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 참가후기 두번째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온몸의 구석구석이 아우성을 치는군요. 운동부족을 실감합니다. (__)
블로거뉴스를 편집하시는 분의 덕택(?)으로 너무 과도한 칭찬을 받아 결국 다시 상경하기로 결심,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어찌저찌 명단이 확정되고, 5월 31일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전주에서 insedona님을 모시고 왔는데 점심식사 후 지갑을 놓고오신 것을 발견, 다시 전주로 향했습니다^^;;;
insedona님의 지갑을 찾고 전주터미널에서 출발했지요. 라스핀,FM김군,고야셈 3명의 한의사, 내과의 insedona님, 그렇게 4명의 상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총 12시간이 넘는 아비규환의 대장정이 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고 다들 상경하기위해 미리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었는지 눈을 부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번 상경때 남부터미널에서 먹은 우동 한그릇이 전부여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도착하자마자 저녁식사부터 했습니다. 역시! 이때까지만해도 사실 별걱정을 안했었지요. 뭐 거리시위를 한다 하더래도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한 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했으며 경찰 또한 연행을 할 망정 여론을 의식해 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계광장 응가기둥(일명 소라기둥이라고 하더군요) 옆에 도착했을때는 의료봉사단 중 마지막 1팀이 시청광장으로 이동하려는 찰나였습니다. 그새 얼굴이 낯선 분들로 다 바뀌었나봅니다. 그러나, 역시 통성명도 없이 무작정 의료구호물품을 들고 움직였습니다 ㅡ0ㅡ
시청광장 무대 오른편에서는 곳곳으로 파견되고 남은, 3팀이 있었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insedona님은 곧바로 1팀과 파견, 10여분 후 FM김군과 고야셈은 같이 다른 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남은 물품을 팀장님의 승용차에 가져다 두려 다시 응가기둥쪽으로 갔을 무렵, 시위대가 출발하니 빨리 오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헉헉거리며 뛰어가보니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더군요. 정말 많았습니다. 항간에는 10만이라고도 하고 5만이라고도 했습니다.
물품을 마저 챙기고 급하게 선두를 따라갔습니다. 마구 내달리는 통에 우리도 같이 뛰었죠. 결국 우리조의 팀장님은 연로(^^*)하신 것때문인지 뒤쳐졌습니다. 사직터널(그렇게 들었습니다.시골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_-)을 기습적으로 내달려 어느 내수동 아파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였습니다. 대열의 앞쪽은 이미 빠져나갔고 의료팀은 진압(?)하는 전경들에게 쫓겨 넘어져 다친 여고생 하나를 치료하느라 머물렀습니다.
왼쪽 어깨부터 손등까지의 찰과상과 옆구리의 열상(진피층이 약간 손상됨)을 입은 이 여학생에게 간단한 처치 후 집에 가라고 하니 안가겠다고 버팁니다. 휴.... 결국 '너 나중에 수영복 안입을꺼야? 이거 이렇게 보여도 흉터 남으니까 집으로 가서 제대로 된 처치를 받아야해. 어여 집에 가'라고 설득하여 보냈습니다. 팀원 하나와 같이 택시에 태워서 보낼때 마음이 참으로 착찹하더군요. 망할 쥐색 하나때문에 저 어린애가...
그 학생뿐만 아니라, 어느 매체의 무릅까진 기자, 몸싸움을 하는 도중 얼굴을 가격당해서 안경이 깨지는 통에 눈가가 길다랗게 찢어진 아저씨 등등, 단 한번의 대치 상황에 대여섯명의 부상자가 생기자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 청년 하나가 흉부를 군화로 가격당해 쓰러져서 의료봉사팀이 인수받았습니다. 그때즈음 합류한 마취의(여자선생님인데 이름을 ㅡㅡ;;;;)선생님이 진찰을 하시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119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10여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 구급대.... 전화로 독촉을 하니 내수동 풍림 스페이스 앞 사거리로 오는 길이 모두 봉쇄되었다 합니다. 경찰이 막았다고 어떻게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마취의 선생님은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저는 팀원에게 자꾸 다시 간다는 환자를 진정시키도록 부탁을 하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고라 게시판에 경찰이 119의 앰뷸런스를 막아 못들어오고 있다고 항의전화라도 해달라고 글을 올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밤 늦은 시각이라 여기저기 전화를 해야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 건물 경비아저씨가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를 위해 환자를 옮겨달라는 말을 했는데, 결국 견디지 못한 화를 내버렸습니다. '차가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고 막 따지는 나에게 엄청 성질을 내시더군요.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니 주위의 사람이 몰려들었고, 자초지종을 들은 한 아주머니가 여기 주민이라면서 자신의 차로 옮겨 주겠다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차를 가지러 아파트 쪽으로 간 사이에 119구급대원이 걸어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오셔서 '안오겠다는게 아니라 이쪽 저쪽 다 막아서 못들어 온것이니 양해를 해달라. 그래서 이렇게라도 걸어서 왔다.'라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시더군요.
조금뒤에 아고라에 글이 올라갔는지, 아니면 보다못한 주위의 시민들의 항의 덕인지는 몰라도 구급차가 올수 있다고 했습니다. 팀원 한명이 남아서 병원에 구급차에 동승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그때 차를 몰고 나오신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동할 청와대 방면은 모두 경찰들의 통제로 진입이 불가하였죠. 결국 차에서 내려 중앙청사쪽으로 걸어가기로 하고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119구급대원이 걸어서 온것을 보고 자신들도 미안했는지 통과시켜주더군요.
부상자가 계속 발생한다는 전화가 와서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효자동 사거리(중앙정부청사 사거리)였고 이미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 중이었습니다. 전방으로 전방으로 나가서 대치선 바로 뒤쪽, MBC와 KBS카메라 후방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경찰의 해산권고 방송과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구호, 몸싸움이 지속되었습니다. 주로 이명박은 내려와라(혹은 물러가라) 등의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였습니다. 구호를 들으면서 이미 쇠고기재협상의 문제를 넘어서 정권퇴진운동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지요.
간간이 몸싸움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큰 사태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예비역들이 방패와 하이버를 빼앗아 뒤로 전달하고 가끔 전경을 연행(?)하여 뒤로 보내며 '비폭력' 또는 '때리지마'라는 구호를 외치고 또 시민들은 곱게 그들을 보내주고... 폭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더랬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이라고는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아마 시사토론(?)이 끝난 시각으로 추정되는데,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을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이때부터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대포에 맞아 일시적으로 쇼크를 일으킨 사람부터,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 오랜 시간의 몸싸움으로 인해 탈진한 예비역들....
계속되는 물대포와 진입시도로 부상자가 정신없이 발생했고, 한두시간이 지난 후에는 저체온증에 시달려 사시나무 떨듯 떠는 환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마른 옷과 담요,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는 의료봉사팀의 요청에 근처 주민의 물품들이 속속 도착하였고, 우비와 우산도 계속 공급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대여섯명을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앰뷸런스에 실어보내고, 조금 있다가 또 발생하여 금새 동나고는 했습니다.
청운동(?)에서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고 손이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쪽에 있던 한 팀이 급파되었습니다. 말투 자체가 차분한 insedona님의 이쪽 상황을 묻는 전화 속 목소리가 어쩐지 다급하게 들렸습니다. 상황을 주고 받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이건 전쟁이예요, 전쟁.'
라스핀도 물대포를 맞고 난뒤 탈진의 기미가 보이고 의료팀의 얼굴에도 피곤이 눈에 띄게 떠올라 후방으로 빠져 휴식을 취했지요. 진중권교수님이 철푸덕 앉아있는 저를 잠깐 인터뷰하고 갔습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과는 달리 말은 담담하게 나왔습니다. 이때즈음엔 라스핀은 끓어오는 분노를 참느라 마스크안의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그걸 억제하느라 '중립, 중립, 중립'이라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반갑지 않은 짧은 인터뷰 후, 인터뷰를 허용하게 놔둔 김선생에게 가벼운 타박을 준 뒤, 주위를 둘러봅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신문지 등으로 불을 피우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모닥불 수준의 불(어디선가 구해온 탈만한 물건과 피켓, 쓰레기 등)이 곳곳에서 피워집니다.
물대포에 맞은 사람들이 나와서 옷을 말리고나서 물대포와 대항하러 다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한쪽에서는 쓰레기봉투로 쓰이는 검은 비닐봉투 큰 것으로 자신의 상체만 가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시민들이 보입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주부와 딸, 이제는 은퇴를 앞두고 있을만한 젊잖게 생긴 아저씨, 할아버지.....
앰뷸런스가 올때마다 길을 앞장서서 열어주고 뭐 도울일 없냐고 찾아오시는 분들, 근처 편의점에서 자비를 들여 사온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나누어주는 분들.....
옆의 연선생('연'가가 아니지만 그렇게 부른다 했습니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해봅니다.
'이거 80년대도 그랬겠죠? 매캐한 냄새만 있으면...'
'그렇네요'라고 덜덜 떨면서 라스핀의 물음에 대답하는 연선생에게 모닥불 근처로 가라고 말해봅니다.
그리고 라스핀의 머리 한구석에는 중학생시절 초여름의 이리(지금의 전북 익산) 시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얀 하이버를 쓴 전경을 피해 참을 수 없는 기침을 해대며 골목으로 내달리고 내 왼쪽으로 슉슉 지나가며 하얀 족적을 남기는 최루탄의 꼬랑지....
'아.. 그때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잠시 딴생각을 할 무렵, 힘이 넘치는 정,박 두 선생의 채근에 마른 옷과 담요를 들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바로 직전, 한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실려서 나옵니다. 역시 저체온증.... 급박해서 상의를 찢고 하의를 탈의 시키고 갈아입히고 담요로 둘둘 말아서 모닥불옆으로 앰뷸런스를 요청했습니다. 팀원 한명이 또 남고....
우리는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에게 옷을 갈아입는데 얼마 안걸리니 갈아입고 다시 오라고 말하며 심한 사람을 우선하여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버티겠다며 조금 더 심한 사람이나 여자, 노약자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옷은 금새 동이 났습니다. 벌벌떠는 사람들을 한번 보고, 내 빈손을 한번 봅니다. 눈가가 나도 모르게 뜨끈해집니다.
그무렵 시위대 뒤쪽 정부중앙청사쪽에서 진압하러 전경이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를 포함한 2팀이 그쪽으로 급하게 이동했습니다.
라스핀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동그란 방패 진압봉, 진압복.... 헬맷 색깔만 틀리지 백골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백골단의 등장에 정신없이 촬영하기에 바쁘고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촛불을 다시 밝혔습니다. 저런 사람들에게 물대포라니... 다시 눈시울이 뜨끈해집니다.
사거리로 조금씩 후퇴할 즈음에 경복궁 뒤로 해가 떠오르는게 보였습니다.
해가 비추는 곳은 야속하게도 줄곧 보아왔던 살수차의 두배 정도되는 크기의 검정색 살수차였습니다. 아침 햇빛을 등지고 천천히 물러나는 수많은 시민들..... 그 큰길을 가득메웠습니다. 라스핀이 있던 곳의 대치 부분에서는 시민들이 어린 전경들에게 '물러날테니 천천히 해라. 여기 모두 너네 형,동생,누나,아버지,어머니,할머니,할아버지같은 분들이야. 천천히 하자'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괴물같은 살수차가 물대포를 쏘아대자 사람들이 픽픽 날라갔습니다. 청장년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깨자마자 소식을 듣고 나온 시민들이 인도에서 아우성입니다. 그냥 놔두었어도 물러났을텐데....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 광경을 본 어느 여자분이 쇼크를 일으켰습니다. 주위분들의 도움으로 진정시키고 오목하게 파여진 진형으로 다가갑니다.
물대포에 맞아 고막파열이 의심되는 환자가 실려나왔습니다. 마취의 선생님이 진찰을 하고 라스핀은 그 주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한 남자가 '왜 못 (사진) 찍게해. 올려야지'라고 화를 냅니다. 순간 열이 받아 그 남자를 노려보고는 '그냥 찍어서 올린다고요? 이사람의 신원이 낱낱이 밝혀질텐데요? 그렇게 알리고 싶으면 당신이 저기 가서 서세요. 여기 인도에 서서 입으로만 나불대지 말고'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당신이 뭔데 그딴식으로 말하냐'는 내용의 말을 합니다. '나? 의료봉사 중인 한의사다. 당신말이야. 무임승차면 무임승차객답게 있던지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와!'라고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때 옆의 팀원들이 나를 뜯어말겼고 그때문에 고개를 돌린 사이 딴 남자분이 끼어들어 참으라고 말합니다. 'X달린 XX가'라는 내용의 욕을 더 해주려고 찾아보니 금새 사라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렇게 벌벌떨며 자꾸 실려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랬나보다고 생각합니다.
마른 옷과 담요는 순식간에 동이 나고 또 한참을 발만 구르고 있고......
참다 참다 못해서 가운을 벗고, 상의를 벗습니다. 벗은 상의를 들고 물대포에 맞고 있는 시민의 옷을 어거지로 갈아입혔습니다. 커다란 수건은 쉴새없이 사람들의 등과 배를 닦아내고.... 여성분은 정선생이 채근하여 빼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말을 듣질 않습니다. 하릴 없이 수건으로 닦기만 해주는 수밖에......
광화문공원(?) 삼거리까지 몰렸을때는 이미 와해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시위대 중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다함께'깃발을 향해 원망섞인 목소리로 '다함께는 나와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팀은 대학생들이 많이 몰려있는 충무로방향으로 몰렸고 다른 팀들은 제각각 흩어졌습니다. 넘어져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로 우리를 찾는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진압이 시작되려는지 전경들이 한발짝 한발짝씩 전진합니다. 어김없이 쏘아대는 물대포를 웅크리고 맞는 학생들을 보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한봉다리 가득 가져온 마른 옷과 수건이 순식간에 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팀원들의 눈에는 애처로움과 억울함과 분노와 무력감이 교차하는 듯 했습니다.
천천히 후퇴하던 시민들이 갑자기 내달립니다. 경찰들이 갑작스레 진압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의 비명소리 뒤로 '저기 사람이 넘어졌어요'라는 외침이 들려와 무작정 그곳으로 뛰었습니다. 정선생이 '선생님 위험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데크레센도 같습니다. 나는 환자를 껴안고 언제인지 모르게 옆에 도착한 박선생은 '의료팀'이라고 목이 찢어지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박선생에게 '갑시다'라고 짧게 말한 후 쉭쉭 급하게 도망가는 사람들과 그 뒤를 쫓는 전경들을 가로질러 위태위태하게 인도로 나옵니다.
나와서야 환자의 얼굴을 보니, 앳된 여학생이었습니다. 크게 놀라 눈동자는 끊임없이 좌우상하를 살피고 있었고 손발은 벌벌떨고 있었습니다. 안정시키기위해 의료팀이 바리케이트를 쳐서 둘러싸고, 닦아주려고 남긴 담요 한장으로 몸을 감싸고 외상을 체크했습니다. 조금 안정이 된 환자를 정선생에게 맡기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광화문 광장의 도로는 그새 차들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가롭게 다니는 차들의 운전자들이 의료팀과 담요를 둘러싼 환자를 신기한 듯 쳐다보더니 이내 연민의 모습을 보냅니다.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광화문 6번출구 안쪽의 조그만 전시관 옆에 안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습니다. 시계를 보았을땐 의료봉사 시작 후 12시간을 몇 분 안남기고 있었죠. 응가기둥 뒤에 팀들이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환자에게 이제 안정된 것 같은데, 우리가 먼저 이동해야 할 것 같으니 조금있다가 갈 때 담요를 여기에 개어 놓고 가면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하고 먼저 길을 나섰습니다.
한 팀이 먼저 와있었고, 조금 있다가 insedona님의 회진시각이 다되어 내려가야 되는데 어디에 있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마취의 선생님이 가운을 벗고 마스크를 벗고 어느 BJ팀이 사준 음료수를 손에 들고 왔습니다. 12시간만에 맨 얼굴을 처음 봤지요...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성함을 묻질 않았습니다.
다른 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시청광장과 안국동에 시위대가 또 대치하여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팀이 안국동으로 가고 우린 시청으로 가기로 결정하여 다시 짐을 꾸렸습니다.
꾸릴 무렵에 insedona님이 혼자 지친 모습으로 나타나 옆 벤치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바닥을 멍하니 응시하고서는
'정말 너무합니다. 전쟁때도 의료진은 들여보내주는 법인데, 이건 말이 안되요. 이미 넘어진 사람을 왜 발로 차고 방패로 찍는지 모르겠어요.'라며 고개를 떨굽니다.
그러나 그 말에 라스핀이 무어라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몇 분뒤 회진 시각에 맞춰 전주에 가겠다며 내 의향을 묻습니다.
'시청에 시위대가 대치 중이라고 하니 그곳으로 가보려구요.'
'네. 그럼 전 택시타고 터미널로 갈께요. 지하철타면 자버릴 것 같아서요. 조심하세요'
'네.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배웅한 뒤, 뒤를 쳐다보니 어느새 짐을 꾸리고 '어서 가자'는 마취의 선생님, 정선생님, 박선생님이 보였습니다. 팀이 어느새 2명이 줄어있었습니다.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지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시청에서 순식간에 진압당해서 뿔뿔이 흩어졌다고요. 해가 떴으니 사람들이 더 나올 것이라는 희망과 상경하고 있다는 소식을 버팀대 삼아 모였다가 끝났다고 했습니다.(톨게이트를 차단하고, 기차 예매를 새벽에 막아버렸다는 소문이 새벽에 돌았음이 잠깐 떠올랐습니다)
출발직전 연3일을 내리 의료봉사에 참가하다가 결국 하루 쉬었던 병원PA분이 합류하고, 안국동(인사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안국동 사거리(?)쪽으로 시위대가 밀려 전경들의 뒤쪽에 도착했습니다. 물대포를 수도 없이 맞으며 환자를 구해오던 차선생이 울먹이며 '큰일났다'고 합니다. 시위대가 바리게이트를 치고 대치 중이며, 밤샘 대치로 신경질적 된 전경과 백골단원들이 아주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절 뒤쪽으로 돌아서 사거리로 나오자 마자 강경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삽시간에 와해되는 시위대와 비명소리와 구호..... 그 와중에 넘어져 밟힌 시위대 한사람을 주위의 주민들이 구해서 의료팀을 불렀고 마취의 선생님과 경남에서 오신 선생님이 진료를 했습니다. 조금있다가 차선생이 '입에 피가 철철 흐르는데 그냥 연행해 가요. 내가 말해도 안들어주니 선생님이 가요'라고 말합니다.
이에 경남의 선생님과 라스핀이 닭장차에 달려가 항의를 하고, 애원도 해보지만 대답은 '그렇게 다친 사람없습니다'라는 신경질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그 대답 속엔 왠지 '껄끄럽다'는 인상이 들어있어 '아니, 다친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 의료인들이 하는 겁니다'라고 다시 항의해 보지만 묵묵부답입니다. 그제서야 그 사람의 이름을 보려고 가슴을 보니 테이프로 가려져 있습니다. 하.... 이 사람 백골이구나. 이쪽은 틀렸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계속 항의를 하는 경남의 남자의사분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광화문방향으로 구급차가 보였습니다. 넘어졌던 분을 이송하러 왔나 싶어 다가갔습니다. 다른 의료봉사자가 구급차를 인도하는 게 보여서 돌아오려던 중 한 여성분이 봉고차 앞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발견, 다가가서 물어봅니다. 무릎을 찧으면서 넘어졌는데 전경이 밟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견딜만 하다며 그냥 가려는 환자분과 이를 말리면서 병원으로 이송하려는 주위분들과의 실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넘어진 환자를 보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차를 세운 한 시민이 있었구요. 환부를 만져보고 반사를 체크한 후 심한 부종이 예상되어 병원으로 가라고 권유했습니다. 그제서야 고집을 꺾더군요.
항의 도중에 닭장차가 그냥 가버렸다고 허탈해하는 경남의사(이렇게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역시 이름은 안물어보고 나이만 물었었죠. 왜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분을 보고 다시 마취의 선생님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종로구청의 물청소차가 바닥을 청소하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차선생이 그걸 보며
'저거 왠지 흔적을 지우려는 것 같아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뻔뻔하게요'라고 힘없이 말합니다.
그때 길건너편에서 외침이 들려옵니다. 인도에 몰려있던 시민들이 항의하자 방패와 곤봉으로 강제해산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여자분(인사동 구경나온 듯한 옷차림)이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리는게 꼭 영화의 한장면 같았습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우리팀을 끌고 건너가니, 서너명이 그새 부상당해 있었습니다. 라스핀이 맡은 환자는 무릅 아래쪽의 넓은 상처에선 선홍색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능숙해진 손놀림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환자들의 처치가 끝날 무렵 그 주위에 사는 주민이라면서 응급의료물품을 한가득 사오신 분이 계셨고, 또 한분은 게시판에서 봤다면서 수건을 한 상자주고 가셨습니다. 어느 남자분은 현재 가진게 돈 3만원이 전부라면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셨으나 '현금은 받질 않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서운한 듯 갈 길을 가셨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여 '그 돈으로 경로원에 조중동말고 한겨레 경향 넣어드리세요'라고 크게 외쳤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밀려서 광화문반대편으로 간 시위대는 다른 팀이 따라갔다면서, 우리는 이제 본대(본대라기는 뭐하고 돌려주신 옷가지 담요 등의 물품을 많이 가지고 있던 팀)에 합류하자고 하여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동 중에도 간간이 부상당한 시민들을 치료하였고 나머지는 계속 갈 길을 갔습니다. 닭장차가 길게 늘어서있는 길가에 전경들의 진료를 부탁받았습니다.
내가 맡은 환자는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락만 테스트를 행하니 '악'하는 소리를 지릅니다. 지휘자로 보이는 분께 '(전방십자)인대'가 손상을 입은 것 같다며 곧바로 치료를 받으라고 전해주었더니 그제서야 의심의 눈길을 풉니다. 차선생에게 탄력붕대를 감아주라고 말하고, 뒤에 온 마취의 선생님이 옆의 환자를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다른 환자를 보러 갔습니다.
이번에 본 환자는 밥풀떼기 하나인, 솜털이 가시지 않은 나이 스물쯤 되어 보였습니다. 경골부위의 단순타박상이었는데 실금이 생겼을지도 모르니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권하며 간단하게 스프레이파스만 뿌려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만 하면 진료를 못받을까봐 붕대를 감아줘서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지요. 그러는 와중에 정선생이 남은 초코바같은 것을 고참들 몰래 먹으라며 주머니에 넣어 줍니다. 그때 라스핀은 환자의 안경 위로 눈물이 한방울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치지 마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다시 갈 길을 갑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려 봅니다. '그래 쟤네들이 뭔 죄냐, 맨 위에 놈이 문제지.......'
가면서 쉬고 있는 전경들 중 다친 이들을 치료하고 이제 갓 입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눈엔 '이제 끝났다'라는 빛이 떠올랐지만, 일부 전경과 지휘자는 격한 적개심을 내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광화문공원에 도착했더니 두 팀이 먼저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3분지 1가량은 바닥에 우비를 깔고 잠들어 있었고요.
다른 팀은 시청광장에서 남은 시민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했고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고 앉았습니다. 이때야 마취의 선생님이 고개를 무릎에 기대고는 쉬더군요. 벌써 3일째라고 들었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몇 분뒤에 FM군이 응가기둥 근처로 이동 중이라는 말을 듣고 같이 전주에 내려가려고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정선생, 박선생, 팀장님, 차선생, 김선생, 경남의사분, 마취의선생님, 병원PA라던 청년, 며칠째 나온다는 어느 여학생과 주부, 그리고 저번에 보았던 간호사 선생님과 의기하나로 버티신 분 많은 분들.... 의료봉사팀인데 처음 보는 얼굴들...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나섰습니다. 이름이라도 알면 좋은데 모두들 지쳐있어서 깨어 있는 분들에게만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길을 가던 중 아까 인사를 나눴던 몇몇 선생님들이 구급차 앞(공원 안쪽 길로 나왔다고 함)에 있는 것을 발견해서 가보니, 밤새 의료봉사를 하던 분이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힘이 빠졌습니다.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는 전경을 바라보니 '억울하다'라는 표정입니다. 내 눈의 원망섞인 빛을 읽었나 봅니다.
미대사관 앞쪽에는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일단의 전경들을 지나쳐 응가기둥옆으로 가니 두 팀 정도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밤샘동안의 아비규환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했지만, 반절쯤은 앉아서 자고 있습니다. 물품을 정리하고 근처 화원에 맡기고 나니 라스핀이 먼저 떠나왔던 다른 팀이 다 도착했습니다.
모두들 졸음에 겨워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입니다.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말하며 인사 후, 후일을 기약하며 FM김군과 고야셈과 함께 전철에 몸을 실었지요. 3명 모두 자느라 터미널을 지나쳐서 다시 돌아가는 해프닝을 겪고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고는 도착할때까지 죽음같은 잠이 들었습니다.
+ 라스핀의 두번째 후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오늘 인터넷을 뒤적여 보다가 위에 언급한 그 입안에 피를 흘리며 연행되가는 남자분이라 추정되는 동영상을 발견하여 캡쳐를 했습니다.
나중에 차선생을 만나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틀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라스핀 스스로 '저렇게 진압당할 만큼 불법을 저질렀나?'라는 의문을 던져봐도 '아니다'라는 대답을 얻을 뿐이었습니다.
정말 답답하네요.
insedona님도 당직이 있고 난 다음날 다시 상경할까 고민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고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래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라스핀도 다시 상경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기초쪽에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내 배후인 양심과 내 미래의 자손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두번째 이야기 ::: 환자의 사진촬영과 관련한 것과, 그 이외 5가지 사항에 대하여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을 복사해서 각 게시판으로 널리 알려주세요)
의료봉사팀이 사진촬영을 제한 하는 것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시는 분이 아직도 많습니다.
항의하시는 분들을 보면,
1)시위를 처음 나오시거나, 의료봉사단의 그간의 상황을 모르셔서 그리한다는 추정과
2) 그 내용을 알지만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데 의료봉사팀이 이걸 막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한다는 추정
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위 두가지에 대하여 설명해드리니 차후 참고하시기길 부탁드립니다.
1)에 대한 내용은 저번에도 포스팅했듯이 플래쉬 문제입니다. 동공반사를 체크하는데 아주 방해가 되고, 강경진압으로 인해 쇼크인 상태의 사람에겐 심각한 위협이 되므로 못하게 진료 중이라도 막는 것입니다. 꾸준히 현장에 계시는 큰 매체의 기자분들(오마이 및 기타 인터넷뉴스 포함)은 그 이유를 알기에 잘 지켜주십니다.
2)에 대한 내용은, 환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사진을 찍어 무작정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사복경찰의 채증'과 다름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그대로 신원이 노출이 되기 때문이죠. 매체의 기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환자에게 신원을 물어서 꼭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나중에 본인이 초상권 침해 등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에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종합해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다시 말씀드립니다.
1. 의식이 없는 환자: 동공반사와 기타 반사 체크 후 의료진의 허락이 떨어지면 사진을 촬영하되, 환자에게 고지(환자의 주머니에 넣을 쪽지 내용:난 당신을 허락없이 촬영했는데 이를 인터넷에 올려도 괜찮은지 나중에 깨어나면 이곳으로 연락바랍니다)를 해주십시요. 동공반사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검사법입니다. 단순 실신인지 혼수인지, 뇌의 손상이 있는지 없는지 판별하는 가름이 되기 때문이죠. 꼭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의식이 있는데 안면부 부상일때: 환자에게 동의를 얻되 직접 물어보지 말고 진료하는 의사나 의료진을 통해 물어 보세요. 이는 플래쉬 같은 강한 빛에 노출될때 눈을 뜨고 있으면 안면근육이 움찔거려 치료에 방해가 되기때문입니다. 특히, 눈쪽을 치료할때는 시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조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의식이 있으면서 안면부 이외의 부상일때: 환자의 동의를 얻어 촬영해주세요. 대신 치료에 방해되지 않게 치료하는 사람의 뒤쪽에 서서 촬영해 주세요. 치료하는 사람의 눈에 플래쉬가 터지면... 핀셋이나 가위로 상처부위를 자극하는 등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시는 분들은 이를 위해 간단한 명함(위 고지할 내용을 집어넣은 것이면 좋겠네요)을 일반 종이에라도 인쇄하여 가지고 다니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이외에 부탁드릴 것이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토요일날 원광대학생 2명의 인터뷰 기사에 '국민대책위 소속의 의료봉사단'이라는 내용이 떴다고 하던데, 사실무근입니다. 의료봉사단은 어떠한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속되어 있다면 이런 '촬영'문제로 시민들과 마찰을 빗는 일도 없겠지요. 저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게시판의 글 보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기사가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료봉사단은 어떠한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순수한 봉사활동을 자신들의 홍보같은 이익에 끌어들이려는 단체가 있다면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리고 특정소속 단체인것 처럼 몰고간다면 라스핀과 여기 같이 참여하는 다른 3~4의 의료인도 더이상 진료할 수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두번째, 저번 포스팅에 의료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첫번째글을 올리신 분으로 치과의사분을 언급했습니다. 이외에 거의 동시(시간적으로 조금 먼저라는 모선생님의 말도 있었습니다)에 글을 올리고 난 뒤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연선생님께 여쭤봐서 얼굴만 알고, 이름도 아이디도 모르지만 그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에 여기에서 알려드립니다.
세번째, 단추수프님(누구인지 짐작이 가는데 본인한테 확인은 못했습니다)이 후원계좌를 닫았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물품만을 지원받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이건 다음 상경때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네번째, 첫번째의 이유로 모두 꾸준히 활동할 수가 없습니다. 오프이거나 학교에 계시거나 공보의, 의대생들이 짬짬이 시간을 내어 전국 각지에서 모입니다. 전화번호도 단 2개 정도 알고 있는데 그나마 한 분하고만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이 분들도 매일 나오시는 것이 아니기때문이죠. 그래서 의료봉사단에 참여하시고 싶은 분은 정해진 시각에 나가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준비된 조끼가 한정이 되어 있고 또한 활동이 시작된 이후로는 어느팀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때문에 배치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점 양해 드립니다. 일정이 끝나고 그 다음날 나올 수 있는 사람을 파악하여 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날 누가 나왔는지 조차도 잘 모릅니다 ㅜㅡ
다섯번째,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간혹 보다못한 의료봉사단원이 사람들을 말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비폭력'이라는 거대 명제를 앞에 두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그리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욕설을 하는 분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분을 계속 말리다가 '의료봉사나 할 것이지 왜 그렇게 말이 많냐'라고 쏘아붙이는 어느 아주머니의 말에 팀원 하나가 그만 두려고 까지 했습니다. 며칠째 제대로 잠도 못자고 나오는 한사람이었는데 그로 인해 우리팀은 귀중한 경험을 가진 한 사람을 잃을뻔 했습니다. 시위의 규모가 커질 수록 시민들의 '쟤네들 프락치 아니냐'는 등의 근거없는 비방도 나도는 판입니다. 경찰들은 우리에게 '어차피 같은 넘들이다'라는 말을 하고요. 양쪽에서 모두 비방을 하면 결국 의료봉사단의 사기는 저하되고 의지를 잃게 되어 그나마 돌아가던 팀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원대의 한 의사분은 수술이 끝난 후 옷도 못갈아 입고 가운 하나 걸치고 KTX열차를 타고 상경하여 새벽내내 진료하고 아침에 회진에 맞추어 내려가셨습니다. 마취의 선생님은 주위에 알려질까 두려워 마스크와 모자를 항상 착용하십니다. 이번에 insedona님은 악플때문에 '무섭다'라고 하십니다. 시민 여러분의 현명함에 호소합니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온몸의 구석구석이 아우성을 치는군요. 운동부족을 실감합니다. (__)
블로거뉴스를 편집하시는 분의 덕택(?)으로 너무 과도한 칭찬을 받아 결국 다시 상경하기로 결심,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어찌저찌 명단이 확정되고, 5월 31일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전주에서 insedona님을 모시고 왔는데 점심식사 후 지갑을 놓고오신 것을 발견, 다시 전주로 향했습니다^^;;;
insedona님의 지갑을 찾고 전주터미널에서 출발했지요. 라스핀,FM김군,고야셈 3명의 한의사, 내과의 insedona님, 그렇게 4명의 상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총 12시간이 넘는 아비규환의 대장정이 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고 다들 상경하기위해 미리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었는지 눈을 부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번 상경때 남부터미널에서 먹은 우동 한그릇이 전부여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도착하자마자 저녁식사부터 했습니다. 역시! 이때까지만해도 사실 별걱정을 안했었지요. 뭐 거리시위를 한다 하더래도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한 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했으며 경찰 또한 연행을 할 망정 여론을 의식해 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계광장 응가기둥(일명 소라기둥이라고 하더군요) 옆에 도착했을때는 의료봉사단 중 마지막 1팀이 시청광장으로 이동하려는 찰나였습니다. 그새 얼굴이 낯선 분들로 다 바뀌었나봅니다. 그러나, 역시 통성명도 없이 무작정 의료구호물품을 들고 움직였습니다 ㅡ0ㅡ
시청광장 무대 오른편에서는 곳곳으로 파견되고 남은, 3팀이 있었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insedona님은 곧바로 1팀과 파견, 10여분 후 FM김군과 고야셈은 같이 다른 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남은 물품을 팀장님의 승용차에 가져다 두려 다시 응가기둥쪽으로 갔을 무렵, 시위대가 출발하니 빨리 오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헉헉거리며 뛰어가보니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더군요. 정말 많았습니다. 항간에는 10만이라고도 하고 5만이라고도 했습니다.
물품을 마저 챙기고 급하게 선두를 따라갔습니다. 마구 내달리는 통에 우리도 같이 뛰었죠. 결국 우리조의 팀장님은 연로(^^*)하신 것때문인지 뒤쳐졌습니다. 사직터널(그렇게 들었습니다.시골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_-)을 기습적으로 내달려 어느 내수동 아파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였습니다. 대열의 앞쪽은 이미 빠져나갔고 의료팀은 진압(?)하는 전경들에게 쫓겨 넘어져 다친 여고생 하나를 치료하느라 머물렀습니다.
왼쪽 어깨부터 손등까지의 찰과상과 옆구리의 열상(진피층이 약간 손상됨)을 입은 이 여학생에게 간단한 처치 후 집에 가라고 하니 안가겠다고 버팁니다. 휴.... 결국 '너 나중에 수영복 안입을꺼야? 이거 이렇게 보여도 흉터 남으니까 집으로 가서 제대로 된 처치를 받아야해. 어여 집에 가'라고 설득하여 보냈습니다. 팀원 하나와 같이 택시에 태워서 보낼때 마음이 참으로 착찹하더군요. 망할 쥐색 하나때문에 저 어린애가...
그 학생뿐만 아니라, 어느 매체의 무릅까진 기자, 몸싸움을 하는 도중 얼굴을 가격당해서 안경이 깨지는 통에 눈가가 길다랗게 찢어진 아저씨 등등, 단 한번의 대치 상황에 대여섯명의 부상자가 생기자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 청년 하나가 흉부를 군화로 가격당해 쓰러져서 의료봉사팀이 인수받았습니다. 그때즈음 합류한 마취의(여자선생님인데 이름을 ㅡㅡ;;;;)선생님이 진찰을 하시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119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10여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 구급대.... 전화로 독촉을 하니 내수동 풍림 스페이스 앞 사거리로 오는 길이 모두 봉쇄되었다 합니다. 경찰이 막았다고 어떻게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마취의 선생님은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저는 팀원에게 자꾸 다시 간다는 환자를 진정시키도록 부탁을 하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고라 게시판에 경찰이 119의 앰뷸런스를 막아 못들어오고 있다고 항의전화라도 해달라고 글을 올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밤 늦은 시각이라 여기저기 전화를 해야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 건물 경비아저씨가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를 위해 환자를 옮겨달라는 말을 했는데, 결국 견디지 못한 화를 내버렸습니다. '차가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고 막 따지는 나에게 엄청 성질을 내시더군요.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니 주위의 사람이 몰려들었고, 자초지종을 들은 한 아주머니가 여기 주민이라면서 자신의 차로 옮겨 주겠다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차를 가지러 아파트 쪽으로 간 사이에 119구급대원이 걸어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오셔서 '안오겠다는게 아니라 이쪽 저쪽 다 막아서 못들어 온것이니 양해를 해달라. 그래서 이렇게라도 걸어서 왔다.'라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시더군요.
조금뒤에 아고라에 글이 올라갔는지, 아니면 보다못한 주위의 시민들의 항의 덕인지는 몰라도 구급차가 올수 있다고 했습니다. 팀원 한명이 남아서 병원에 구급차에 동승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그때 차를 몰고 나오신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동할 청와대 방면은 모두 경찰들의 통제로 진입이 불가하였죠. 결국 차에서 내려 중앙청사쪽으로 걸어가기로 하고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119구급대원이 걸어서 온것을 보고 자신들도 미안했는지 통과시켜주더군요.
부상자가 계속 발생한다는 전화가 와서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효자동 사거리(중앙정부청사 사거리)였고 이미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 중이었습니다. 전방으로 전방으로 나가서 대치선 바로 뒤쪽, MBC와 KBS카메라 후방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경찰의 해산권고 방송과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구호, 몸싸움이 지속되었습니다. 주로 이명박은 내려와라(혹은 물러가라) 등의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였습니다. 구호를 들으면서 이미 쇠고기재협상의 문제를 넘어서 정권퇴진운동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지요.
간간이 몸싸움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큰 사태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예비역들이 방패와 하이버를 빼앗아 뒤로 전달하고 가끔 전경을 연행(?)하여 뒤로 보내며 '비폭력' 또는 '때리지마'라는 구호를 외치고 또 시민들은 곱게 그들을 보내주고... 폭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더랬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이라고는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아마 시사토론(?)이 끝난 시각으로 추정되는데,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을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이때부터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대포에 맞아 일시적으로 쇼크를 일으킨 사람부터,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 오랜 시간의 몸싸움으로 인해 탈진한 예비역들....
계속되는 물대포와 진입시도로 부상자가 정신없이 발생했고, 한두시간이 지난 후에는 저체온증에 시달려 사시나무 떨듯 떠는 환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마른 옷과 담요,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는 의료봉사팀의 요청에 근처 주민의 물품들이 속속 도착하였고, 우비와 우산도 계속 공급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대여섯명을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앰뷸런스에 실어보내고, 조금 있다가 또 발생하여 금새 동나고는 했습니다.
청운동(?)에서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고 손이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쪽에 있던 한 팀이 급파되었습니다. 말투 자체가 차분한 insedona님의 이쪽 상황을 묻는 전화 속 목소리가 어쩐지 다급하게 들렸습니다. 상황을 주고 받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이건 전쟁이예요, 전쟁.'
라스핀도 물대포를 맞고 난뒤 탈진의 기미가 보이고 의료팀의 얼굴에도 피곤이 눈에 띄게 떠올라 후방으로 빠져 휴식을 취했지요. 진중권교수님이 철푸덕 앉아있는 저를 잠깐 인터뷰하고 갔습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과는 달리 말은 담담하게 나왔습니다. 이때즈음엔 라스핀은 끓어오는 분노를 참느라 마스크안의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그걸 억제하느라 '중립, 중립, 중립'이라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반갑지 않은 짧은 인터뷰 후, 인터뷰를 허용하게 놔둔 김선생에게 가벼운 타박을 준 뒤, 주위를 둘러봅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신문지 등으로 불을 피우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모닥불 수준의 불(어디선가 구해온 탈만한 물건과 피켓, 쓰레기 등)이 곳곳에서 피워집니다.
물대포에 맞은 사람들이 나와서 옷을 말리고나서 물대포와 대항하러 다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한쪽에서는 쓰레기봉투로 쓰이는 검은 비닐봉투 큰 것으로 자신의 상체만 가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시민들이 보입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주부와 딸, 이제는 은퇴를 앞두고 있을만한 젊잖게 생긴 아저씨, 할아버지.....
앰뷸런스가 올때마다 길을 앞장서서 열어주고 뭐 도울일 없냐고 찾아오시는 분들, 근처 편의점에서 자비를 들여 사온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나누어주는 분들.....
옆의 연선생('연'가가 아니지만 그렇게 부른다 했습니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해봅니다.
'이거 80년대도 그랬겠죠? 매캐한 냄새만 있으면...'
'그렇네요'라고 덜덜 떨면서 라스핀의 물음에 대답하는 연선생에게 모닥불 근처로 가라고 말해봅니다.
그리고 라스핀의 머리 한구석에는 중학생시절 초여름의 이리(지금의 전북 익산) 시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얀 하이버를 쓴 전경을 피해 참을 수 없는 기침을 해대며 골목으로 내달리고 내 왼쪽으로 슉슉 지나가며 하얀 족적을 남기는 최루탄의 꼬랑지....
'아.. 그때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잠시 딴생각을 할 무렵, 힘이 넘치는 정,박 두 선생의 채근에 마른 옷과 담요를 들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바로 직전, 한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실려서 나옵니다. 역시 저체온증.... 급박해서 상의를 찢고 하의를 탈의 시키고 갈아입히고 담요로 둘둘 말아서 모닥불옆으로 앰뷸런스를 요청했습니다. 팀원 한명이 또 남고....
우리는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에게 옷을 갈아입는데 얼마 안걸리니 갈아입고 다시 오라고 말하며 심한 사람을 우선하여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버티겠다며 조금 더 심한 사람이나 여자, 노약자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옷은 금새 동이 났습니다. 벌벌떠는 사람들을 한번 보고, 내 빈손을 한번 봅니다. 눈가가 나도 모르게 뜨끈해집니다.
그무렵 시위대 뒤쪽 정부중앙청사쪽에서 진압하러 전경이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를 포함한 2팀이 그쪽으로 급하게 이동했습니다.
라스핀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동그란 방패 진압봉, 진압복.... 헬맷 색깔만 틀리지 백골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백골단의 등장에 정신없이 촬영하기에 바쁘고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촛불을 다시 밝혔습니다. 저런 사람들에게 물대포라니... 다시 눈시울이 뜨끈해집니다.
사거리로 조금씩 후퇴할 즈음에 경복궁 뒤로 해가 떠오르는게 보였습니다.
해가 비추는 곳은 야속하게도 줄곧 보아왔던 살수차의 두배 정도되는 크기의 검정색 살수차였습니다. 아침 햇빛을 등지고 천천히 물러나는 수많은 시민들..... 그 큰길을 가득메웠습니다. 라스핀이 있던 곳의 대치 부분에서는 시민들이 어린 전경들에게 '물러날테니 천천히 해라. 여기 모두 너네 형,동생,누나,아버지,어머니,할머니,할아버지같은 분들이야. 천천히 하자'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괴물같은 살수차가 물대포를 쏘아대자 사람들이 픽픽 날라갔습니다. 청장년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깨자마자 소식을 듣고 나온 시민들이 인도에서 아우성입니다. 그냥 놔두었어도 물러났을텐데....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 광경을 본 어느 여자분이 쇼크를 일으켰습니다. 주위분들의 도움으로 진정시키고 오목하게 파여진 진형으로 다가갑니다.
물대포에 맞아 고막파열이 의심되는 환자가 실려나왔습니다. 마취의 선생님이 진찰을 하고 라스핀은 그 주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한 남자가 '왜 못 (사진) 찍게해. 올려야지'라고 화를 냅니다. 순간 열이 받아 그 남자를 노려보고는 '그냥 찍어서 올린다고요? 이사람의 신원이 낱낱이 밝혀질텐데요? 그렇게 알리고 싶으면 당신이 저기 가서 서세요. 여기 인도에 서서 입으로만 나불대지 말고'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당신이 뭔데 그딴식으로 말하냐'는 내용의 말을 합니다. '나? 의료봉사 중인 한의사다. 당신말이야. 무임승차면 무임승차객답게 있던지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와!'라고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때 옆의 팀원들이 나를 뜯어말겼고 그때문에 고개를 돌린 사이 딴 남자분이 끼어들어 참으라고 말합니다. 'X달린 XX가'라는 내용의 욕을 더 해주려고 찾아보니 금새 사라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렇게 벌벌떨며 자꾸 실려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랬나보다고 생각합니다.
마른 옷과 담요는 순식간에 동이 나고 또 한참을 발만 구르고 있고......
참다 참다 못해서 가운을 벗고, 상의를 벗습니다. 벗은 상의를 들고 물대포에 맞고 있는 시민의 옷을 어거지로 갈아입혔습니다. 커다란 수건은 쉴새없이 사람들의 등과 배를 닦아내고.... 여성분은 정선생이 채근하여 빼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말을 듣질 않습니다. 하릴 없이 수건으로 닦기만 해주는 수밖에......
광화문공원(?) 삼거리까지 몰렸을때는 이미 와해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시위대 중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다함께'깃발을 향해 원망섞인 목소리로 '다함께는 나와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팀은 대학생들이 많이 몰려있는 충무로방향으로 몰렸고 다른 팀들은 제각각 흩어졌습니다. 넘어져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로 우리를 찾는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진압이 시작되려는지 전경들이 한발짝 한발짝씩 전진합니다. 어김없이 쏘아대는 물대포를 웅크리고 맞는 학생들을 보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한봉다리 가득 가져온 마른 옷과 수건이 순식간에 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팀원들의 눈에는 애처로움과 억울함과 분노와 무력감이 교차하는 듯 했습니다.
천천히 후퇴하던 시민들이 갑자기 내달립니다. 경찰들이 갑작스레 진압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의 비명소리 뒤로 '저기 사람이 넘어졌어요'라는 외침이 들려와 무작정 그곳으로 뛰었습니다. 정선생이 '선생님 위험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데크레센도 같습니다. 나는 환자를 껴안고 언제인지 모르게 옆에 도착한 박선생은 '의료팀'이라고 목이 찢어지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박선생에게 '갑시다'라고 짧게 말한 후 쉭쉭 급하게 도망가는 사람들과 그 뒤를 쫓는 전경들을 가로질러 위태위태하게 인도로 나옵니다.
나와서야 환자의 얼굴을 보니, 앳된 여학생이었습니다. 크게 놀라 눈동자는 끊임없이 좌우상하를 살피고 있었고 손발은 벌벌떨고 있었습니다. 안정시키기위해 의료팀이 바리케이트를 쳐서 둘러싸고, 닦아주려고 남긴 담요 한장으로 몸을 감싸고 외상을 체크했습니다. 조금 안정이 된 환자를 정선생에게 맡기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광화문 광장의 도로는 그새 차들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가롭게 다니는 차들의 운전자들이 의료팀과 담요를 둘러싼 환자를 신기한 듯 쳐다보더니 이내 연민의 모습을 보냅니다.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광화문 6번출구 안쪽의 조그만 전시관 옆에 안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습니다. 시계를 보았을땐 의료봉사 시작 후 12시간을 몇 분 안남기고 있었죠. 응가기둥 뒤에 팀들이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환자에게 이제 안정된 것 같은데, 우리가 먼저 이동해야 할 것 같으니 조금있다가 갈 때 담요를 여기에 개어 놓고 가면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하고 먼저 길을 나섰습니다.
한 팀이 먼저 와있었고, 조금 있다가 insedona님의 회진시각이 다되어 내려가야 되는데 어디에 있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마취의 선생님이 가운을 벗고 마스크를 벗고 어느 BJ팀이 사준 음료수를 손에 들고 왔습니다. 12시간만에 맨 얼굴을 처음 봤지요...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성함을 묻질 않았습니다.
다른 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시청광장과 안국동에 시위대가 또 대치하여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팀이 안국동으로 가고 우린 시청으로 가기로 결정하여 다시 짐을 꾸렸습니다.
꾸릴 무렵에 insedona님이 혼자 지친 모습으로 나타나 옆 벤치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바닥을 멍하니 응시하고서는
'정말 너무합니다. 전쟁때도 의료진은 들여보내주는 법인데, 이건 말이 안되요. 이미 넘어진 사람을 왜 발로 차고 방패로 찍는지 모르겠어요.'라며 고개를 떨굽니다.
그러나 그 말에 라스핀이 무어라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몇 분뒤 회진 시각에 맞춰 전주에 가겠다며 내 의향을 묻습니다.
'시청에 시위대가 대치 중이라고 하니 그곳으로 가보려구요.'
'네. 그럼 전 택시타고 터미널로 갈께요. 지하철타면 자버릴 것 같아서요. 조심하세요'
'네.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배웅한 뒤, 뒤를 쳐다보니 어느새 짐을 꾸리고 '어서 가자'는 마취의 선생님, 정선생님, 박선생님이 보였습니다. 팀이 어느새 2명이 줄어있었습니다.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지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시청에서 순식간에 진압당해서 뿔뿔이 흩어졌다고요. 해가 떴으니 사람들이 더 나올 것이라는 희망과 상경하고 있다는 소식을 버팀대 삼아 모였다가 끝났다고 했습니다.(톨게이트를 차단하고, 기차 예매를 새벽에 막아버렸다는 소문이 새벽에 돌았음이 잠깐 떠올랐습니다)
출발직전 연3일을 내리 의료봉사에 참가하다가 결국 하루 쉬었던 병원PA분이 합류하고, 안국동(인사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안국동 사거리(?)쪽으로 시위대가 밀려 전경들의 뒤쪽에 도착했습니다. 물대포를 수도 없이 맞으며 환자를 구해오던 차선생이 울먹이며 '큰일났다'고 합니다. 시위대가 바리게이트를 치고 대치 중이며, 밤샘 대치로 신경질적 된 전경과 백골단원들이 아주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절 뒤쪽으로 돌아서 사거리로 나오자 마자 강경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삽시간에 와해되는 시위대와 비명소리와 구호..... 그 와중에 넘어져 밟힌 시위대 한사람을 주위의 주민들이 구해서 의료팀을 불렀고 마취의 선생님과 경남에서 오신 선생님이 진료를 했습니다. 조금있다가 차선생이 '입에 피가 철철 흐르는데 그냥 연행해 가요. 내가 말해도 안들어주니 선생님이 가요'라고 말합니다.
이에 경남의 선생님과 라스핀이 닭장차에 달려가 항의를 하고, 애원도 해보지만 대답은 '그렇게 다친 사람없습니다'라는 신경질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그 대답 속엔 왠지 '껄끄럽다'는 인상이 들어있어 '아니, 다친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 의료인들이 하는 겁니다'라고 다시 항의해 보지만 묵묵부답입니다. 그제서야 그 사람의 이름을 보려고 가슴을 보니 테이프로 가려져 있습니다. 하.... 이 사람 백골이구나. 이쪽은 틀렸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계속 항의를 하는 경남의 남자의사분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광화문방향으로 구급차가 보였습니다. 넘어졌던 분을 이송하러 왔나 싶어 다가갔습니다. 다른 의료봉사자가 구급차를 인도하는 게 보여서 돌아오려던 중 한 여성분이 봉고차 앞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발견, 다가가서 물어봅니다. 무릎을 찧으면서 넘어졌는데 전경이 밟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견딜만 하다며 그냥 가려는 환자분과 이를 말리면서 병원으로 이송하려는 주위분들과의 실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넘어진 환자를 보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차를 세운 한 시민이 있었구요. 환부를 만져보고 반사를 체크한 후 심한 부종이 예상되어 병원으로 가라고 권유했습니다. 그제서야 고집을 꺾더군요.
항의 도중에 닭장차가 그냥 가버렸다고 허탈해하는 경남의사(이렇게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역시 이름은 안물어보고 나이만 물었었죠. 왜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분을 보고 다시 마취의 선생님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종로구청의 물청소차가 바닥을 청소하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차선생이 그걸 보며
'저거 왠지 흔적을 지우려는 것 같아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뻔뻔하게요'라고 힘없이 말합니다.
그때 길건너편에서 외침이 들려옵니다. 인도에 몰려있던 시민들이 항의하자 방패와 곤봉으로 강제해산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여자분(인사동 구경나온 듯한 옷차림)이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리는게 꼭 영화의 한장면 같았습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우리팀을 끌고 건너가니, 서너명이 그새 부상당해 있었습니다. 라스핀이 맡은 환자는 무릅 아래쪽의 넓은 상처에선 선홍색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능숙해진 손놀림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환자들의 처치가 끝날 무렵 그 주위에 사는 주민이라면서 응급의료물품을 한가득 사오신 분이 계셨고, 또 한분은 게시판에서 봤다면서 수건을 한 상자주고 가셨습니다. 어느 남자분은 현재 가진게 돈 3만원이 전부라면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셨으나 '현금은 받질 않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서운한 듯 갈 길을 가셨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여 '그 돈으로 경로원에 조중동말고 한겨레 경향 넣어드리세요'라고 크게 외쳤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밀려서 광화문반대편으로 간 시위대는 다른 팀이 따라갔다면서, 우리는 이제 본대(본대라기는 뭐하고 돌려주신 옷가지 담요 등의 물품을 많이 가지고 있던 팀)에 합류하자고 하여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동 중에도 간간이 부상당한 시민들을 치료하였고 나머지는 계속 갈 길을 갔습니다. 닭장차가 길게 늘어서있는 길가에 전경들의 진료를 부탁받았습니다.
내가 맡은 환자는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락만 테스트를 행하니 '악'하는 소리를 지릅니다. 지휘자로 보이는 분께 '(전방십자)인대'가 손상을 입은 것 같다며 곧바로 치료를 받으라고 전해주었더니 그제서야 의심의 눈길을 풉니다. 차선생에게 탄력붕대를 감아주라고 말하고, 뒤에 온 마취의 선생님이 옆의 환자를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다른 환자를 보러 갔습니다.
이번에 본 환자는 밥풀떼기 하나인, 솜털이 가시지 않은 나이 스물쯤 되어 보였습니다. 경골부위의 단순타박상이었는데 실금이 생겼을지도 모르니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권하며 간단하게 스프레이파스만 뿌려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만 하면 진료를 못받을까봐 붕대를 감아줘서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지요. 그러는 와중에 정선생이 남은 초코바같은 것을 고참들 몰래 먹으라며 주머니에 넣어 줍니다. 그때 라스핀은 환자의 안경 위로 눈물이 한방울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치지 마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다시 갈 길을 갑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려 봅니다. '그래 쟤네들이 뭔 죄냐, 맨 위에 놈이 문제지.......'
가면서 쉬고 있는 전경들 중 다친 이들을 치료하고 이제 갓 입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눈엔 '이제 끝났다'라는 빛이 떠올랐지만, 일부 전경과 지휘자는 격한 적개심을 내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광화문공원에 도착했더니 두 팀이 먼저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3분지 1가량은 바닥에 우비를 깔고 잠들어 있었고요.
다른 팀은 시청광장에서 남은 시민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했고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고 앉았습니다. 이때야 마취의 선생님이 고개를 무릎에 기대고는 쉬더군요. 벌써 3일째라고 들었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몇 분뒤에 FM군이 응가기둥 근처로 이동 중이라는 말을 듣고 같이 전주에 내려가려고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정선생, 박선생, 팀장님, 차선생, 김선생, 경남의사분, 마취의선생님, 병원PA라던 청년, 며칠째 나온다는 어느 여학생과 주부, 그리고 저번에 보았던 간호사 선생님과 의기하나로 버티신 분 많은 분들.... 의료봉사팀인데 처음 보는 얼굴들...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나섰습니다. 이름이라도 알면 좋은데 모두들 지쳐있어서 깨어 있는 분들에게만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길을 가던 중 아까 인사를 나눴던 몇몇 선생님들이 구급차 앞(공원 안쪽 길로 나왔다고 함)에 있는 것을 발견해서 가보니, 밤새 의료봉사를 하던 분이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힘이 빠졌습니다.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는 전경을 바라보니 '억울하다'라는 표정입니다. 내 눈의 원망섞인 빛을 읽었나 봅니다.
미대사관 앞쪽에는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일단의 전경들을 지나쳐 응가기둥옆으로 가니 두 팀 정도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밤샘동안의 아비규환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했지만, 반절쯤은 앉아서 자고 있습니다. 물품을 정리하고 근처 화원에 맡기고 나니 라스핀이 먼저 떠나왔던 다른 팀이 다 도착했습니다.
모두들 졸음에 겨워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입니다.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말하며 인사 후, 후일을 기약하며 FM김군과 고야셈과 함께 전철에 몸을 실었지요. 3명 모두 자느라 터미널을 지나쳐서 다시 돌아가는 해프닝을 겪고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고는 도착할때까지 죽음같은 잠이 들었습니다.
+ 라스핀의 두번째 후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오늘 인터넷을 뒤적여 보다가 위에 언급한 그 입안에 피를 흘리며 연행되가는 남자분이라 추정되는 동영상을 발견하여 캡쳐를 했습니다.
나중에 차선생을 만나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틀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라스핀 스스로 '저렇게 진압당할 만큼 불법을 저질렀나?'라는 의문을 던져봐도 '아니다'라는 대답을 얻을 뿐이었습니다.
정말 답답하네요.
insedona님도 당직이 있고 난 다음날 다시 상경할까 고민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고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래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라스핀도 다시 상경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기초쪽에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내 배후인 양심과 내 미래의 자손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두번째 이야기 ::: 환자의 사진촬영과 관련한 것과, 그 이외 5가지 사항에 대하여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을 복사해서 각 게시판으로 널리 알려주세요)
의료봉사팀이 사진촬영을 제한 하는 것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시는 분이 아직도 많습니다.
항의하시는 분들을 보면,
1)시위를 처음 나오시거나, 의료봉사단의 그간의 상황을 모르셔서 그리한다는 추정과
2) 그 내용을 알지만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데 의료봉사팀이 이걸 막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한다는 추정
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위 두가지에 대하여 설명해드리니 차후 참고하시기길 부탁드립니다.
1)에 대한 내용은 저번에도 포스팅했듯이 플래쉬 문제입니다. 동공반사를 체크하는데 아주 방해가 되고, 강경진압으로 인해 쇼크인 상태의 사람에겐 심각한 위협이 되므로 못하게 진료 중이라도 막는 것입니다. 꾸준히 현장에 계시는 큰 매체의 기자분들(오마이 및 기타 인터넷뉴스 포함)은 그 이유를 알기에 잘 지켜주십니다.
2)에 대한 내용은, 환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사진을 찍어 무작정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사복경찰의 채증'과 다름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그대로 신원이 노출이 되기 때문이죠. 매체의 기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환자에게 신원을 물어서 꼭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나중에 본인이 초상권 침해 등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에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종합해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다시 말씀드립니다.
1. 의식이 없는 환자: 동공반사와 기타 반사 체크 후 의료진의 허락이 떨어지면 사진을 촬영하되, 환자에게 고지(환자의 주머니에 넣을 쪽지 내용:난 당신을 허락없이 촬영했는데 이를 인터넷에 올려도 괜찮은지 나중에 깨어나면 이곳으로 연락바랍니다)를 해주십시요. 동공반사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검사법입니다. 단순 실신인지 혼수인지, 뇌의 손상이 있는지 없는지 판별하는 가름이 되기 때문이죠. 꼭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의식이 있는데 안면부 부상일때: 환자에게 동의를 얻되 직접 물어보지 말고 진료하는 의사나 의료진을 통해 물어 보세요. 이는 플래쉬 같은 강한 빛에 노출될때 눈을 뜨고 있으면 안면근육이 움찔거려 치료에 방해가 되기때문입니다. 특히, 눈쪽을 치료할때는 시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조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의식이 있으면서 안면부 이외의 부상일때: 환자의 동의를 얻어 촬영해주세요. 대신 치료에 방해되지 않게 치료하는 사람의 뒤쪽에 서서 촬영해 주세요. 치료하는 사람의 눈에 플래쉬가 터지면... 핀셋이나 가위로 상처부위를 자극하는 등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시는 분들은 이를 위해 간단한 명함(위 고지할 내용을 집어넣은 것이면 좋겠네요)을 일반 종이에라도 인쇄하여 가지고 다니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이외에 부탁드릴 것이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토요일날 원광대학생 2명의 인터뷰 기사에 '국민대책위 소속의 의료봉사단'이라는 내용이 떴다고 하던데, 사실무근입니다. 의료봉사단은 어떠한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속되어 있다면 이런 '촬영'문제로 시민들과 마찰을 빗는 일도 없겠지요. 저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게시판의 글 보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기사가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료봉사단은 어떠한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순수한 봉사활동을 자신들의 홍보같은 이익에 끌어들이려는 단체가 있다면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리고 특정소속 단체인것 처럼 몰고간다면 라스핀과 여기 같이 참여하는 다른 3~4의 의료인도 더이상 진료할 수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두번째, 저번 포스팅에 의료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첫번째글을 올리신 분으로 치과의사분을 언급했습니다. 이외에 거의 동시(시간적으로 조금 먼저라는 모선생님의 말도 있었습니다)에 글을 올리고 난 뒤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연선생님께 여쭤봐서 얼굴만 알고, 이름도 아이디도 모르지만 그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에 여기에서 알려드립니다.
세번째, 단추수프님(누구인지 짐작이 가는데 본인한테 확인은 못했습니다)이 후원계좌를 닫았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물품만을 지원받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이건 다음 상경때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네번째, 첫번째의 이유로 모두 꾸준히 활동할 수가 없습니다. 오프이거나 학교에 계시거나 공보의, 의대생들이 짬짬이 시간을 내어 전국 각지에서 모입니다. 전화번호도 단 2개 정도 알고 있는데 그나마 한 분하고만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이 분들도 매일 나오시는 것이 아니기때문이죠. 그래서 의료봉사단에 참여하시고 싶은 분은 정해진 시각에 나가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준비된 조끼가 한정이 되어 있고 또한 활동이 시작된 이후로는 어느팀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때문에 배치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점 양해 드립니다. 일정이 끝나고 그 다음날 나올 수 있는 사람을 파악하여 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날 누가 나왔는지 조차도 잘 모릅니다 ㅜㅡ
다섯번째,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간혹 보다못한 의료봉사단원이 사람들을 말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비폭력'이라는 거대 명제를 앞에 두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그리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욕설을 하는 분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분을 계속 말리다가 '의료봉사나 할 것이지 왜 그렇게 말이 많냐'라고 쏘아붙이는 어느 아주머니의 말에 팀원 하나가 그만 두려고 까지 했습니다. 며칠째 제대로 잠도 못자고 나오는 한사람이었는데 그로 인해 우리팀은 귀중한 경험을 가진 한 사람을 잃을뻔 했습니다. 시위의 규모가 커질 수록 시민들의 '쟤네들 프락치 아니냐'는 등의 근거없는 비방도 나도는 판입니다. 경찰들은 우리에게 '어차피 같은 넘들이다'라는 말을 하고요. 양쪽에서 모두 비방을 하면 결국 의료봉사단의 사기는 저하되고 의지를 잃게 되어 그나마 돌아가던 팀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원대의 한 의사분은 수술이 끝난 후 옷도 못갈아 입고 가운 하나 걸치고 KTX열차를 타고 상경하여 새벽내내 진료하고 아침에 회진에 맞추어 내려가셨습니다. 마취의 선생님은 주위에 알려질까 두려워 마스크와 모자를 항상 착용하십니다. 이번에 insedona님은 악플때문에 '무섭다'라고 하십니다. 시민 여러분의 현명함에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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