건가요?
그런 건가요?
극단적으로 따져서 차범근은 지코, 플라티니 급의 선수는 분명 아닙니다.
그러면 지코나 플라티니 급이 아닌 선수는 세계적 선수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예를들어 현재(2002년 월드컵 전까지)호나우도, 비에리, 바티스투타를 세계 3대 스트라이커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이 세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스트라이커들은 세계적 공격수 혹은 세계적 선수가 아니라는 것입니까?
이태리의 인쟈기, 우루과이의 레코바, 폴란드의 올리사데베, 스페인의 모리엔테스, 칠레의 살라스, 터키의 하칸 수쿠르 급의 선수는 호나우도나 바티스투타 급이 아니니까 세계적 공격수가 아니라는 건가요?
지코, 플라티니와 같은 시대에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선수는 독일의 칼 하인츠 루메니게 밖에는 없었다고 위에서 제가 말씀을 드렸지요.
당시 남미에 마라도나와 지코가 있다면 유럽에는 루메니게가 있다고 할 정도로 대단했던 선수였습니다.
아마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플라티니보다는 오히려 루메니게가 더 인지도가 높을 듯 합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차범근을 루메니게와 견줄 만한 스트라이커로 인정을 했습니다.
제가 그러는 게 아니라 독일 축구인들이 그렇게 인정한 겁니다.
차범근의 프랑크푸르트 시절 감독이었던 부흐만이 당시에 이렇게 얘길 했다지 않습니까.
'나한테는 차붐 네가 칼하인츠 루메니게 보다 더 소중하다.' 라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후추인 여러분들 중, 제 견해에 납득을 못하시거나 불만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상당 수 계시리라 생각 되는데, 혹시 그런 분들 중에서 '지코나 플라티니 정도는 되야 진정한 세계적 선수다 ' 라고 주장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독분비관에 글을 꼭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가 올라온 글을 성의를 다해 읽고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멋지게 추천하나 눌러 드리겠습니다. 저는 무조건 제 견해가 맞다고 눈깔 홉뜨고 우겨대는 그런 고집 불통의 인간은 절대 아니거든요.
* 차범근은 월드컵에서 큰 활약을 못했기 때문에 세계적 선수라고 부르기엔 무리다?
제가 예전에 「86년 멕시코 월드컵과 차범근」이라는 제목의 글을 독분 비관에 올렸을 때 이 부분에 관해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는 긴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전에 올렸던 저의 글을 못 읽으신 분들께서는 나중에라도 시간 나시면 찾아서 읽어 주십시오.)
다만, 세계적 선수의 판단 기준을 오로지 월드컵에 출전 했느냐? 또는 월드컵에 나가서 골을 기록했느냐? 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 해도 개같은(?) 나라에서 태어나면 월드컵에는 영원히 나갈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이런 케이스가 북아일랜드의 죠지 베스트, 핀란드의 리투마넨, 라이베리아의 죠지 웨어, 우크라이나의 셰브첸코, 웨일즈의 긱스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월드컵에 나가서 저조한 플레이를 했다던가 아니면 골을 터뜨리지 못했다고 해서 세계적 선수가 아니다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논리로 따지면 죽여야 될 놈 아주 많쟎아요.
90년 로마 월드컵에서 완전히 이미지 조진 마르코 반바스텐, 98년 델 피에로, 그리고 이번 2002년 월드컵에서 죽을 쑤었던 포르투갈의 피구와 루이 코스타등.....
이런 선수들은 세계적 선수가 아니란 말입니까?
(참고: 생각해 보니 그 유명한 독일의 슈스터와 프랑스의 칸토나도 월드컵에는 나가질 못했지요?)
* 차범근은 개인기가 부족하다?
축구 선수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인기가 있으면 그것은 큰 복입니다.
더군다나 스트라이커에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으로 이름 난 스트라이커들을 봤을 때 탁월한 개인기의 소유자는 생각만큼 많질 않습니다.
우리 후추인 여러분들께서 잘 한 번 생각 해 보십시오. 역대(70년 대부터) 세계적 스트라이커 중 개인기 죽이는 스트라이커가 과연 몇 명이나 있는지를 말입니다.
게르트 뮬러를 시작으로 마리오 캠페스, 호루에 발다노, 파울로 롯시, 알렉산드르 알토베리, 즈비그뉴 보니에크, 클라우스 피셔, 칼하인츠 루메니게, 루디 & #54344;러, 얀 클레망스, 게리 리네커등 과거의 이름난 스트라이커들도 개인기(발재간)는 그다지 뛰어난 선수들이 아니었습니다.(위의 스트라이커들은 거의 차범근과 같은 시기에 명성을 날렸던 스트라이커들 입니다. 게르트 뮬러가 나머지 선수들에 비해
조금 앞선 세대이지요.)
이들 선수들 뿐 아니라 이 후 클린스만, 스쿠라비, 달링, 스토이치코프, 사리나스 그리고 이 뒤를 잇는 알란 시어러, 바티스투타, 미야토비치, 그레스포, 사모라노, 비에리, 트레지게등도 앞 세대 스트라이커들과 마찬가지로 개인기 위주로 볼을 차는 스트라이커가 아닙니다.
역대 스트라이커 중에 탁월한 개인기를 구사했던 선수로는 페루의 쿠비야스, 아르헨티나의 라몬 디아스, 우루과이의 루벤 소사,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선수로 브라질의 호마리오를 들 수 있겠습니다. 스페인의 푸트라게뇨도 개인기가 괜찮았구요.(최근 선수로는 잉글랜드의 오웬과 스페인 라울의 개인기가 마음에 듭니다.)
예를들어 호마리오의 경우,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서 아무리 밀집된 상황이라도 유연한 발목과 무릎을 이용해 순간적인 페인팅으로 수비진을 뚫을 수 있는 탁월한 개인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마리오가 장기로 삼고있는 이 중앙 공격 능력은 제가 볼 때는 역대 최강인 것 같습니다.)
체격이 크지않은 스트라이커들 대부분이 이와같은 플레이를 장기로 삼고 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들은 대개가 하프라인까지 내려와 볼을 받는 다던가, 아니면 측면에서 스피드를 이용해 시원하게 치고 들어간다던가 하는 능력은 그다지 없습 니다.(능력은 있는데 그러한 플레이를 안하는 건지는 모르겠만....)
반면에 차범근과 같은 타입의 스트라이커들은 화려한 개인기라던지, 섬세한 발재간은 없지만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용해 긴 거리 부터
수비수들을 부술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차범근과 같은 타입의 스트라이커를 또 한명 예를 들어 본다면 70년 대 말 ~ 80년 대 중반까지 세계 축구 팬들을 열광시켰던 폴란드의
즈비그뉴 보니에크(78, 82, 86년 월드컵 출전)를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차범근과 보니에크는 수비수를 제칠 때 별다른 동작(자질구레한 '가라모션') 없이 빈공간으로 볼을 길게 툭 쳐놓고 폭발적인 스피드로 수비수들을 따돌리는 스타일이지요. 독일의 칼하인츠 루메니게도 크게 보면 이와 같은 타입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현재 AC밀란에서 활약하는 셰브첸코도요.
그럼 이 두 타입(개인기, 발재간 VS 스피드) 의 공격수들을 놓고 어느 쪽이 좋고, 나쁜 지를 쉽게 결론 지을 수 있겠습니까?
위에 거론한 타입의 스트라이커들 말고 바티스투타와 같은 타입의 선수도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후추인 여러분들께서 바티의 플레이를 지금 한 번 연상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바티는 발재간으로 수비수들을 가뿐하게 제치고 들어가는 타입의 공격수가 아니란 건 잘 아실 겁니다. 그렇다고 바티가 엄청난 스피드를 이용 해 수비수들을 부숩니까? 그렇지도 않거든요. 바티는 일단 챤스다 싶으면 볼을 잡고 타고난 신체적 조건(신장, 파워)을
이용 해 그냥 밀고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러다 가까운 거리든, 먼 거리든 슛 사정권에 들어가면 그대로 강슛을 때리는 타입이쟎아요.
엄밀히 말하면 바티는 세련된 테크닉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왜 바티를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선수로 인정하겠습니까.
사실 개인기 하나만으로 따지면야 바티 보다는 세네갈의 디우프가 훨씬 낫지 않나요? 스피드로 따져도 바티는 프랑스의 앙리한테 안됩니다.그렇다고 해서 디우프나 앙리가 바티보다 훌륭한 스트라이커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타입 외에 게르트 뮬러 처럼 스피드도 그다지 없고, 개인기도 뛰어나지 않고, 파워도 별로 없지만 페널티 에이리어 안에서 발군의 득점 능력을 발휘하는 스트라이커들도 있습니다. 파울로 롯시가 이런 타입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또한 헤딩전문인 비어호프 타입의 스트라이커도 있는 것이구요.
이렇듯 공격수 나름대로 다 자기의 스타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딱 결론을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들 다 장, 단점이 있는 것이지요. 오로지 개인기(발재간) 하나 없다는 것 가지고 세계적 선수가 아니다 라고 판단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않는 논리입니다.
뛰어난 신체적 조건에 스피드 좋고, 거기다가 화려한 개인기 그리고 득점 능력까지 겸비 된다면야 뭘더 바랄 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조건을 다 구비한 스트라이커는 지금까지의 예로 봤을 때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스트라이커가 바로 마르코 반바스텐과 호나우도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두 선수를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개인적으로 죠지웨어와 브라질의 카레카, 유고의 사비체비치, 네덜란드의 베르캄프등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차범근의 현역시절 플레이」라는 제목으로 독분비관에 글을 올렸을 때 자세하게 언급을 했듯이 차범근은 절대적으로 팀 플레이 위주로 볼을 찼지, 개인기를 위주로 하는 플레이를 하지 않았습니다. 차범근은 게임 중에 그다지 볼을 많이 소유하는 선수가 아니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 드렸쟎아요.
주로 패스를 주고 받고, 주고 받고 하다가 찬스가 나면 파괴력 있는 스피드를 이용해 수비수들을 부수는 타입의 스트라이커라구요. 또한 차범근은 전형적인 골게터가 아니라는 말씀까지도 드렸었습니다.
차범근 스타일의 축구가 어떻게 보면 단순하게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대단히 경제적인 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플레이어들을 감독들이 선호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아실 겁니다.
개인기가 출중하다면 정말 좋은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그것은 축구선수에게 있어서 큰 복입니다. 그러나 그(자기의)개인기만 믿고 필요 이상으로 볼을 끌다가 경기 죠지는 선수도 많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르헨티나의 오르테가인데 저도 참 오르테가를 좋아는 합니다만 어떤 때는 정말 두들겨 패고 싶을 정도로 볼을 끄는데 아주 환장 하겠더만이요.(세네갈의 디우프도 대단히 훌륭한 개인기를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볼 끄는 버릇을 하루빨리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욕깨나 먹겠더라구요.)
두어달 전, 독분비관에 차범근(파워+스피드) VS 긱스(개인기+스피드)에 대한 논쟁(?)이 있었을 때도 결국은 결론이 나오질 않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파워+스피드 VS 개인기+스피드 중에 어떤 게 중요한 가는 전문가나 팬들의 선호도에 따라 제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는 차범근과 긱스는 비교 대상이 전혀 안 된다고 봅니다.
긱스는 차라리 네덜란드의 오베르마스 같은 측면 공격을 전문으로 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들과 비교를 해야 하는 것 아닐는지요? 차범근은 전형적인 공격수쟎아요.
차범근이 개인기 또는 발재간이 있냐 없냐?를 물으면 '없다!' 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개인기가 뛰어나질 않기때문에 세계적 스트라이커가 아니지 않느냐? 라는 물음에는 큰 소리로 'NO' 라고 말하겠습니다. 아주 큰 소리로 말입니다.
개인기가 있고, 없고는 순전히 개개인의 스타일에 불과한 것이지 개인기가 있고, 없고가 세계적 공격수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한국 선수 중에 세계의 벽을 넘어선 선수는 없다?
월드컵 개막 전인가 후에 독분비관에 올라온 글 보니까 어느 테레비 프로그램에 축구인 모 씨가 나와서 '그동안 한국 축구는 이회택,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 김주성 등의 스타들을 탄생시켜 왔지만 결국 이들도 세계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뭐 이런 식의 발언을 했었다 라고 어느 분께서 글을 올리셨었지요.
저는 그 부분의 글을 읽고 참으로 어이가 없었어요. 올려진 글이 어이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방송에 나와 그렇게 말한 축구인의 발언이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방송을 제가 직접 보질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딱 잘라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만일, 그 분이 방송에 나와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참으로 졸렬한 축구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깁니다.
축구 선수에게 있어서 '세계의 벽' 이 도대체 뭡니까? 월드컵 우승입니까?
월드컵 4강인가요?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축구 선수에 있어서 진정한 '세계의 벽' 은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아니라 바로
세계적 선수들이 득실거리는 '유럽 무대' 를 말하는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위에 가마모토의 예를 들었듯이......)
차범근은 그 험난한 유럽 무대에서 10 년간 스트라이커로 뛰며 인정을 받았고 거기다가 뚜렷한 결과까지 냈으니 그것이 곧 '세계의 벽' 을 넘은게 아니고 또 뭐겠습니까? 차범근처럼 독일에서 그러한 족적을 남기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저는 차범근 이외에 홍명보도 '세계적 선수' 로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홍명보의 경우 비록 차범근 처럼 유럽 무대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10 여년이란 긴 세월을 대표팀에서 보내면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검증을 받을만큼 받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홍명보는 세계 클라스의 선수들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쟎아요.(저는 요즘 송종국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답니다. 제가 지금껏 봐온 국내 선수 중에 송종국만큼 기본이 잘 갖추어진 선수를 못 봤거든요. 정말 큰 기대가 됩니다. 아울러 박지성에게도요.)
* 차범근은 국내 매스컴을 통해 과대 포장된 선수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제가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차범근은 예나 지금이나 국내 매스컴을 통해서 피해를 봤으면 봤지 절대로 과대 포장된 인물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엇이 과대 포장이란 말입니까?
'아시아가 낳은 최고의 축구스타' 라는 수식어가 과대 포장인가요?
아니면 '갈색 폭격기' 또는 '세계적 공격수' 라는 표현이 과대 포장이란 말씀입니까?
다시한번 강조해서 말씀 드리지만 차범근은 국내 매스컴을 통해 덕 보다는 피해를 더 많이 본 인물입니다.
단적인 예로, 명예의 전당 글에도 나오지만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 진출했을 당시 몇몇 스포츠 기자들이 독일에 가서 차범근에게 '삥'을 뜯으려다 개망신 당했다지 않습니까.
외국 나가서 뼈빠지게 볼 차고 있는 젊은 운동 선수에게 가서 '삥' 을 뜯으려다가 보기좋게 개망신을 당한 그 힘있는(?) 기자 아저씨들이 그 후 부터 차범근에 대한 기사를 과대 포장해서 썼겠습니까. 그런 양아치 기자들이 과연 차범근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기사를 썼겠냐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기자들이 차범근 편에 섰겠습니까?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을 때 국내 매스컴이나 언론에서 차범근을 제대로(객관적으로)만 평가해 주었다면 지금에 와서 차범근이 세계적 선수냐? 아니냐? 라는 의문을 갖는 축구 팬들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 드리겠습니다.
일찌기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맹활약 할 당시 국내 방송을 통해서나 신문을 통해서 그런대로 보도는 됐었습니다. 레버쿠젠 시절 보다는 프랑크푸르트 소속 당시에 주로 보도가 됐었지요.(주로 골을 터뜨렸을 때)그 때부터 차범근을 '갈색 폭격기'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설날 또는 추석과 같은 명절 때가 되면 아이야 테레비 프로그램 제목을 & #65378;차범근 축구 & #65379;라고 해서 차범근이 활약한 게임(2~3게임)을 모아서 방송도 해 주었습니다.(그 이전부터 MBC에서는 월요일 밤 10시 30분 부터 분데스리가를 방송 해 주었지요.)이 모든 방송이 아쉬울 정도의 분량이었으나 차범근의 활약상을 대략은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팬들의 경우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은 하긴 하는 것 같은데 과연 어느 정도 레벨의 선수이며 독일에서의 위상은 또 어느 정도인 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팬들로서는 오로지 스포츠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기사 이외에는 의존할 수 있는 데가 없었거든요.(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스포츠 신문이나 잡지에서 차범근을 '갈색 폭격기' 라고 소개하면 팬들은 그져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갈색 폭격기' 인 줄 알았고, 방송에서 차범근을 '세계적 공격수다' 라고 하면 그냥 단순히 세계적 선수인가 보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 시절에 차범근에 대한 걸 상세하게 분석해 주는 축구 전문가가 매우 부족했어요.
그렇다고해서 당시의 방송국 축구 해설 위원들이 해외축구(특히 유럽축구)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느냐?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럴 리가 있었겠습니까!) 방송국 해설자들 역시도 해외 축구에 목말라 있는 골수 팬들의 욕구를 충족 시켜 주기에는 그 능력이 턱없이 모자랐었습니다.(사실 지금도 이 부분이 큰 문제입니다만....)
그 시절 대표적인 축구 해설자들을 보면 KBS는 선영재 - 최명곤 - 장경환 - 이의재 - 박경호 선생등이셨고, MBC에는 주영광 - 최은택 - 박병주 - 이우현 선생등이 계셨는데 이 분들 중에 해설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해외 축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은 한, 두분 밖에는 없었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제가 좋아했던 분은 주영광 선생님과 최은택 선생님이었고, 이의재 선생님 해설도 재미 있게 들었습니다.)
(박병주 선생의 경우 출발은 MBC였는데 86년 월드컵 부터 KBS에서 중계를 했습니다.)
당시에 MBC 축구 해설을 잠시 역임하셨던 최은택 선생(당시 한양대 교수)만이 유일하게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는 차범근에 대한 소식과 아울러 그곳에서 차범근이 차지하는 비중등을 중계 때 마다 간간히 이야기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되거든요. (최은택 선생은 분데스리가와 더불어 유럽 축구에 상당한 지식이 있으셨던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것 가지고도 아쉬운 점이 많았지요.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발전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에 차범근이 세계적 선수냐? 아니냐? 라는 어이없는 의문이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정말 안타깝고 한심스러운 일이지요.
엄밀히(냉정하게)말해서 차범근의 '축구 실력' 은 국내에서 조금은 평가절하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닌말로, 여지껏 언론에서 차범근의 '선수 시절' 에 관해서 객관적이고 심도있게 다루었던 적이있었습니까, 아니면 독일의 쿤트네처 처럼 차범근 축구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해준 국내 축구 전문가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시중에 차범근에 관한 서적이 있습니까? 그의 전성시절 플레이를 모은 비디오 한 개 나와 있는 것이 있습니까?
차범근 책이라고 해봤자 그져 차범근 감독 본인이 쓴 에세이집(책 제목: 그라운드 산책)밖에는 없쟎아요. 정말 이것은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만 가더라도 가마모토는 물론 미우라, 라모스, 츠나미, 나카다등에 대한 서적이 서점에 가면 널려져 있을 뿐더러 추억의 선수들 비디오도 손쉽게 구할 수가 있습니다.
후추 가족 여러분! 아니, 일부 후추 가족 여러분!
이래도 차범근을 과대 포장으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차범근이 좋든, 싫든간에 그의 '축구 실력' 하나 만큼은 우리가 인정해야 되는 것 아닐는지요.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 맨의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차범근은 세계적 선수가 아니라고 누가 그러던데......' 혹은 ' 나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차범근은 매스컴에서 키워준 거라던데?' 라고
하시면서 독분비관에 글 올리셨던 분들께 제가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 하나 드리고 이 부분의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님들보다 나이도 많은 것 같고, 차범근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차범근은 세계적 선수가 아니다.', '차범근은 매스컴에서 키운 거다.' 라는 등의 말을 님들께 해준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시는 것 보다는 후추 명예의 전당 [차범근 편]을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이 차범근 감독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보다는 후추 명예의 전당 [차범근 편]이 훨씬 더 사실적이고 깊이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후추 명예의 전당 [차범근 편]도 믿음이 안가시거나 섭섭하다고 생각 되신다면 독일의 쿤트네처가 한 이야기를 믿으세요. 저 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범근은 별 것 아니다!', '차범근은 개인기가 없으니 세계적 선수가 아니다!' 라고 님들께 이야기 해 주었던 그 사람들 보다 독일의 쿤트네처가 축구에 대해 천만배는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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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맘 때 최준서 주방장님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주방장님이 광화문에서 맛 죽여주는 고추장 불고기를 사주신 적이 있어요. 그 자리에는 후추 주방의 KUKI 님도 같이 자리를 하셨었지요.
그 날 주방장님이 저에게 차범근 감독이 독일에서 어느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는 지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방장님이 2~3년 전에 독일에 직접 가셨던 적이 있거든요.
그 때 바이엘 레버쿠젠 구단도 방문 하셨고, 그 곳 축구인들(휄첸바인, 니켈등)과 축구 전문 기자들을 만나 보셨는데 그 사람들이 차범근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주방장 님에게 쭉 해 주더랍니다.
사실 주방장님도 그들의 얘길 듣고 무척 놀라셨답니다. 차범근 감독이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고 하시더라구요. 독일에서 차범근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란 것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어마어마 하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너무도 모르고 있다고 주방장 님께서도 안타까와 하신 적이 있습니다. 독일 어느 축구 기자는 지금도 차붐을 거의 神처럼 받들고 있다더군요.
프랑크푸르트에서 잠시 뛰었던 심재원 선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차 감독님의 위대함이란 상상을 초월했다고!!
이런 인물을 가지고 세계적 선수가 아니다, 과대포장이다... 라고 한다는 자체가 그져 안타까울 다름입니다.
마지막으로 명예의 전당 & #65378;차범근 편& #65379;에 나와 있던 시(詩) 하나 올리고 저의 긴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이 시는 독일의 어느 시인이 차범근을 위해 지은 시 입니다.
차붐!
나는 너를 낳아준 너의 어머니와
너의 조국 코리아를 향해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