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많은 분들이 왔다 가셔서 지금 패닉상태입니다. ㅡㅡ;;;;

댓글에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어 몇가지 첨부를 합니다.

1. 편향된 글이라는 의견에 대해: 이 글을 읽으실때 아래 링크의 글도 함께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시면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포스팅한 다른 글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31~1일 12시간의 의료봉사 일기 및 환자의 사진촬영에 대한 부탁의 말씀


2. '닭장차'라는 용어 : 현 정부와 꼭대기 쥐색에 대한 비꼼의 표현이라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전의경의 집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표현으로 글을 읽지도 않고 재단하려는 시도는 삼가해 주세요. 글을 꼼꼼하게 읽고 그에 달린 댓글의 의견 나눔을 보고 나서 댓글을 다는 것이 블로거의 기본 에티켓이 아닐까요?

3. 의료봉사팀 진입을 막은 상인에 대한 언급: 그 아래 단락에 나름 최선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였는데 몇 분만이 눈여겨보시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 위에 그 무엇도 없다'라는 일종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 시각으로 보았던 그 자리에서의 일을 서술한 것이고, 그 뒤의 이야기를 보시면 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읽어내실 수 있리라 생각합니다.

4. 시위의 강도보다 규모가 중요하다라고 언급한 부분: '시위의 강도=폭력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찌라시 광고주 압박 및 폐간 운동처럼 극도로 평화적이면서도 고효율의 방법처럼, 규모를 확대하는 데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단순히 한 한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도 벅차기에,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과 촛불이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포스팅에 언급한 것입니다.

부디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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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1시 반즈음 고야셈한테 전화가 옵니다. 잠 부족으로 피곤을 느껴 4시 15분 차로 상경하기로 결정합니다. FM군은 우리의 일꺼리를 몰아서 주었기에 상경 불가ㅋㅋ  역시 상경하는 버스에서는 잠을 자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8시쯤 도착한 시청의 의료봉사팀 베이스가 천막으로 변모해 있어서 낯선 느낌입니다.

 천막 안에 가득한 의료물품들....과 역시 처음 보는 얼굴들, 이젠 그러려니 하고 맙니다. ^^

 개중에 반가운 사람들 여럿 보입니다. 아는 님들에게 하나씩 인사를 건네며 상황을 물어봅니다. 벌써 2팀이 나갔다고 했고 도착하는 족족 팀을 짜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통성명도 생략한채 분주한 모습입니다.

 물품을 챙기면서 꾀부리러왔다는 나의 발언과는 아랑곳 않고 전경쪽으로 넘어가라고 합니다. 이목을 꽉 틀어막고 소통은 곧 개무시라는 행태를 보이는 통에 시민들이 화가 좀 났다고 합니다. 비가 간간이 오는 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았습니다. 시청광장부터 청계광장쪽으로 길다랗게 늘어선 촛불.... 왠지 든든하면서도 서글퍼집니다.

 겉으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국민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가격하는 행태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 생각해 봅니다. 인터넷 사이드카를 시도하는 모습, 낙하산 강제 투여를 통해 언론장악을 시도하는 모습, 촛불이 좀 사그라든 기미가 보이자 마자 소인본색을 드러내며 관변단체를 끌어들여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모습, 딴날당 국캐의원들의 장열한 헛소리 대행진, 의료법인 영리화와 민영보험 활성화를 진행시키는 모습, 물 사유화를 촉진시키는 법을 통과시키려는 행태 등등 열받을만하지요 ㅡ,.ㅡ

 여하튼 라스핀이  요즘 피곤이 쌓인터라 그냥 뒷편에서 간단한 진료만 하기를 원했는데, 의사 수가 부족하다하여 결국 하선생님팀에 합류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이름모를 간호사분, 도선생님, 하선생님, 정선생님, 김선생님과 라스핀, 이렇게 6인의 닭장차 뒷편의 의료봉사를 시작합니다.

 명박산성옆 패밀리마트 샛길로 들어가려 했는데 길이 모두 막혀있다고 새문안교회 옆으로 가보라고 합니다. 지휘자분의 얼굴이 낯에 익어 살펴보니 전에 간식을 나눠드렸던 그 소대인것 같습니다.

 새문안교회쪽은 버스를 배치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지휘자로 보이는 분에게 사정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 '저기 시위대로나 가지 뭐하러 여기로 들어가려고 하냐!'며 짜증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 안쪽(닭장차 뒷편)에서 장사하는 사람인데 시위대때문에 장사 안되서 짜증난다'는 요지의 말을 합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나기도 해서 '사람(부상자 등)이 중요하지 돈이 중요하냐'고 따지는 나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합디다. '나 한의사고 전경들 다치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 저쪽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하니, 계속 '시위대쪽으로나 가서 해라. 여기 들어오지 말고..'라는 따위의 말을 합니다. 라스핀은 또...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요지의 말을 하지만 이 사람한테는 하루 매상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역시 옆의 팀원들이 나를 말리고, 옆에서 무전으로 의료봉사팀의 진입여부를 묻던 경찰이 그 남자를 한쪽으로 데려가 가던 길을 가도록 합니다. 잠시 후 의료봉사팀에게 길을 안내할 전의경 2명을 붙여서 진입이 허가됩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곰곰히 생각을 해봅니다.

 그 지역의 상인들이 뭉쳐서 지역구 의원들을 통해 저지선을 뒤쪽 광화문쪽으로 물러달라고 압력을 행사하면 간단할 일일텐데.....라고....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가 누구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누가 물러나지 않는이상 장사고 뭐고 없을 거라고...

 (지역구의원들은 표심에 아주 민감합니다. 상인들이 집단 행동을 한다면 벌벌 떨겠죠. 선거기간이 되었을때 '아 그때말야 장사좀 해보게 경찰한테 말해서 저지선을 뒤로 물러달라고 요청했더니 묵살한 사람아닌가'라는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싫을테니 말이죠. 하기사 이런 내용을 충분히 알고 행했다면 딴날당 국캐의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리는 없었겠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를 안내하던 분대장(솜털이 보송보송 ㅋㅋ)이 기침을 합니다. 주섬주섬 뒤져서 찾은 해열진통제 2알을 건네고 앞쪽을 바라보니 '전경들의 부모 모임'에서 물을 끓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동상의 좌측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을 무렵, 배치 담당관인듯한 경관이 누구냐고 물어옵니다. 의료봉사팀이라고 하니 '소속'이 어디냐고 묻습니다. 소속같은 건 없고 그냥 모인 사람들이다라고 말을 해주니 별말 않고 우리 앞쪽에 있던 아가씨 2명에게로 다가갑니다.

 이 날, 우리는 '소속이 어디냐'는 물음을 수도 없이 듣게 됩니다. 왠만하면 인터넷 좀 보시지....ㅡ,.ㅡ

 얼마후 갑자기 방송의 내용이 바뀝니다. '모래주머니를 쌓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내용에서 '공사장에서 모래를 퍼가는 행위는 절도다'는 내용으로 바뀌면서ㅋㅋ 건너편쪽의 깃발이 점점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팀을 둘로 나눠서 동상을 기점으로 좌우로 나눕니다. 라스핀과 정,김선생은 교보빌딩쪽으로 이동합니다.

 간간이 날라오는 물병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서있기를 몇 시간.....

 모래를 다 쌓았는지 앞쪽 버스(겹으로 배치되어있음) 위로 깃발을 든 시민들이 보입니다.

 특정인물을 지칭하며 강한 어조로 경고방송을 하는 여경의 목소리는 점점 짜증이 더해가는 듯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여경분이 허리가 아프다고 상관되는 분이 파스를 받아갔습니다. 하루종일 트럭의 좁은 좌석에서 방송을 하니 그럴 수 밖에..... (차 밖으로 나와서 하라고 말하려다가 말았습니다 -O-)

 이건 라스핀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 경고방송으로 사람들이 더 자극받는 듯 합니다. 강한 어조(경찰은 지켜보고 있다, 추후 책임을 반드시 지우겠다, XXX씨 선동하지 마라 등등)로 방송을 할때마다 어김없이 무언가가 날라오기 때문입니다.

 깃대로 닭장차 위의 가림막을 치자 그걸 빼앗으려다가 손가락이 상당히 깊게 베인 전경하나가 왔습니다. 뼈가 살짝 보였으나 끝을 움직이는 걸 보니 신경에는 이상이 없는 듯합니다. 환자를 안심시키고 119구급차로 안내해서 이송했습니다. 환자는 '놀라지 않았다.'고 계속 말했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는....

 한참 후 버스한대가 시민들에 의해서 끌려나가자, 전의경들이 분주해집니다. 와이어로 각 버스를 몇 겹으로 묶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렉카를 뒤쪽에 대고 아예 고정시켜버렸습니다.

 끊임없이 소화기를 뿌렸고, 맞바람에 분말을 뒤집어쓴 전경들이 식염수 세척을 받기위해 찾아오기도 합니다.

 새벽 3~4시가 되었을까... 시민들쪽으로 끌려갔던 전의경 2~3의 상태를 봐달라며 어느 경관 분이 찾아옵니다. 원래 자리에 없었던지 '어딨어? 이쪽으로 오란말이야!'라고 다그치는 무전이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결국 두세번 왕복후 찾은 환자 3명 중, 1명은 동공반사가 정상에 비해 느렸고, 1명은 어플리이테스트에 양성을 보여 후송조치합니다. 시민들에게 순식간에 끌려갈때 맞아서라고 하는데 자세한 경위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순식간이라서 어찌되었는지 몰라요'라고 말하는 입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동상 뒷편에서 진료를 보고 있으니 저쪽에서 휴식을 취하던 전의경들이 속속 찾아와 치료를 받고 갑니다. 그런데..... 나와 김셈의 손길보다는 정선생, 도선생, 간호사셈의 손길을 원하는 듯 그쪽으로 길다랗게 줄서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ㅋㅋ

 현장에서는 치료를 거부하던 아가들이 휴식때는 지휘자의 허락을 받아 스스럼없이 찾아오는 모습에 최선을 다해 처치를 해줍니다. 심지어는 소중한 초코파이도 건네주더군요^^ 간혹 간부들도 왔다가기도 하구요.

 한바퀴 돌고 나니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비가 조금씩 거세지자 '이제 곧 끝나겠네'라고 생각했지만 왠걸.... 시위대는 도무지 해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이 터올 무렵, 날라온 물병(?)에 콧잔등이 살짝 찢어진 전경하나를 치료하고 있었을때 하선생이 저를 찾았습니다.

 연행될때 간단한 처치를 받은 여자분이 있었는데 변호사(민변)앞에서 말이 바뀌었다고 저를 보자고 합니다.

 가보니 변호사분이 신분을 확인합니다. 일단 경찰분(송파구??)과 변호사분께 제 입장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의료인으로서 환자가 원하면 진료에 임해야하는 것이 의무이고, 환자는 처치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건 의료법상에 명시되어 있다는 것, 여기서 저 여환자를 응급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내 권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변호사분이 'EMT전문의(눈에 소화기분말이 들어가서  따갑다고 계속 호소하면서 숨쉬기 힘들다고 말함)가 아니잖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아차싶었는지 '환자분이 병원에서 진료받기를 원한다'는 내용을 다시 강조합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를 살피면서 간호사셈에게 확인을 했을때, '눈을 식염수로 세척하였고, 비강을 세척할때 본인이 거부했으며, 가래를 밷어내도록 지도했으나 그 또한 본인이 거부했다'는 진술이 이어지자...... 변호사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휴.... 환자는 진료받을 권리도 있지만 거부할 권리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랬겠죠.

 라스핀이 돌아보며 '경찰분과 변호사분들 잘 들으셨죠? 여기 간호사선생님은 매뉴얼대로 처치를 잘 하셨으나, 본인이 싫다고 했으니 제가 굳이 말씀 안드려도 아실껍니다'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본인의 실수를 눈치챈 아가씨..... (__)

 그러자 이 아가씨..... 발목이 아프다고 합니다. 흠.... 라스핀도 이때즈음엔 좀 짜증이 나 있었습니다. 자신이 치료를 거부해놓고 간호사셈과 그 옆 봉사자분들이 제대로된 처치를 안했다는 식으로 몰았기때문이죠. 그러나, 직업정신을 끈덕지게 발휘, 제 감정상태가 말투에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촉진을 해봅니다. 복사뼈 안쪽으로 발목이 접질려서 살짝 함입되있더군요. 하선생과 간호사셈에게 발을 고정시키도록 하고, 어긋난 발목을 맞췄습니다. '탁'소리가 나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발목을 가리키며 인대가 살짝 늘어났을테니 2~3주 요양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시작하는 티칭......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짜증'이었습니다. 4주 진단을 반절로 줄여줬으니 최소한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XX로 시작하는 짜증이라니.. 흠.

 순간 스플린트를 대주고 연행해 가라고 말할뻔했지요. ㅡ,.ㅡ 그래도, 심한 부종이 동반될테니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경찰과 변호사에게 말하고 '제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양자간에 잘 결정하세요'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솔직히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나중에 하선생에게 들은 바로는 결국 경찰의 양보로 병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팀원 하나가  '남들 다하는 닭장차 투어 한번 해본다는 생각도 할 법한데 말이죠.'라는 말에 다들 피식 웃고 맙니다.

 빗줄기는 계속 굵어지고, 대치 상태는 계속 되었습니다.

 시위가 소강상태가 될때쯤 어김없이 자극적인 말투로 경고방송을 내보내는 경찰.... 보다못했는지 버스위로 올라온 시민 한분이

 '저 경고방송하지 말라고 그래요. 끝날만하면 방송해서 사람들이 열받아 집에 가지를 안잖아요. 아니면, 방송하는 사람 바꾸기라도 해요.'

라며 전의경을 향해 하소연합니다. 라스핀과 팀원들, 일부 전의경도 순간 고개를 끄덕입니다.ㅡ0ㅡ

 헌법제1조가 나올때즘엔 전의경도 따라 부르다가 예리한 정선생한테 포착된 조그만 사건도 있었습니다ㅋㅋ

 빗줄기가 극성을 부릴때 2개의 팀이 번갈아 번을 섰는데, 휴식을 취하러 갔다가 '전의경부모들의 모임'분들에게 커피도 한잔 얻어 마셨습니다.

 '시청쪽으로 이동해서 오늘을 마무리짓자'는 시위대측의 방송이 있고 나서 시위대가 흩어지는 모습이 버스틈새로 보였습니다.

 오늘을 보내며 정선생과 김선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말을 합시다.'

 '오늘 시민들이 버스를 부수고, 물병을 던지는 등의 행위가 있었죠'

 '거기에 전의경의 근거리 소화기 분사가 있었고요. 간혹 날라오는 물병을 다시 집어 던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여기(대치 현장)에 있으면 잊기 쉬운 것이 있어요.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상상도 못할 정신적인 폭력을 강제하는 사람이 있어요. 모두 거기서 비롯된 것이죠.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나와야 해요. 그 폭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여기까지 말했을때, 정선생...

'맞아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같아요. 시위의 강도가 아니라 시위의 규모가 더 중요한데 말예요'

라고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합니다.

 몇 분뒤에 '자, 우리도 이제 돌아갑시다'라는 말을 꺼내어 베이스로 향합니다. 향하는 도중 밤새도록 목청을 돋궈 방송을 하였던 피곤한 얼굴의 여경에게도 눈인사를 건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연신 건네는 막둥이 같은 전의경들을 지나칩니다. '너희들이나 저 시위대나 우리나 이게 뭔 고생이다냐. 이게 다 한 넘때문이다.'라고 되새김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촛불집회가 공부하는 장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호를 외치고 각종 퍼포먼스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현대사를  남녀노소 구분없이 알기 쉽게 가르치고 배우며,

그동안 무심했던 정치에 대하여 토의토론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배양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일제치하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스스로 일깨우고,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등.......

아름다운 시민의식을 길러낼수 있는 그런 멋진 행사가 담긴, 촛불시위를 기대해봅니다.

촛불 하나하나가 집으로 돌아가서 더 큰 촛불이 각 가정에 이웃에 켜지고 켜진다면, 물병을 던지지 않아도 버스를 부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테니까요.


시민들이 더욱더 지혜로와져, 오는 28일, 촛불의 거대한 파도를 기원해봅니다. ^^


+ 아래는 J Kim님이 만든 동영상입니다. 촛불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좀 길지만 꼭 보시길...


6월 5일 ::: 72시간 촛불집회, 2박 3일 의료봉사를 기획하다!

 전날의 일을 마치고 여기저기 연락을 합니다. 의료봉사단에 참여할 내 주위의 사람에게 언제 올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일단 insedona님의 글에 등장하는 라스핀을 포함한 3인의 한의사는 같은 날 상경하기로 하고 서울의 모병원에 있는 R1 동기와 경기도에 있는 공보의 동기, 광주의 99학번 선배, 지금 4학년 여후배가 각각 6일 7일 저녁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insedona님은 토요일이 당직이라며 일요일에 온다고 합니다.


6월 6일 ::: 의료봉사에 참여한 라스핀과 그 일당들, 프락치로 몰리다!

 보건소에서 반강제적으로 지원(?)받은 물품을 챙기고, 점심 후 학교앞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탔습니다. 역시 버스에서는 잠만 잤구요.

 6시반즈음 도착한 응가기둥옆에는 역시 낯선 얼굴들이 조를 짜고 물품을 챙기는 등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새 의료봉사단의 인원이 엄청 늘었습니다만, 항상 고생하시는 팀장님 이하 열렬 봉사단원들은 여전합니다. 근육통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을 보며 라스핀의 마음을 다잡아 줍니다.

 31~1일에 참여 경력이 있는 4~5명이 한 조를 이루어 안국동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이번 72시간 촛불집회에는 경찰들이 아주 작정을 했는지 곳곳에 닭장차로 벽을 세웠더군요. 겨우 한사람이 지나다닐 공간만을 남긴채 청와대 방면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닭장차 주차를 해놓았습니다. 예술적인 주차 솜씨에 모두들 혀를 내두르며 안국역으로 이동합니다. 중간 중간 전경들이 서있는 골목길을 통해 진입을 시도해 보지만 너무 주차를 잘해서 경찰들도 통행이 불가해 보입니다. ㅡ,.ㅡ 결국 빙돌아서 도착한 현장에는 아고라 깃발아래 수천명으로 보이는 인원이 구호를 외치며 이동하는 중입니다. 이동 중에 시민들이 시위대로 속속 합류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시위대 중간 중간에는 유모차들이 보입니다. 라스핀의 조는 이 깃발을 따라 삼성생명 빌딩(?) 교보문고를 지나 다시 광화문역으로 돌아옵니다.
 
 광화문역으로 돌아와 가지각색의 깃발아래 모여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구호와 노래, 몸짓을 구경하며 잠시 쉴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예비군 해병대에서 잘뛰는 베테랑급(?) 의료지원팀을 한 팀 지원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며, 팀을 꾸려달라고 합니다. 라스핀과 혼자서 2~3명분량의 보급을 담당하는 드랍쉽 박선생, 상황을 적절히 판단하여 빠른 대처로 진료부분의 부담을 덜어주는 스팀팩 정선생을 데리고 이동합니다. 때마침, 응급구조사('정'가지만 정선생과 헷갈려 '하'선생으로 불리우는) 하선생이 나온다 하고, 재활의학과의 진선생이 도착하여 어렵게 합류했습니다. 어찌보면 굵직굵직한 경험을 한 봉사자들로 드림팀(?)이 꾸며진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도중에 모언론사의 기자 하나가 해병대와 마찰이 생겼습니다. 급기야는 그 언론사기자의 서포터라는 인간이 짜증나는 말투로 '저런 구급상자나 물품은 어디서 가져온 것이냐, 의료봉사팀도 프락치 아니냐'는 말을 합니다. 하....

 역시 '욱'하고 마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반창고로 가린 가운의 이름표를 보여주고 신분을 확인시키고 사과하라고 종용하니 사람 짜능나게 하는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하는 일 없이 왔다 갔다하는 것으로 보이는 해병대전역자들이 의심스러워 그랬다'고 하고 슬그머니 없어집니다.  그러다가 현장으로 뛰어가니 우리를 가리켜 큰소리로 다른 시민들이 잘 듣도록 '이 사람들 프락치예요'라며 우리를 손가락질하며 따라다닙니다. 라스핀은 이때쯤 열이 받을대로 받아있었습니다. 저걸 콱! 하면서요 ㅡㅡ+

 또 이동한 곳은  흥국???  빌딩 사거리였는데, 의료팀을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 급하게 뛰어가봅니다. 도착한 현장에는 이미 거기서 자리를 잡고 있는 의료팀이 있어 옆 공간으로 빠지니 해병대분들이 말도 안하고 가는 통에 한참을 찾았다며 뒤따라 올라왔습니다. 해병대는 3개조로 나뉘어 계속 교대되며 투입되는 형태였는데 그 중 한 분대가 따라온 것이죠.

 문제는 이때였습니다. 그 밥맛(기자 서포터라면서 되도않는 질문들을묻다가 불리해지면 나 시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어서 의료팀이 그렇게 부름)이 어느 아저씨와 은밀히 대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옆으로 살그머니 가서 그 대화를 들어보려고 시도를 하니 이 아저씨가 다짜고짜 라스핀의 신분을 묻습니다. 의료봉사단이고 한의사라 했더니 어떻게 증명하냡니다. 그러니 그 밥맛이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시민들 이 사람들 프락치예요'라고 큰소리칩니다.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한 둘 모여들고 어느새 우리를 에워싼 시민들.

'아까 당신 내 신분 확인했지 않느냐, 왜 또 그러냐'고 그 밥맛에게 말하니 어물쩍거리다가 또 '이 사람들 프락치예요'라고 소리칩니다. 라스핀은 화가 끝까지 나버렸죠. '당신 뭐냐'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입니다. 이제껏 기자 서포터라고 같잖은 신분을 내세워 프락치로 몰아쳐 소리치더니 그 물음엔 '나 시민이다'라고 합디다. 그 말투와 비열한 웃음... 악몽입니다. 아직도 짜증나는군요. 하...

 진선생이 옆에서 그 아저씨와 티격태격하고 결국 신분증(대학원학생증)을 보여줬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확인하는 척하다니 무작정 '(수첩에) 적겠다'며 신분증을 꽉 쥐고 돌려주지 않습니다. 적는다는 모션을 취할때 라스핀이 신분증 돌려달라며 신분증을 잡아당기면서 그럼 당신들 신분을 밝히라며 성질을 냈습니다. 병원이나 학교에서 당할 불이익이 걱정되어 밝히지 않는 신분을 노출했는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열이 받았죠.

 마침 민중의 소리 기자분이 오셔서 그 언론사 편집장님 되신다고 확인해주고, 진선생의 KBS기자 친구를 통해서 신분확인을 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마취의선생님도 우리의 신분을 보증하면서 말을 해보지만 막무가내였었죠. 결국 어찌저찌해서 오해를 풀고 명함을 주고 받으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의료단의 신분이 밝혀져서 돌아다니면 우린 다시 여기 의료봉사단에 못 나온다고.....(의료계 현실을 좀 아시는 분은 이해를 할 듯..)

 아! 이런, 이번엔 마취의 선생님 성함을 물어본다는 것이.... 아주 반갑게 악수만하고 말았군요. 음, 왜 이름을 물어보고픈 생각이 안들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 ㅡ,.ㅡ

 어쨌든 그 '라스핀이 프락치로 몰린 사건'은 마무리 된 듯 보였지만, 오늘 미디어스에서 이런 기사가 떴더군요.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7


가재는 제편인가요? 그 기자들이 우리를 프락치로 몬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더군요. 오로지 기자편에서만 언급을 했더군요. 최소한 의료봉사팀에게 미안하다고는 해야하지 않나요?

 이 사건이 라스핀과 동료들이 이번 촛불에 회의감을 가진 시초였습니다.

 예비역이나 해병대의는 차를 끌어내려 시도하고 부수는 행위를 하는 등의 폭력적인 행위를 막고 심각한 부상자 발생시 흥분한 군중사이로 길을 만들어 의료팀이 접근하는데 길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충돌이 심하여 급한 환자가 발생한만한 곳이 생기면 해병대분과 함께 그곳으로 전력질주하여 초동대처를 하는 것이죠.

 그 덕에 새문안교회 골목에서의 늑골 골절 남환 발생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고, 탈진 남환도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해병대분대가 아니었으면 공간확보조차도 어려웠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그 늑골골절 남환은 정말 위험했었거든요 ㅡ,.ㅡ

새벽까지 해병대 분대와 같이 행동하면서 수많은 환자를 빠르게 초동대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만, 현장 이곳 저곳을 뛰어다닌 나머지 정박 두 선생과 라스핀은 탈진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너무 심하게 오버클럭킹을 한 후유증인셈이죠.

 첫날새벽까지 수상한 점이 있었는데, 시위대 일부가 그동안 보아온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의료봉사팀 중에서도 항상 라스핀은 최전방에 있기때문에 전방에 서는 사람들이 눈에 익어서 간혹 눈짓으로 인사하고는 했지만, 이 날엔 낯선 이들이 많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새문안교회에서 또 환자가 발생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때즈음엔 다른 팀들이 투입되었기도 했고, 일부 폭력적인 사람들의 비협조에 실망해서 시위대 중간중간을 돌아다니며 진료만 했습니다.

 의료봉사팀이 연행되었다는 헛소문도 돌더군요. ㅡ,.ㅡ 환자 치료를 위해 공간을 확보하러 전경쪽으로 넘어간 팀이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길을 잘 비켜주지 않았기도 했고, 경골 골절 환자라 비집고 갈 수도 없어 넘어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환자를 119에 실어보내고 대치 중에 탈진과 발작을 일으키거나 다친 전경들을 돌보기위해 아예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간혹, 새로 합류한 봉사단원 중에 '왜 전경을 치료하냐'고 따지는 분이 있다는데..... 그런 말이 들려올때마다, 나서서 전경들에게 다치지말라고 따뜻한 말과 탈진 방지용 간식을 건네는 우리 팀원들과 비교해봅니다. 라스핀이 일부 단원만 싸고돈다는 불평불만이 있지만 그냥 봉사가 아닌 '의료봉사'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기에 가뿐히 무시할 뿐입니다.

(지나가는 얘기이지만 자신이 '의료인'이라는 신분을 드러낸 상태에 어떠한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게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기도 하지요. 즉, 의료인에게 '의료'라고 명패를 건 이상 환자의 신분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진료에 임하는 것은 의무란 얘기입니다.)

 새벽에 경찰의 모범적인 해산(진작에 그렇게 좀 하지... 쳇)을 통해서 흩어질때까지, 지칠대로 지친 라스핀은 저녁 6시까지 죽은 듯이 잠들었습니다.


6월 7일 ::: 이제까지 못보아왔던 이상한 시위대

 모텔에서 수면을 취하고 나온 응가기둥 옆에는 역시 새로운 얼굴이 보입니다. 전날 선생님들이 뻗어버린 탓인지 의사 수가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환자가 많이 발생한 경찰 측으로 응급구조사(초창기 멤버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신)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팀이 파견되고 나니, 5개 팀으로 나눴는데 한 팀당 10~14명이 되는 엽기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역시, 라스핀은 가장 많이 움직일 곳에 투입....되었지만 팀원이 많아져서 그런지 둔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7~8명으로 하선생님팀과 라스핀팀으로 나눠서 활동했습니다.

 서울지역 대학생 연합의 깃발을 따라 독립문을 지나 사직터널 앞쪽에까지 그리고 그 뒷동네의 가파른 경사길까지 뛰어다니며 팀원들을 재촉한다고 뒤돌아보다가 삐끗 ㅡ,.ㅡ 그리고 내려올때 또 다른 발을 삐끗 ㅡ,.ㅡ 부상을 입었습니다. 본진(응가기둥 옆 베이스)에 들러 화장실에 갈때가지 참느라 진땀뺐었죠.

 닭장차가 전날과 마찬가지로 가는 족족 길목(주택가 길목까지)에 예술적인 주차를 해놨기 때문에 다시 광화문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충돌이 없었습니다. 그냥 평화스럽게 구호 외치고, 몸짓하고 축제 분위기(?)였죠. 간혹 닭장차에 올라간 사람이 나오면 '내려와'라고 구호를 외쳐서 말그대로 평화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새벽(아마 2~3시쯤)이 되어서 갑자기 이순신동상 앞으로 목장갑과 파이프를 든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닭장차를 부수고, 물건을 던지고.... 그에 대응해서 소화기를 분사하는 전경들.... 분위기가 삽시간에 이상하게 변했습니다.

 해병대가 질서정리를 위해 투입이 될만도 한데 어제의 프락치로 몰린 사건으로 인해 의견이 분분한지 뒤로 빠져있었습니다.

 전날, 골목에서 사람들 일부가 닭장차를 끌어낼때 진압이 예상된다면서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닭장차를 부수고 끌어내는 바람에 전경들이 자극된 상태고 이 상태에서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며 '해병대가 연행되는 한이 있더래도 시민을 보호하자'는 말이 전달되는 모습이었죠.  나중에 해산되기 전에 또 프락치로 몰렸다고 하면서 해병대는 앞으로 집회에서 빠진다는 얘기를 정선생에게 전달했다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닭장차위에서 떨어진 사람(골반골절 의증)을 실어올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환자가 있다 뒤로 물러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로 빠졌지만, 일부 수십명의 사람들은 그와는 아랑곳 않고 계속 닭장차 위의 전경들을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덩치 좋은 남자분이 환자를 업을 수 있어서 간신히 빠져 나와 무사히 처치를 하고 insedona님에게 인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위대가 과격해 졌을 당시, 소화기 분말이 자욱해졌을 무렵 우리 팀도 바뻐졌습니다. 마스크와 식염수를 들고 전방으로 갔을때 물건을 던지는 포즈를 취하는 아저씨(40대로 보임)를 발견하여 제지했습니다. 제지했더니 손에 아무것도 없다면서 왜 그러냐고 빈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저씨가 던지는 포즈를 취할때마다 어디선가 플래쉬가 터진다는 것이었죠.

  이 사건이 이번 시위대에 대하여 이상한 느낌을 갖게한 단초가 되었습니다.

 한번의 과격한 시위가 있고, 그 환자가 발생한 후 몇 분뒤 시위대가 갑자기 온순해 졌지요. 온순해진 시위대는 차츰 이성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말 온순해졌습니다. ㅡ,.ㅡ

 새벽 4~5시즈음 또 일부 사람들이 과격해 졌고 닭장차를 하나 부숴서 끌어냈습니다. 그 사람들 근처에는 강하게 항의하면서 말리는 시민들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떤 건장한 사람들이 나와 그 항의하는 사람을 윽박지르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만난 의료팀 중, 초기 멤버들도 이해를 못하겠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닭장차 하나를 끌어낸 것으로도 모자라, 전경이 올라가 있는 버스에 줄을 매고 잡아당긴 사건이었습니다.

 이때는 시민들이 보다못해 줄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통에 다행히 몇 번의 시도로 끝났습니다.

 밀집된 시위대를 뚫고 지나다니면서 그 느낌은 일종의 확신으로 굳혀졌습니다.

동이 터올 무렵에는 정말 평화스러웠습니다. 해산을 시도하는 경찰들에게 욕을 하며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옆의 시민들이 뜯어말리는 모습이 간간이 보였구요.

 욕설을 내밷으며 막무가내로 시비거는 여자들을 말리는 모습도 여러군데에서 목격되었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지킬과 하이드?를 보는 것 처럼요. 우리 팀원들도 그 광경을 보며 새벽의 그 두 차례 파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시위대 해산을 하러 뛰다가 인대파열 의증 전경을 처치하려했는데 본인의 완강한 거부로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집 막둥이(육군 수색대 출신)보다도 한참 어린 나이일텐데....

 어쨌든 1차 해산이 끝난 후 응가기둥옆으로 모였을때즈음 다시 도로 점거를 시도한 시위대가 있었습니다.

라스핀은  전경쪽으로 교대투입되었던 FM군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에 지방으로 다시 내려오기로 결심한터라 그쪽에는 하선생님을 중심으로 의료팀이 파견되었지요.

공중화장실에서 머리에 가득 묻은 소화기 분말을 씻어내고 짐을 챙긴후 의료봉사단 분들에게 전부 인사를 하느라 좀 지체되었습니다.

역시 피곤 가득한 얼굴들..... 마음 속에는

'존경은 존경받을만한 행위를 했을때야 받는 것이다'라는 말이 의료봉사단원들의 얼굴위로 겹쳐보입니다.

 FM군과 99선배, 4학년 후배와 시청역으로 이동 중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의 '저런 분(의료봉사단원)들에게야말로 의료인 면허를 줘야한다'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시청역으로 이동하면서 급하게 파견된 의료봉사단원에게 인사를 나누며 시민들과 어울려 도보에 앉아있는 전경들을 봅니다.

정박 두 선생을 보고 내려가려고 찾아보았는데 박선생만 볼 수 있었습니다. 정선생과는 라스핀이 발목붕대를 교체하러 길가에 앉아있는 사이에 길이 엇갈렸나 봅니다.

커피를 나눠서 마시고 간식을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과 전경... 정말 평화로왔습니다.

이쯤되니 확신이 생기더군요. 그 이상한 시위대에 대해서 말이죠.


72시간, 후기를 마치며 :::: 이상한 시위대에 대하여

31일~1일을 겪어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렇게 물대포를 맞았어도 전경에게 직접적인 욕설이나 폭력을 행한 예가 없었고 그 뒤로도 그 분위기는 꾸준히 유지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때는 저렇게 특정시간대만 대치(6~7일)한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몸싸움(31~1일)이 벌어졌었다는 점, 닭장차를 부수고 올라타는 사람들이 전과는 다르게 30~40대(처자식을 가진 사람이???)였고 낯선 사람들이었다는 점 등에서 이번 7일~8일의 시위는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이상한 점은, 한쪽에서는 하지 말라고 구호를 외치고 한쪽에서는 자극적으로 선동하고.... 전날 예비역들을 프락치로 몰아 예비역들이 빠져있어 질서유지가 안되는 상황이니 더욱더 이상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 폭력에 환호를 보내는 군중들은 보았을때는....... 라스핀조차도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인세도나님도 문자를 통해 '실종된 시민의식에 회의가 든다'고 표현을 했을 정도니 다른 의료팀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폭력'을 장장 30여일 동안이나 유지했던 그렇게나 현명했던 시민들이 일부 음해세력에 의해 선동당하였다 하더라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선동하는 자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서 폭력을 행사하려 시도하면 '던지지마' '때리지마' '올라가지마' '부수지마'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했던 그 현명하고 자랑스러운 국민을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제 촛불집회는 인내력과 동원력(?, 참여인 숫자)에 달려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그 아름다운 시민들의 자정능력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선동당했다 하더라도 그 선동을 가뿐히 개무시하고 더 뛰어난 시민의식이 발할 수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겠네요.

촛불이 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닐까요?

 그리고 만약..... 만약...... 그 자정능력이 발하지 않는다면 라스핀은 앞으로 의료봉사에 참여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첫번째 이야기 ::: 참가후기 두번째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온몸의 구석구석이 아우성을 치는군요. 운동부족을 실감합니다. (__)

블로거뉴스를 편집하시는 분의 덕택(?)으로 너무 과도한 칭찬을 받아 결국 다시 상경하기로 결심,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어찌저찌 명단이 확정되고, 5월 31일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전주에서 insedona님을 모시고 왔는데 점심식사 후 지갑을 놓고오신 것을 발견, 다시 전주로 향했습니다^^;;;

insedona님의 지갑을 찾고 전주터미널에서 출발했지요. 라스핀,FM김군,고야셈 3명의 한의사, 내과의 insedona님, 그렇게 4명의 상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총 12시간이 넘는 아비규환의 대장정이 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고 다들 상경하기위해 미리 일을 처리하느라 힘들었는지 눈을 부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저번 상경때 남부터미널에서 먹은 우동 한그릇이 전부여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도착하자마자 저녁식사부터 했습니다. 역시! 이때까지만해도 사실 별걱정을 안했었지요. 뭐 거리시위를 한다 하더래도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한 예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했으며 경찰 또한 연행을 할 망정 여론을 의식해 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계광장 응가기둥(일명 소라기둥이라고 하더군요) 옆에 도착했을때는 의료봉사단 중 마지막 1팀이 시청광장으로 이동하려는 찰나였습니다. 그새 얼굴이 낯선 분들로 다 바뀌었나봅니다. 그러나, 역시 통성명도 없이 무작정 의료구호물품을 들고 움직였습니다 ㅡ0ㅡ

시청광장 무대 오른편에서는 곳곳으로 파견되고 남은, 3팀이 있었고,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insedona님은 곧바로 1팀과 파견, 10여분 후 FM김군과 고야셈은 같이 다른 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남은 물품을 팀장님의 승용차에 가져다 두려 다시 응가기둥쪽으로 갔을 무렵, 시위대가 출발하니 빨리 오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헉헉거리며 뛰어가보니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더군요. 정말 많았습니다. 항간에는 10만이라고도 하고 5만이라고도 했습니다.

물품을 마저 챙기고 급하게 선두를 따라갔습니다. 마구 내달리는 통에 우리도 같이 뛰었죠. 결국 우리조의 팀장님은 연로(^^*)하신 것때문인지 뒤쳐졌습니다. 사직터널(그렇게 들었습니다.시골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_-)을 기습적으로 내달려 어느 내수동 아파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였습니다. 대열의 앞쪽은 이미 빠져나갔고 의료팀은 진압(?)하는 전경들에게 쫓겨 넘어져 다친 여고생 하나를 치료하느라 머물렀습니다.

왼쪽 어깨부터 손등까지의 찰과상과 옆구리의 열상(진피층이 약간 손상됨)을 입은 이 여학생에게 간단한 처치 후 집에 가라고 하니 안가겠다고 버팁니다. 휴.... 결국 '너 나중에 수영복 안입을꺼야? 이거 이렇게 보여도 흉터 남으니까 집으로 가서 제대로 된 처치를 받아야해. 어여 집에 가'라고 설득하여 보냈습니다. 팀원 하나와 같이 택시에 태워서 보낼때 마음이 참으로 착찹하더군요. 망할 쥐색 하나때문에 저 어린애가...

그 학생뿐만 아니라, 어느 매체의 무릅까진 기자, 몸싸움을 하는 도중 얼굴을 가격당해서 안경이 깨지는 통에 눈가가 길다랗게 찢어진 아저씨 등등, 단 한번의 대치 상황에 대여섯명의 부상자가 생기자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 청년 하나가 흉부를 군화로 가격당해 쓰러져서 의료봉사팀이 인수받았습니다. 그때즈음 합류한 마취의(여자선생님인데 이름을 ㅡㅡ;;;;)선생님이 진찰을 하시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119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10여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 구급대.... 전화로 독촉을 하니 내수동 풍림 스페이스 앞 사거리로 오는 길이 모두 봉쇄되었다 합니다. 경찰이 막았다고 어떻게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마취의 선생님은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저는 팀원에게 자꾸 다시 간다는 환자를 진정시키도록 부탁을 하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고라 게시판에 경찰이 119의 앰뷸런스를 막아 못들어오고 있다고 항의전화라도 해달라고 글을 올려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밤 늦은 시각이라 여기저기 전화를 해야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 건물 경비아저씨가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를 위해 환자를 옮겨달라는 말을 했는데, 결국 견디지 못한 화를 내버렸습니다. '차가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고 막 따지는 나에게 엄청 성질을 내시더군요.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니 주위의 사람이 몰려들었고, 자초지종을 들은 한 아주머니가 여기 주민이라면서 자신의 차로 옮겨 주겠다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차를 가지러 아파트 쪽으로 간 사이에 119구급대원이 걸어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오셔서 '안오겠다는게 아니라 이쪽 저쪽 다 막아서 못들어 온것이니 양해를 해달라. 그래서 이렇게라도 걸어서 왔다.'라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시더군요.

 조금뒤에 아고라에 글이 올라갔는지, 아니면 보다못한 주위의 시민들의 항의 덕인지는 몰라도 구급차가 올수 있다고 했습니다. 팀원 한명이 남아서 병원에 구급차에 동승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그때 차를 몰고 나오신 아주머니의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동할 청와대 방면은 모두 경찰들의 통제로 진입이 불가하였죠. 결국 차에서 내려 중앙청사쪽으로 걸어가기로 하고 지휘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119구급대원이 걸어서 온것을 보고 자신들도 미안했는지 통과시켜주더군요.

 부상자가 계속 발생한다는 전화가 와서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효자동 사거리(중앙정부청사 사거리)였고 이미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 중이었습니다. 전방으로 전방으로 나가서 대치선 바로 뒤쪽, MBC와 KBS카메라 후방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경찰의 해산권고 방송과 이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구호, 몸싸움이 지속되었습니다. 주로 이명박은 내려와라(혹은 물러가라) 등의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였습니다. 구호를 들으면서 이미 쇠고기재협상의 문제를 넘어서 정권퇴진운동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지요.

간간이 몸싸움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었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큰 사태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예비역들이 방패와 하이버를 빼앗아 뒤로 전달하고 가끔 전경을 연행(?)하여 뒤로 보내며 '비폭력' 또는 '때리지마'라는 구호를 외치고 또 시민들은 곱게 그들을 보내주고... 폭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더랬죠.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이라고는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아마 시사토론(?)이 끝난 시각으로 추정되는데,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을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이때부터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대포에 맞아 일시적으로 쇼크를 일으킨 사람부터,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 오랜 시간의 몸싸움으로 인해 탈진한 예비역들....

 계속되는 물대포와 진입시도로 부상자가 정신없이 발생했고, 한두시간이 지난 후에는 저체온증에 시달려 사시나무 떨듯 떠는 환자들이 속출했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마른 옷과 담요, 따뜻한 물이 필요하다는 의료봉사팀의 요청에 근처 주민의 물품들이 속속 도착하였고, 우비와 우산도 계속 공급되었지만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대여섯명을 탈진과 저체온증으로 앰뷸런스에 실어보내고, 조금 있다가 또 발생하여 금새 동나고는 했습니다.

 청운동(?)에서 2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고 손이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쪽에 있던 한 팀이 급파되었습니다. 말투 자체가 차분한 insedona님의 이쪽 상황을 묻는 전화 속 목소리가 어쩐지 다급하게 들렸습니다. 상황을 주고 받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이건 전쟁이예요, 전쟁.'

 라스핀도 물대포를 맞고 난뒤 탈진의 기미가 보이고 의료팀의 얼굴에도 피곤이 눈에 띄게 떠올라 후방으로 빠져 휴식을 취했지요. 진중권교수님이 철푸덕 앉아있는 저를 잠깐 인터뷰하고 갔습니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과는 달리 말은 담담하게 나왔습니다. 이때즈음엔  라스핀은 끓어오는 분노를 참느라 마스크안의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그걸 억제하느라 '중립, 중립, 중립'이라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반갑지 않은 짧은 인터뷰 후, 인터뷰를 허용하게 놔둔 김선생에게 가벼운 타박을 준 뒤, 주위를 둘러봅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신문지 등으로 불을 피우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모닥불 수준의 불(어디선가 구해온 탈만한 물건과 피켓, 쓰레기 등)이 곳곳에서 피워집니다.

 물대포에 맞은 사람들이 나와서 옷을 말리고나서 물대포와 대항하러 다시 들어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한쪽에서는 쓰레기봉투로 쓰이는 검은 비닐봉투 큰 것으로 자신의 상체만 가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하는 시민들이 보입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주부와 딸, 이제는 은퇴를 앞두고 있을만한 젊잖게 생긴 아저씨, 할아버지.....

 앰뷸런스가 올때마다 길을 앞장서서 열어주고 뭐 도울일 없냐고 찾아오시는 분들, 근처 편의점에서 자비를 들여 사온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나누어주는 분들.....

 옆의 연선생('연'가가 아니지만 그렇게 부른다 했습니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해봅니다.

 '이거 80년대도 그랬겠죠? 매캐한 냄새만 있으면...'

 '그렇네요'라고 덜덜 떨면서 라스핀의 물음에 대답하는 연선생에게 모닥불 근처로 가라고 말해봅니다.

 그리고 라스핀의 머리 한구석에는 중학생시절 초여름의 이리(지금의 전북 익산) 시내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얀 하이버를 쓴 전경을 피해 참을 수 없는 기침을 해대며 골목으로 내달리고 내 왼쪽으로 슉슉 지나가며 하얀 족적을 남기는 최루탄의 꼬랑지....

 '아.. 그때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나고...'

 잠시 딴생각을 할 무렵, 힘이 넘치는 정,박 두 선생의 채근에 마른 옷과 담요를 들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바로 직전, 한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실려서 나옵니다. 역시 저체온증.... 급박해서 상의를 찢고 하의를 탈의 시키고 갈아입히고 담요로 둘둘 말아서 모닥불옆으로 앰뷸런스를 요청했습니다. 팀원 한명이 또 남고....

우리는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에게 옷을 갈아입는데 얼마 안걸리니 갈아입고 다시 오라고 말하며 심한 사람을 우선하여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버티겠다며 조금 더 심한 사람이나 여자, 노약자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옷은 금새 동이 났습니다. 벌벌떠는 사람들을 한번 보고, 내 빈손을 한번 봅니다. 눈가가 나도 모르게 뜨끈해집니다.

 그무렵 시위대 뒤쪽 정부중앙청사쪽에서 진압하러 전경이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를 포함한 2팀이 그쪽으로 급하게 이동했습니다.

 라스핀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동그란 방패 진압봉, 진압복.... 헬맷 색깔만 틀리지 백골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은 백골단의 등장에 정신없이 촬영하기에 바쁘고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촛불을 다시 밝혔습니다. 저런 사람들에게 물대포라니... 다시 눈시울이 뜨끈해집니다.

 사거리로 조금씩 후퇴할 즈음에 경복궁 뒤로 해가 떠오르는게 보였습니다.

 해가 비추는 곳은 야속하게도 줄곧 보아왔던 살수차의 두배 정도되는 크기의 검정색 살수차였습니다. 아침 햇빛을 등지고 천천히 물러나는 수많은 시민들..... 그 큰길을 가득메웠습니다. 라스핀이 있던 곳의 대치 부분에서는 시민들이 어린 전경들에게 '물러날테니 천천히 해라. 여기 모두 너네 형,동생,누나,아버지,어머니,할머니,할아버지같은 분들이야. 천천히 하자'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괴물같은 살수차가 물대포를 쏘아대자 사람들이 픽픽 날라갔습니다. 청장년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깨자마자 소식을 듣고 나온 시민들이 인도에서 아우성입니다. 그냥 놔두었어도 물러났을텐데....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 광경을 본 어느 여자분이 쇼크를 일으켰습니다. 주위분들의 도움으로 진정시키고 오목하게 파여진 진형으로 다가갑니다.

 물대포에 맞아 고막파열이 의심되는 환자가 실려나왔습니다. 마취의 선생님이 진찰을 하고 라스핀은 그 주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한 남자가 '왜 못 (사진) 찍게해. 올려야지'라고 화를 냅니다. 순간 열이 받아 그 남자를 노려보고는 '그냥 찍어서 올린다고요? 이사람의 신원이 낱낱이 밝혀질텐데요? 그렇게 알리고 싶으면 당신이 저기 가서 서세요. 여기 인도에 서서 입으로만 나불대지 말고'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랬더니 '당신이 뭔데 그딴식으로 말하냐'는 내용의 말을 합니다. '나? 의료봉사 중인 한의사다. 당신말이야. 무임승차면 무임승차객답게 있던지 한 사람이라도 더 도와!'라고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때 옆의 팀원들이 나를 뜯어말겼고 그때문에 고개를 돌린 사이 딴 남자분이 끼어들어 참으라고 말합니다. 'X달린 XX가'라는 내용의 욕을 더 해주려고 찾아보니 금새 사라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렇게 벌벌떨며 자꾸 실려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랬나보다고 생각합니다.

 마른 옷과 담요는 순식간에 동이 나고 또 한참을 발만 구르고 있고......

 참다 참다 못해서 가운을 벗고, 상의를 벗습니다. 벗은 상의를 들고 물대포에 맞고 있는 시민의 옷을 어거지로 갈아입혔습니다. 커다란 수건은 쉴새없이 사람들의 등과 배를 닦아내고.... 여성분은 정선생이 채근하여 빼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말을 듣질 않습니다. 하릴 없이 수건으로 닦기만 해주는 수밖에......

 광화문공원(?) 삼거리까지 몰렸을때는 이미 와해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시위대 중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다함께'깃발을 향해 원망섞인 목소리로 '다함께는 나와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팀은 대학생들이 많이 몰려있는 충무로방향으로 몰렸고 다른 팀들은 제각각 흩어졌습니다. 넘어져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로 우리를 찾는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진압이 시작되려는지 전경들이 한발짝 한발짝씩 전진합니다. 어김없이 쏘아대는 물대포를 웅크리고 맞는 학생들을 보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한봉다리 가득 가져온 마른 옷과 수건이 순식간에 다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팀원들의 눈에는 애처로움과 억울함과 분노와 무력감이 교차하는 듯 했습니다.

 천천히 후퇴하던 시민들이 갑자기 내달립니다. 경찰들이 갑작스레 진압을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의 비명소리 뒤로 '저기 사람이 넘어졌어요'라는 외침이 들려와 무작정 그곳으로 뛰었습니다. 정선생이 '선생님 위험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데크레센도 같습니다. 나는 환자를 껴안고 언제인지 모르게 옆에 도착한 박선생은 '의료팀'이라고 목이 찢어지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박선생에게 '갑시다'라고 짧게 말한 후 쉭쉭 급하게 도망가는 사람들과 그 뒤를 쫓는 전경들을 가로질러 위태위태하게 인도로 나옵니다.

 나와서야 환자의 얼굴을 보니, 앳된 여학생이었습니다. 크게 놀라 눈동자는 끊임없이 좌우상하를 살피고 있었고 손발은 벌벌떨고 있었습니다. 안정시키기위해 의료팀이 바리케이트를 쳐서 둘러싸고,  닦아주려고 남긴 담요 한장으로 몸을 감싸고 외상을 체크했습니다. 조금 안정이 된 환자를 정선생에게 맡기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광화문 광장의 도로는 그새 차들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가롭게 다니는 차들의 운전자들이 의료팀과 담요를 둘러싼 환자를 신기한 듯 쳐다보더니 이내 연민의 모습을 보냅니다.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광화문 6번출구 안쪽의 조그만 전시관 옆에 안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했습니다. 시계를 보았을땐 의료봉사 시작 후 12시간을 몇 분 안남기고 있었죠. 응가기둥 뒤에 팀들이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환자에게 이제 안정된 것 같은데, 우리가 먼저 이동해야 할 것 같으니 조금있다가 갈 때 담요를 여기에 개어 놓고 가면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하고 먼저 길을 나섰습니다.

 한 팀이 먼저 와있었고, 조금 있다가 insedona님의 회진시각이 다되어 내려가야 되는데 어디에 있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마취의 선생님이 가운을 벗고 마스크를 벗고 어느 BJ팀이 사준 음료수를 손에 들고 왔습니다. 12시간만에 맨 얼굴을 처음 봤지요... 그런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성함을 묻질 않았습니다.

 다른 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시청광장과 안국동에 시위대가 또 대치하여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팀이 안국동으로 가고 우린 시청으로 가기로 결정하여 다시 짐을 꾸렸습니다.

 꾸릴 무렵에 insedona님이 혼자 지친 모습으로 나타나 옆 벤치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바닥을 멍하니 응시하고서는
 '정말 너무합니다. 전쟁때도 의료진은 들여보내주는 법인데, 이건 말이 안되요. 이미 넘어진 사람을 왜 발로 차고 방패로 찍는지 모르겠어요.'라며 고개를 떨굽니다.
 그러나 그 말에 라스핀이 무어라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몇 분뒤 회진 시각에 맞춰 전주에 가겠다며 내 의향을 묻습니다.

 '시청에 시위대가 대치 중이라고 하니 그곳으로 가보려구요.'

 '네. 그럼 전 택시타고 터미널로 갈께요. 지하철타면 자버릴 것 같아서요. 조심하세요'

 '네.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배웅한 뒤, 뒤를 쳐다보니 어느새 짐을 꾸리고 '어서 가자'는 마취의 선생님, 정선생님, 박선생님이 보였습니다. 팀이 어느새 2명이 줄어있었습니다.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지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시청에서 순식간에 진압당해서 뿔뿔이 흩어졌다고요. 해가 떴으니 사람들이 더 나올 것이라는 희망과 상경하고 있다는 소식을 버팀대 삼아 모였다가 끝났다고 했습니다.(톨게이트를 차단하고, 기차 예매를 새벽에 막아버렸다는 소문이 새벽에 돌았음이 잠깐 떠올랐습니다)
 
 출발직전 연3일을 내리 의료봉사에 참가하다가 결국 하루 쉬었던 병원PA분이 합류하고, 안국동(인사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안국동 사거리(?)쪽으로 시위대가 밀려 전경들의 뒤쪽에 도착했습니다. 물대포를 수도 없이 맞으며 환자를 구해오던 차선생이 울먹이며 '큰일났다'고 합니다. 시위대가 바리게이트를 치고 대치 중이며, 밤샘 대치로 신경질적 된 전경과 백골단원들이 아주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절 뒤쪽으로 돌아서 사거리로 나오자 마자 강경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삽시간에 와해되는 시위대와 비명소리와 구호..... 그 와중에 넘어져 밟힌 시위대 한사람을 주위의 주민들이 구해서 의료팀을 불렀고 마취의 선생님과 경남에서 오신 선생님이 진료를 했습니다. 조금있다가 차선생이 '입에 피가 철철 흐르는데 그냥 연행해 가요. 내가 말해도 안들어주니 선생님이 가요'라고 말합니다.

 이에 경남의 선생님과 라스핀이 닭장차에 달려가 항의를 하고, 애원도 해보지만 대답은 '그렇게 다친 사람없습니다'라는 신경질적인 대답이었습니다. 그 대답 속엔 왠지 '껄끄럽다'는 인상이 들어있어 '아니, 다친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 의료인들이 하는 겁니다'라고 다시 항의해 보지만 묵묵부답입니다. 그제서야 그 사람의 이름을 보려고 가슴을 보니 테이프로 가려져 있습니다. 하.... 이 사람 백골이구나. 이쪽은 틀렸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계속 항의를 하는 경남의 남자의사분에게 일말의 희망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광화문방향으로 구급차가 보였습니다. 넘어졌던 분을 이송하러 왔나 싶어 다가갔습니다. 다른 의료봉사자가 구급차를 인도하는 게 보여서 돌아오려던 중 한 여성분이 봉고차 앞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발견, 다가가서 물어봅니다. 무릎을 찧으면서 넘어졌는데 전경이 밟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견딜만 하다며 그냥 가려는 환자분과 이를 말리면서 병원으로 이송하려는 주위분들과의 실랑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넘어진 환자를 보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차를 세운 한 시민이 있었구요. 환부를 만져보고 반사를 체크한 후 심한 부종이 예상되어 병원으로 가라고 권유했습니다. 그제서야 고집을 꺾더군요.

 항의 도중에 닭장차가 그냥 가버렸다고 허탈해하는 경남의사(이렇게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역시 이름은 안물어보고 나이만 물었었죠. 왜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분을 보고 다시 마취의 선생님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종로구청의 물청소차가 바닥을 청소하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차선생이 그걸 보며

'저거 왠지 흔적을 지우려는 것 같아요.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뻔뻔하게요'라고 힘없이 말합니다.

 그때 길건너편에서 외침이 들려옵니다. 인도에 몰려있던 시민들이 항의하자 방패와 곤봉으로 강제해산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여자분(인사동 구경나온 듯한  옷차림)이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돌리는게 꼭 영화의 한장면 같았습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우리팀을 끌고 건너가니, 서너명이 그새 부상당해 있었습니다. 라스핀이 맡은 환자는 무릅 아래쪽의 넓은 상처에선 선홍색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능숙해진 손놀림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환자들의 처치가 끝날 무렵 그 주위에 사는 주민이라면서 응급의료물품을 한가득 사오신 분이 계셨고, 또 한분은 게시판에서 봤다면서 수건을 한 상자주고 가셨습니다. 어느 남자분은 현재 가진게 돈 3만원이 전부라면서 우리에게 주려고 하셨으나 '현금은 받질 않습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서운한 듯 갈 길을 가셨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워 보여 '그 돈으로 경로원에 조중동말고 한겨레 경향 넣어드리세요'라고 크게 외쳤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밀려서 광화문반대편으로 간 시위대는 다른 팀이 따라갔다면서, 우리는 이제 본대(본대라기는 뭐하고 돌려주신 옷가지 담요 등의 물품을 많이 가지고 있던 팀)에 합류하자고 하여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동 중에도 간간이 부상당한 시민들을 치료하였고 나머지는 계속 갈 길을 갔습니다. 닭장차가 길게 늘어서있는 길가에 전경들의 진료를 부탁받았습니다.

 내가 맡은 환자는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하였습니다. 락만 테스트를 행하니 '악'하는 소리를 지릅니다. 지휘자로 보이는 분께 '(전방십자)인대'가 손상을 입은 것 같다며 곧바로 치료를 받으라고 전해주었더니 그제서야 의심의 눈길을 풉니다. 차선생에게 탄력붕대를 감아주라고 말하고, 뒤에 온 마취의 선생님이 옆의 환자를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다른 환자를 보러 갔습니다.

 이번에 본 환자는 밥풀떼기 하나인, 솜털이 가시지 않은 나이 스물쯤 되어 보였습니다. 경골부위의 단순타박상이었는데 실금이 생겼을지도 모르니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권하며 간단하게 스프레이파스만 뿌려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만 하면 진료를 못받을까봐 붕대를 감아줘서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도록 했지요. 그러는 와중에 정선생이 남은 초코바같은 것을 고참들 몰래 먹으라며 주머니에 넣어 줍니다. 그때 라스핀은 환자의 안경 위로 눈물이 한방울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치지 마세요'라는 말을 건네고 다시 갈 길을 갑니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려 봅니다. '그래 쟤네들이 뭔 죄냐, 맨 위에 놈이 문제지.......'

 가면서 쉬고 있는 전경들 중 다친 이들을 치료하고 이제 갓 입대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눈엔 '이제 끝났다'라는 빛이 떠올랐지만, 일부 전경과 지휘자는 격한 적개심을 내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광화문공원에 도착했더니 두 팀이 먼저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3분지 1가량은 바닥에 우비를 깔고 잠들어 있었고요.

 다른 팀은 시청광장에서 남은 시민들을 치료하고 있다고 했고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고 앉았습니다. 이때야 마취의 선생님이 고개를 무릎에 기대고는 쉬더군요. 벌써 3일째라고 들었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몇 분뒤에 FM군이 응가기둥 근처로 이동 중이라는 말을 듣고 같이 전주에 내려가려고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정선생, 박선생, 팀장님, 차선생, 김선생, 경남의사분, 마취의선생님, 병원PA라던 청년,  며칠째 나온다는 어느 여학생과 주부, 그리고 저번에 보았던 간호사 선생님과 의기하나로 버티신 분 많은 분들.... 의료봉사팀인데 처음 보는 얼굴들...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나섰습니다. 이름이라도 알면 좋은데 모두들 지쳐있어서 깨어 있는 분들에게만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길을 가던 중 아까 인사를 나눴던 몇몇 선생님들이 구급차 앞(공원 안쪽 길로 나왔다고 함)에 있는 것을 발견해서 가보니, 밤새 의료봉사를 하던 분이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힘이 빠졌습니다.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는 전경을 바라보니 '억울하다'라는 표정입니다. 내 눈의 원망섞인 빛을 읽었나 봅니다.

 미대사관 앞쪽에는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일단의 전경들을 지나쳐 응가기둥옆으로 가니 두 팀 정도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밤샘동안의 아비규환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했지만, 반절쯤은 앉아서 자고 있습니다. 물품을 정리하고 근처 화원에 맡기고 나니 라스핀이 먼저 떠나왔던 다른 팀이 다 도착했습니다.

 모두들 졸음에 겨워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입니다.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말하며 인사 후, 후일을 기약하며 FM김군과 고야셈과 함께 전철에 몸을 실었지요. 3명 모두 자느라 터미널을 지나쳐서 다시 돌아가는 해프닝을 겪고 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고는 도착할때까지 죽음같은 잠이 들었습니다.

+ 라스핀의 두번째 후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오늘 인터넷을 뒤적여 보다가  위에 언급한 그 입안에 피를 흘리며 연행되가는 남자분이라 추정되는 동영상을 발견하여 캡쳐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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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차선생을 만나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틀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라스핀 스스로 '저렇게 진압당할 만큼 불법을 저질렀나?'라는 의문을 던져봐도 '아니다'라는 대답을 얻을 뿐이었습니다.

 정말 답답하네요.

 insedona님도 당직이 있고 난 다음날 다시 상경할까 고민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고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아래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라스핀도 다시 상경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기초쪽에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내 배후인 양심과 내 미래의 자손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두번째 이야기 ::: 환자의 사진촬영과 관련한 것과, 그 이외 5가지 사항에 대하여 부탁드립니다.

(이 부분을 복사해서 각 게시판으로 널리 알려주세요)

 의료봉사팀이 사진촬영을 제한 하는 것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시는 분이 아직도 많습니다.

 항의하시는 분들을 보면,
 1)시위를 처음 나오시거나, 의료봉사단의 그간의 상황을 모르셔서 그리한다는 추정과
 2) 그 내용을 알지만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데 의료봉사팀이 이걸 막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한다는 추정
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위 두가지에 대하여 설명해드리니 차후 참고하시기길 부탁드립니다.

1)에 대한 내용은 저번에도 포스팅했듯이 플래쉬 문제입니다. 동공반사를 체크하는데 아주 방해가 되고, 강경진압으로 인해 쇼크인 상태의 사람에겐 심각한 위협이 되므로 못하게 진료 중이라도 막는 것입니다. 꾸준히 현장에 계시는 큰 매체의 기자분들(오마이 및 기타 인터넷뉴스 포함)은 그 이유를 알기에 잘 지켜주십니다.

2)에 대한 내용은, 환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사진을 찍어 무작정 인터넷에 올리는 것 '사복경찰의 채증'과 다름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그대로 신원이 노출이 되기 때문이죠. 매체의 기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환자에게 신원을 물어서 꼭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나중에 본인이 초상권 침해 등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에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종합해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다시 말씀드립니다.

1. 식이 없는 환자: 동공반사와 기타 반사 체크 후 의료진의 허락이 떨어지면 사진을 촬영하되, 환자에게 고지(환자의 주머니에 넣을 쪽지 내용:난 당신을 허락없이 촬영했는데 이를 인터넷에 올려도 괜찮은지 나중에 깨어나면 이곳으로 연락바랍니다)를 해주십시요. 동공반사는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검사법입니다. 단순 실신인지 혼수인지, 뇌의 손상이 있는지 없는지 판별하는 가름이 되기 때문이죠. 꼭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식이 있는데 안면부 부상일때: 환자에게 동의를 얻되 직접 물어보지 말고 진료하는 의사나 의료진을 통해 물어 보세요. 이는 플래쉬 같은 강한 빛에 노출될때 눈을 뜨고 있으면 안면근육이 움찔거려 치료에 방해가 되기때문입니다. 특히, 눈쪽을 치료할때는 시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조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 식이 있으면서 안면부 이외의 부상일때:  환자의 동의를 얻어 촬영해주세요. 대신 치료에 방해되지 않게 치료하는 사람의 뒤쪽에 서서 촬영해 주세요. 치료하는 사람의 눈에 플래쉬가 터지면... 핀셋이나 가위로 상처부위를 자극하는 등의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시는 분들은 이를 위해 간단한 명함(위 고지할 내용을 집어넣은 것이면 좋겠네요)을 일반 종이에라도 인쇄하여 가지고 다니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이외에 부탁드릴 것이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토요일날 원광대학생 2명의 인터뷰 기사에 '국민대책위 소속의 의료봉사단'이라는 내용이 떴다고 하던데, 사실무근입니다. 의료봉사단은 어떠한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속되어 있다면 이런 '촬영'문제로 시민들과 마찰을 빗는 일도 없겠지요. 저번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게시판의 글 보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기사가 떴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료봉사단은 어떠한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순수한 봉사활동을 자신들의 홍보같은 이익에 끌어들이려는 단체가 있다면 엄중히 경고합니다. 그리고 특정소속 단체인것 처럼 몰고간다면 라스핀과 여기 같이 참여하는 다른 3~4의 의료인도 더이상 진료할 수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두번째, 저번 포스팅에 의료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첫번째글을 올리신 분으로 치과의사분을 언급했습니다. 이외에 거의 동시(시간적으로 조금 먼저라는 모선생님의 말도 있었습니다)에 글을 올리고 난 뒤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연선생님께 여쭤봐서 얼굴만 알고, 이름도 아이디도 모르지만 그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에 여기에서 알려드립니다.

세번째, 단추수프님(누구인지 짐작이 가는데 본인한테 확인은 못했습니다)이 후원계좌를 닫았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물품만을 지원받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이건 다음 상경때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네번째, 첫번째의 이유로 모두 꾸준히 활동할 수가 없습니다. 오프이거나 학교에 계시거나 공보의, 의대생들이 짬짬이 시간을 내어 전국 각지에서 모입니다. 전화번호도 단 2개 정도 알고 있는데 그나마 한 분하고만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이 분들도 매일 나오시는 것이 아니기때문이죠. 그래서 의료봉사단에 참여하시고 싶은 분은 정해진 시각에 나가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준비된 조끼가 한정이 되어 있고 또한 활동이 시작된 이후로는 어느팀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때문에 배치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점 양해 드립니다. 일정이 끝나고 그 다음날 나올 수 있는 사람을 파악하여 인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날 누가 나왔는지 조차도 잘 모릅니다 ㅜㅡ

다섯번째,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간혹 보다못한 의료봉사단원이 사람들을 말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비폭력'이라는 거대 명제를 앞에 두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그리하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욕설을 하는 분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분을 계속 말리다가 '의료봉사나 할 것이지 왜 그렇게 말이 많냐'라고 쏘아붙이는 어느 아주머니의 말에 팀원 하나가 그만 두려고 까지 했습니다. 며칠째 제대로 잠도 못자고 나오는 한사람이었는데 그로 인해 우리팀은 귀중한 경험을 가진 한 사람을 잃을뻔 했습니다. 시위의 규모가 커질 수록 시민들의 '쟤네들 프락치 아니냐'는 등의 근거없는 비방도 나도는 판입니다. 경찰들은 우리에게 '어차피 같은 넘들이다'라는 말을 하고요. 양쪽에서 모두 비방을 하면 결국 의료봉사단의 사기는 저하되고 의지를 잃게 되어 그나마 돌아가던 팀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원대의 한 의사분은 수술이 끝난 후 옷도 못갈아 입고 가운 하나 걸치고 KTX열차를 타고 상경하여 새벽내내 진료하고 아침에 회진에 맞추어 내려가셨습니다. 마취의 선생님은 주위에 알려질까 두려워 마스크와 모자를 항상 착용하십니다. 이번에 insedona님은 악플때문에 '무섭다'라고 하십니다. 시민 여러분의 현명함에 호소합니다.
번째 이야기 :::::::

자정이 넘는 이시간에도 역시 가열찬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생중계에서는 '1만 시민들이 종각역 앞에서 검찰과 대치중입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실시간 동영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라디오21, 진보신당 공개방송, 아프리카 BJ들의 방송이 떠있고 국민들의 관심을 대변하는 듯 각 동영상은 과부하가 걸려 계속 끊기고 있습니다.

 생중계 중간중간에 경찰과 선동하는 자들에게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조금식 전진을 시도하고 있고, 닭장차를 향해 '불법 주차 차 빼라!'라는 구호를 외치는 자랑스런 시민들이 보입니다.

 라스핀도 90년대 초반 시위에 참가를 많이 해봤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 봅니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서구유럽에서도 시민의식이 높다는 어느 한 국가의 시위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남녀노소 가지 각색이고,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개사된 노래 구호... 몸짓... 그리고 무엇보다도, 넘쳐나는 디카 등의 디지털 물품들...

 4.9총선직후 얼마전까지만해도 이민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저 생동하는 모습에 그 생각이 조금 접혀졌습니다.

 여기에 조금더 바랄 게 있습니다. 협상무효! 고시철회!가 아닌 탄핵!을 외쳐야 할때입니다. 협상이 무효화된다해도 그 뒤에 남겨진 무시무시한 정책들...

 이번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을 좀먹는 저자들이 없어지길 기원해 봅니다.


번째 이야기 ::::::::::

 연 3일동안 계속되는 철야시위에 이목이 쏠린 지금이지만,

 5월 26일 오후 6시 3분에 발표된 하나의 성명을 주목해야 합니다.

농식품부지부장이라는...... 공무원 신분으로 발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은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즉각 재협상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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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에서 공무원이 정부정책에 반하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내는 것은 자신의 직장과 가정을 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이태 책임연구원의 양심선언이후로 대한민국에 있어서 또하나의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한히 존경합니다.

 이번 해만 김용철 변호사, 김이태 책임연구원, 이진 지부장의 3명의 의인이 탄생하였습니다.무슨 일만 하면 의인이 나타나게 하는 현 정부가 미울따름입니다.


 또, 공무원 사회에서의 이런 성명이 나왔음을 볼 때 분명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진행이 얼마나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명박정부는 이번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변했음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더이상,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국민들을 '불법 시위'운운하며 막을 수 없음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며,


 최후에는 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할 것입니다.


쥐박 탄핵!!!


+ 더불어,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는 시민의식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군요. 수요일 저도 저곳에 동참합니다.



아래 성명서 전문 http://agri.kgwu.org/ibbs/viewbody.php?code=agri_001&number=674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은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즉각 재협상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저는 농림수산식품부 직원(공무원)이자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중앙행정기관본부 농림수산식품부지부 지부장으로서,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과 관련하여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미 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여학생과 아주머니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절절한 우려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들으면서,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공무원으로서 앞에 나가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러면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입장발표를 자제해 달라는 기관측의 지속적인 부탁, 협상담당 주무부처 당사자이자 제 동료이기도 한 우리부 직원들의 사기, 본인이 농식품부에 근무하면서도 전문가가 아니어서 협상내용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정보 부재, 나아가 노동조합의 지부장으로서 우리 지부에 닥칠 탄압과 어려움 등을 고민해야하는 저로서는 무한한 갈등을 겪어왔습니다.


그 러나 지난 5월 22일 대통령의 담화문, 23일 국회의 농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부결 소식, 그리고 24일과 25일에 벌어진 촛불문화제 참가자에 대한 물대포 발사와 대규모 강제 연행소식을 접하며 국민의 녹을 먹고 있는 그리고 농식품부의 한 공무원으로서 참담한 마음과 함께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으로 판단되어 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지 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관련 협상은 한마디로 졸속적이고 굴욕적인 협상이며 국민의 건강권을 지나치게 훼손한 협상입니다. 왜 졸속적이고 굴욕적인 협상인지, 왜 국민의 건강권을 지나치게 훼손한 협상인지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협 상이 시작되어 타결되기 하루 전인, 지난 4.17.까지는 협상대표가 언론을 통해 밝혔듯이 양국간 이견이 컸고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번 협상의 우리측 안(案)이 이전의 내용보다는 다소 후퇴한 입장을 가지고 출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협상에 참여한 공무원들이 “국민 건강권의 최대한 보장”을 우리측 입장으로 가지고 협상에 임했을 것이라는 것은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믿고 싶습니다.


다 만, 이명박 정권(대통령 자신이나 핵심 참모들)이 한미 FTA협상의 조속한 비준입장을 밝히고 있었고, 방미를 해서 미국대통령과 만나기 11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점에서 한미간 쇠고기 협상이 한미 정상회담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아니 나아가 쇠고기 협상의 조속 타결을 지시하였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며칠간의 협상과정 중 양국간 입장 조율이 잘 안되던 상황이 무능하고 무소신한 그리고 자기만의 영달만을 고민한 장관과 대표가 단 하룻밤 만에 미국측 요구를 전격 수용하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느 면에서는 이런 협상이 굴욕적이라고 청와대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거나, 국민의 저항이 이렇게까지 확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농 식품부 장관이 그토록 되풀이 했던 OIE[국제수역사무국]의 규정과 과학적 기준, 안전성이라는 말에 이제는 신물이 납니다. 초기 협상결과에 따르면 OIE규정에서도 광우병 위험물질로 권고한 것을 우리는 빠뜨리는 협상, 미국 자신도 학교급식용으로 금지하고 있는 AMR(선진회수육)을 우리는 수입하겠다고 하는 협상, 심지어 광우병이 발생해도 그리고 검역과정에서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이 발견 되어도 수입금지를 하지 못하는 협상, 강화된 사료조치의 강화된 내용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풀어주는 협상, 미국 자국법에 의한 쇠고기 정의를 따라야 하는 협상 등 더 이상 어떻게 말씀드리기도 구차한 내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조 금도 더 세부적인 예를 들면, 협상결과에 미국도축장 승인권한을 90일까지만 우리 정부가 갖고 이후부터는 미국이 갖게 되어있는데, 이는 OIE규정은 물론 과학적 근거도 없습니다. 정부는 SPS(동식물위생협정)상 동등성-상대국이 인정한 도축장 인정 등-을 내 세울 것이나, 이는 그간의 협정내용과 전혀 다른 것으로서 ‘95년 WTO 가입이후에도 승인 권한은 한국이 보유하고 있었고(미국의 작업장 지정 통보에 따라 현장점검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승인) 이러한 조항은 우리정부가 작업장 지정을 취소할 권한도 포함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제소당한 전례가 없습니다.


둘째, 미국이 광우병 위험통제국으로 인정된 지난해 5월 이후 협상을 한 멕시코는 살아있는 소를 수입하기로 결정하면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은 금지하였고,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7월 미국과 새 수입위생조건을 합의하면서 척추뼈 전체를 수입금지 품목인 SRM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척추뼈 일부를 SRM에서 제외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추가협의를 통해 포함시킨 바 있습니다.)


그 러면 최근 협상을 한 멕시코 말레이시아는 물론 일본, 대만에서는 OIE 규정도 모르고, 과학적인 근거가 없어서, 아니면 국민의 안전을 너무 지나치게 염려해서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OIE에서 정하는 통제국가 등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장관은 알기나 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지난 몇 개월간 바뀐 것은 과학적기준이 아니고 정권뿐이라는 것에 저절로 동의가 됩니다.


따라서 정부는 고시를 무기한 연기하고 재협상에 임할 것을 밝히고 미국과 즉각 재협의해야 합니다. 아울러 민의를 반영하여,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만을 일방적으로 홍보할 것이 아니라 우려 지점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와 국내차원의 안전대책을 밝혀야 하고, 중․고생과 아줌마로 대표되는 촛불문화제의 개최를 적극 보장하는 등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농 식품부 공무원으로서 이렇게 자괴감이 많이 든 시기는 처음입니다. 아마도 많은 우리부 동료들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분들에 대한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묵묵히 맡은 바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우리부 대다수 공무원들을 오해하는 일은 절대 없었으면 합니다.


아 울러 저의 이번 입장발표는 협상과정 자체에 대한 것이지 안전성에 관한 과학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본의 아니게 “수입되는 쇠고기 안전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라는 지나친 비약으로 발전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한 “국민의 막연한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우리부의 직원들 중에는 안전성 부분에 관한한 안전하다는 소신을 갖는 분들도 있음을 밝힙니다. 안전성에 관한 문제는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과 정보를 통해 논의되고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최 근 공무원사회는 머슴론, 전봇대 및 구조조정 등으로 심한 혼란과 사기저하에 빠져있습니다. 적어도 공무원들에게 인기가 없던 지난 정권도 공무원을 이렇게까지는 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국민을 위하여 공무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서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울러 공무원노동조합에서 일하면서 국민과 어려운 민중을 위해 일한다는 우리 노동조합의 이념에 맞추어 행동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끝으로 지난 반세기 정권의 하수인으로 살아온 공무원으로서의 자세를 버리고, 진정하게 국민과 민중을 위해 거듭나려고 노력하는 공무원노동자, 공무원노동조합을 이해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8. 5. 26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중앙행정기관본부

농림수산식품부지부 지부장  이 진


26일 월요일인 오늘도 많은 시민들이 모여있네요.

아래 링크는 광화문 현장 중계입니다. 라디오21에서는 청계천을 중계해주고 있고요.

http://www.afreeca.com/opentv/opentv_pop.asp?szStr=............................

http://live.cast.kr/onair/single/livecast.php?no=86

라스핀도 내일 저녁 광화문으로 갑니닷!
(낼 오후에 학생들 실습을 해야서요. 일단 일은 해야겠져 ㅡㅡ;;;)

+ 광화문 사거리, 청계광장이 MBC 9시뉴스에 나오는군요.


아래는 미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광우병 이야기입니다. 동영상 인코딩한 분의 멘트가 앞에 잠깐 나오고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아고라에 잠깐 올라왔었는데 광화문 시위 중계로 순식간에 묻혀가는게 아까워서 퍼왔습니다.